<김주언 칼럼> 원전안전마저 정쟁대상이 되는 비정상의 나라

<김주언 칼럼> 원전안전마저 정쟁대상이 되는 비정상의 나라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1.2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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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시즌2가 시작되었다. 바나나 6개, 멸치 1g 수준의 삼중수소를 괴담으로 유포하여 원전수사를 물타기하려는 저급한 술수를 멈추어야 한다.”(국민의힘) / “멸치 1g 먹는 수준이라는 식은 국민안전을 무시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월성원전에 대한 국민의힘의 정치적 시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민주당) 경북 월성원전 부지 지하수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돼 제기된 원전안전 문제마저 정치권은 정쟁대상으로 삼고 있다. 월성원전에 대한 검찰 수사를 놓고 벌어진 ‘정치수사’ 논란의 연장선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마저 정쟁의 수단으로 삼은 데 대한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는 없다.    
이번 논란은 월성원전 3호기 부지에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과다 검출됐다는 보도에서 촉발됐다. 포항MBC의 단독보도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중앙언론은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원전 부지 지하수 배수로 맨홀 고인물에서 리터(L)당 71만3000베크렐(Bq)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는 보도였다. 경주환경운동연합 등은 “3호기 어느 지점에선가 삼중수소가 지속해서 새어나와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시민단체 및 주민이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월성원전 3, 4호기 주변 빗물중 삼중수소 농도는 133~923Bq/L로 측정됐다. 전국평균(1.05Bq/L)의 900배를 넘는다. 3호기를 둘러싼 4개의 우물에서는 1140~3800Bq/L이 검출됐다. 인근 주민과 원전 노동자들이 피폭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은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수원은 “주변지역이 아닌 원전건물내 특정 지점에서 일시적으로 검출된 것”이라며 ”외부로의 유출은 없었다”고 밝혔다. 실제 배출량은 배출량 제한기준에 훨씬 못 미치므로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월성원전 인접주민의 삼중수소 검출비율은 울산 등 다른 지역 보다 최고 90배가량 높았다. 가장 가까운 양남면 주민 160명중 110명(68.8%)에게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울산시 북구 주민 149명중 단 1명(0.7%)만 검출된 것과 약 98배차이가 난다.(2020년 9월24일 한수원 방사선보건원 보고서) 인근 지역에서도 검출률이 높았다. 양북면 50.3%, 감포읍 41.0%였다. 멀리 떨어진 서울시는 1.3%에 불과했다. 양남면 주민은 최고 검출량은 16.3Bq/L였다. 서울시민 최대치보다 약 8배 높은 농도이다.
월성원전 주변 주민의 삼중수소 피폭량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양자공학과 교수는 “1년에 바나나 6개나 멸치 1g을 먹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바나나와 멸치에 들어 있는 칼륨에서 방출되는 베타선(방사능)을 삼중수소 피폭량과 비교한 것이다. 일부 언론과 국민의힘이 “안전하다”며 들고 나온 근거이다. 그러나 삼중수소를 칼륨과 단순 비교하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칼륨은 몸 밖으로 쉽게 빠져나가지만, 삼중수소는 대사과정을 통해 탄수화물 등으로 바뀌면서 몸속 조직과 결합돼 손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가벼운 원소이다. 중앙에 양성자가 하나 있고 전자 한 개가 주변을 돈다. 중성자가 하나 더 들어가면 무거워지므로 중수소로 부른다. 월성원전은 중수소로 구성된 중수를 냉각재 겸 감속재로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중성자가 하나 더 추가된 불안정한 원소가 발생한다. 논란이 된 삼중수소이다. 수소는 인체의 세포 등을 구성하는 기본성분이다. 인체는 삼중수소를 몸의 구성성분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삼중수소는 매우 불안정하다.  삼중수소가 DNA 구성성분이 되면 핵붕괴 등으로 DNA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에서 가동중인 24기 원전 중 월성원전 4기는 중수로이다. 중수로는 일반물(경수)이 아닌 중성자 손실이 적은 중수를 냉각재로 사용한다. 핵연료도 농축우라늄을 쓰는 경수로와 달리 천연우라늄을 쓴다. 따라서 운전중 핵연료를 교체해야 한다. 운전중에는 삼중수소가 많이 발생해 방사선 관리에 소홀하면 원전부지가 삼중수소로 오염될 수 있다. 삼중수소는 두꺼운 철판도 철 원자 틈으로 통과한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등에 방수처리를 위해 도장된 두께 1㎜의 에폭시 도막을 6㎜ 두께의 스테인리스 철판으로 바꿔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중수로는 특히 지진에 취약하다. 연료봉이 옆으로 누워 있기 때문이다. 월성원전 원자로에는  고온고압 상태로 380개의 연료봉 양쪽에 10t의 핵연료 교환기가 매달려 있다. 이 상태로 매일 핵연료를 교환한다. 따라서 지진에 더 취약하다. 월성원전은 지진에 대비해 최대지반가속도(지진때 지반이 움직인 속도) 0.1G(중력가속도)를 적용했다. 그러나 2016년 9월 경주지진(규모 5.8) 당시  0.12G가 계측돼 설계기준을 넘겼다. 울산 관측소에선 0.4G까지 나왔다. 내진설계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아직 뚜렷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월성원전의 안전성을 놓고 벌어진 정쟁의 와중에 어처구니없는 말도 튀어나왔다. 국민의당 김윤 서울시당위원장이 “어디 지방방송이 얘기한 것을 갖고 이낙연대표가 그러느냐”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나아가 “뻥튀기한 것” “침소봉대” “정치적 가짜뉴스” 등 막말도 내뱉었다. 원전에 대한 무지와 지역방송 비하가 묻어난다. 원전은 주민건강과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방송권역에 12기의 원전이 밀집해 있는 포항MBC로서는 더욱 엄중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원전 안전성은 지역언론만 다룰 사안도 아니다. 원전을 정쟁의 도구로 취급하는 중앙언론의 보도태도가 더욱 커다란 문제일 뿐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잇따라 월성원전의 삼중수소 과다검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이낙연 대표는 “월성원전의 삼중수소 유출의혹은 7년전부터 제기됐는데 왜 규명되지 못했는지, 은폐가 있었는지, 원전 피아와의 결탁이 있었는지 등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민주당 차원의 조사활동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급기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자체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자체 민간조사단을 구성해 조사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탈핵시민행동은 “문제를 축소시키고 책임을 면하기 위한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시민사회와 원전 실무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국회주도의 범정부차원 민관합동조사단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월성원전 삼중수소 누출,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후속대책을 제시했다.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오염수 유출원인을 파악하고 부지내와 외부의 지하수 토양에 대한 삼중수소 오염도를 조사하자는 것이다. 월성원전 가동이후 삼중수소의 발생량과 방출량, 누설량을 정확하게 조사해 비계획적 유출규모를 확인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인근 주민의 건강상태를 조사해 피해실태를 확인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와 폐수저장탱크를 중점적으로 조사한 뒤 설비를 보강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원전의 안전마저 정쟁의 대상이 되는 정치적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탈원전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는 문재인정부와 친원전을 내세우는 국민의힘의 싸움으로는 원전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원자력산업계를 대변하는 ‘원전 마피아’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자그마한 방사능누출 사고도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에 대한 편향된 시선이 아닌 원전의 안전성 문제로 이번 사안을 바라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인근지역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다뤄야 한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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