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공수처 필요성 일깨운 ‘96만원 꼼수불기소’

<김주언 칼럼> 공수처 필요성 일깨운 ‘96만원 꼼수불기소’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12.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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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사태의 핵심인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회장의 ‘옥중폭로’가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김 전회장은 지난 10월 옥중입장문에서 현직검사에게 술접대를 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사기꾼의 편지’로 “범죄자의 말을 어떻게 믿나”고 비판을 쏟아냈던 야당이나 일부 언론의 주장이 무색해졌다. 문건에 등장한 정치인이 구속되고 술자리에 참석한 검사와 변호사가 기소됐다. 특히 검찰은 술자리에 참석한 검사 2명의 향응수수액이 96만원이라며 기소하지 않아 실소를 자아냈다.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증명하고 공수처 설치의 시급성을 일깨운 사안이다.
문건에 등장한 윤갑근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이 구속됐다. 윤 위원장은 라임자산운용으로부터 2억여원의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검찰 수사결과는 폭로내용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라임펀드 판매재개 청탁으로 검사장 출신 야당 정치인(윤갑근 위원장)에 수억원 지급후 이종필과 (손태승) 우리은행장 등에 로비가 이뤄졌다.” 라임사태와 관련해 구속된 정치인은 이상호 전 민주당 부산사하을 지역위원장에 이어 두번째다. 이 전위원장은 김 전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8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김 전회장의 폭로문건은 ‘데스노트’일까. 변호사와 검사가 기소된 데 이어 윤위원장까지 구속되면서 정치권은 긴장하고 있다. 폭로내용이 검찰수사를 통해 하나둘 사실로 드러나면서 검찰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쏠린다. 야권은 여권인사에 대한 조치가 미진하다며 정치적 수사라며 반발해왔다. 반면 여권은 검찰수사가 여권인사만을 겨냥해왔다며 검찰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김 전회장은 그동안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다가 야권 인사들을 지목하면서 정치권의 공방은 가열돼왔다 
검찰은 김 전회장의 술접대를 받은 검사 3명중 2명을 불기소했다. 문건에 나온대로 현직 검사 3명과 변호사에 대한 김 전회장의 술접대가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중 3명은 김영란법(청탁금지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검사 2명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했다. 김 전회장은 4명에게 536만원 상당의 술접대를 했다. 그러나 검사 2명은 술자리 도중 밤11시에 귀가해 밴드와 유흥접객원 비용 55만원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들은 각각 96만2000원상당의 향응을 받은 것으로 계산돼 처벌기준 금액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는 게 불기소 이유였다.
권익위 사례집에는 경찰이 사건관계자에게 커피 한잔을 얻어마셔도 처벌된다고 되어 있다. 누리꾼들은 이를 토대로 온라인에 풍자 글과 포스터를 퍼날랐다. “검사는 룸살롱에서 피의자에게 향응을 받아도 처벌받지 않는다, 100만원이 아니면. 처벌하기엔 쪽팔리게 너무 적으니까.” “대통령에게도 대드는데 그까짓 김영란법쯤이야.” ‘검사님들을 위한 99만9000원짜리 불기소 세트’라는 술자리 메뉴 포스터도 등장했다. 많은 공감을 얻은 글은 이렇다. “소방관에게 커피 한잔 대접도 안된다며 검사들에게 술 99만원을 대접하는 건 되는 것이냐.”
실제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징계 양정기준에서도 드러난다. 검찰공무원에 대한 양정기준은 경찰청이나 감사원보다 관대하기 때문이다. 직무관련성이 있는 금품 및 향응(100만원 미만)을 받았을 경우 검찰은 감봉이상, 경찰과 감사원은 정직 이상 징계를 받는다. 공금횡령 및 유용에 대해서는 검찰은 300만원 미만인 경우 견책이상, 300만원 이상은 정직 이상 징계에 처한다. 반면 경찰은 경미한 경우 감봉부터 해임까지 가능하고, 중대할 경우 해임이나 파면까지 할 수 있다. 감사원도 100만원 미만일 경우 감봉이상, 100만원 이상은 정직에서 파면이다.  
검찰의 향응액 계산법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폭로당사자인 김 전회장은 변호인을 통한 입장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검사 3명은 옆자리에 여성종업원이 앉았고 한명당 50만원이 들었다. 검사 3명이 50만원의 접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추가로 마신 술값 등을 더하는 것이 맞다. 검찰 계산방식에 따르더라도 다른 후배들 모두 100만원을 초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우 황당하다”며 “공수처에서 재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참여연대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비용을 결제한 당사자도 함께 향응을 받은 사람으로 간주해 1인당 향응액을 낮췄기 때문이다. 김 전회장은 향응을 제공한 사람인 동시에 향응을 받았다는 웃지못할 촌극이 펼쳐진 것이다. 참여연대는 “검사들을 봐주기 위한 맞춤형 계산법, 맞춤형 불기소”로 “상식의 파괴이자 기소권 남용”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뇌물죄 대신 형량이 가벼운 김영란법만 적용한 점도 비판대상이다. 검찰은 접대시점이 라임수사팀을 구성하기 전이라는 이유로 직무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는 다르다.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대법원은 뇌물죄 구성요건인 직무관련성을 ‘과거 담당했거나 장래에 담당할 직무까지 포함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며 “뇌물죄 적용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직무관련성은 해당직무를 담당하지 않았더라도 직위에 따라 다양한 일체의 직무를 포함한다.
여성단체들은 ‘김학의들’을 양산하는 검찰을 규탄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향응내용이 더 문제”라며 “검찰은 여성에 대한 성착취 범죄를 근절하는 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여성폭력 범죄를 은폐 양산하는 공모자였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고 비판했다. 향응수수 장소가 강남소재 유흥주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의 성매매시장을 세계6위 규모로 성장시킨 주범이 기업의 접대문화”라며 “기업은 부정청탁을 위해 여성을 도구화했고, 검찰은 성착취범죄에 공모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검찰은 기소편의주의를 이용해 검찰조직을 치외법권 영역으로 만들고 그렇게 ‘김학의들’이 만들어졌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수사결과는 “검찰의 기소편의주의가 어떻게 제 식구 감싸기를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는지, 독점적 검찰권력이 어떻게 구조화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왔다. 게다가 검찰은 자신의 비위에 사과나 반성은 전혀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과 한마디 없다. 기소권 남용으로 ‘제식구 감싸기’를 일삼는 검찰의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검찰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검사들을 대상으로 한 뇌물이나 향응접대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수사 및 기소와 관련된 검사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기 때문이다. 비리 검사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분이 반복되는 것 역시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치권에서 공수처 설치가 논의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대통령 후보들은 여야 할 것 없이 검찰권력을 분산하고 견제하는 장치로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공수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공수처 설치가 눈앞에 다가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수처는 검찰의 내부 비리와 잘못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고 책임을 물을 길도 없는 성역이 돼왔다. 문대통령은 “검찰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민주적 통제를 받게 된다면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비판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신뢰받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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