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뜬금없는 전직대통령 사면론,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주언 칼럼> 뜬금없는 전직대통령 사면론, 누구를 위한 것인가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1.01.0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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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전직대통령 사면론으로 정치권이 들끓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대표가 “두 전직대통령의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드리겠다”고 밝히면서 비롯됐다. 사면론은 민주당은 물론, 정치권에 후폭풍을 몰고 왔다. 민주당은 내부반발로 “국민의 공감대와 당사자의 반성이 충요하다”고 한발 물러섰으나 반발기류는 꺾이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등 야권도 “정략적 활용”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국민도 진영에 따라 찬반의견이 분분하다. 사면에 반대하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다.   
이대표는 새해 첫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느닷없이 수감중인 이명박, 박근혜 전대통령의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당원들의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민주당은 최고위원 간담회를 열어 “국민공감대와 당사자들의 반성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당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결론내렸다. 이대표도 일단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사면론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이대표는 두 전직대통령을 사면하면 국민통합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지 의심스럽다. 
이 대표는 국민통합 이미지를 선점하고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길 기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 전직대통령 사면을 국민이 반길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판이다. 오래전부터 박근혜 전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해온 태극기부대는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두사람이 진정성 있게 사과한 적이 없기 때문에 국민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더구나 촛불민심과도 거리가 멀다. 어쩌면 촛불민심을 배반하는 행위로 비쳐질 수도 있다. 아직 국정농단 세력의 재판도 끝나지 않았을 뿐 더러 적폐청산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명박근혜정권의 수많은 범죄중 아직도 규명되지 않은 사건이 많다. 불법 민간인사찰과 내곡동사저 사건, 자원외교 혈세 탕진, 4대강 죽이기, 검찰 및 언론 장악, 국정원의 정치공작은 아직 기소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사법농단 사건은 사법부의 제식구 감싸기 판결로 법의 심판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면론을 제기한 것은 뜬금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명박근혜정권의 피해자들조차 사면되지 않은 판국에 가해자들의 사면을 제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면반대 글이 여럿 올라왔다. 가장 먼저 등록된 ‘이명박 박근혜 전대통령 사면반대 청원’에는 6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전두환 전대통령과 비교하며 사면을 반대했다. 그는 “사자명예훼손죄로 다시 언론에 비친 전 전대통령의 행태에 국민은 분노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책임을 회피하고 법원마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사면논쟁을 벌이는 정치권을 향해 “정치적 계산으로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사용한다면 여야를 불문하고 국민의 강렬한 저항을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력형 비리정치인 사면을 금지해 달라는 주장도 나왔다. 정치권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없도록 권력형 비리는 사면을 금지하는 규정을 법에 명시하자는 주장이다. “두 전직대통령 사면은 국민통합이 아니라 분란을 일으킬 징조가 될 수 있다” “권력이 있는 자들의 조기석방은 법치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는 글도 주목을 끌었다. 이낙연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청원 글도 올라왔다. 이대표의 사면론으로 “문재인정부와 촛불국민이 외친 공정과 정의는 사라졌다”는 비난도 나왔다.
사면반대 여론은 국민의힘 내부에서 제기된 ‘정치보복론’에 대한 반박의 성격도 짙다. 민주당이 전제조건으로 ‘반성과 사과’를 제시한 데 대해 국민의힘에서는 ‘억울한 옥살이에 무슨 사과와 반성이냐’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이재오상임고문은 “억울한 정치보복으로 잡혀갔는데 무슨 소리냐”라며 “잡아간 사람이 미안하다고 반성해야지 감옥간 사람이 뭘 반성을 하느냐”고 적반하장식 주장을 펼쳤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정치보복’에 힘을 실었다. 두 전직대통령은 국민의 심판과 법원의 판단으로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런데도 정치보복으로 몰아가며 반성을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종전 사과가 무색해진다.
이대표는 사면론으로 ‘사면초가’에 몰리는 형국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기류가 거센 데다 당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사면론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몰아부쳤다. 정의당도 사면론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대표는 당안팎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반목과 대결의 진영정치를 뛰어넘어서 국민통합을 이루는 정치로 발전해가야 한다”며 소신을 거듭 확인했다. 그러나 과거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안하는 법을 대표 발의했던 사실이 도마에 오르면서 사면초가에 빠진 모습이다.
이대표는 노무현정부 때인 2005년 6월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는 사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확정판결후 1년이 지나지 않았거나 형기의 3분의1을 채우지 않은 사람은 사면대상에서 제외하고, 대통령이 사면을 결정할 때 대법원장의 의견을 구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이 전대통령은 지난해 10월29일 형이 확정됐고, 박 전대통령은 오는 14일 확정된다. 따라서 이대표가 발의했던 법안의 취지대로라면 두 전직대통령은 연내에 사면해서는 안된다. 이대표가 제기한 두 전직대통령 사면론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대통령의 사면권 제한에 대해서는 전직대통령의 전매특허이기도 했다. 박근혜 전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대통령 임기동안 사면권의 제한적 행사 방침을 밝혀왔다. 2012년 7월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 시절 “사면권은 정말로 남용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대선공약으로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한 사면권행사 제한을 약속하기도 했다. 2013년 당선자 시절에는 “부정부패나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 할 것이고, 그러한 사면을 단행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8년 국회에 낸 헌법 개정안에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한 절차적 통제를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문대통령은 개정안에서 “대통령의 자의적 사면권 행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절차적 통제규정을 헌법상 명문화한다”고 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폐기됐다. 문대통령은 몇차례의 특별사면에서 뇌물죄 등 부패 정치인은 제외했다. 한명숙 전총리가 사면되지 않은 이유이다. 한 전총리는 재판과정에서 허위증언으로 유죄판결을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으나 재심도 추진되지 않고 있다. 
이대표가 말하는 국민통합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아니다. 국정농단 당사자들이 단죄받고 참회할 때만 국민통합이 가능하다.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문재인정부의 약속이기도 하다. 아직 촛불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검찰개혁은 진행중이고 적폐청산도 수많은 과제가 남았다. 언론개혁은 첫발도 떼지 않았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사회경제적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가 해야 할 일들이 널려 있는 것이다. 섣불리 ‘사면 바람잡기’에 나서는 것은 소모적 논쟁만 부추길 뿐이다.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청와대는 사면론에 원론적 입장만 보이고 있다. 아직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면을 검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이대표는 청와대와의 사전교감 관측에 대해 “그런 일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오는 14일 박근혜 전대통령의 대법 최종판결이 예정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도 이달중 열릴 예정이다. 따라서 사면론은 또다시 불이 댕겨질지 모른다. 사면이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나서 당당하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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