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기자 ‘좌표찍기’, 언론길들이기인가, 보도비평인가

<김주언 칼럼> 기자 ‘좌표찍기’, 언론길들이기인가, 보도비평인가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10.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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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기자 수난시대에 접어 들었다. 특정기사에 불만을 가진 독자들이 해당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인신공격이나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기자들에게는 입에 담지 못할 성적희롱까지 일삼는다. 일부 기자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페이스북 등 SNS에 기자의 실명을 공개하는 ‘좌표 찍기’가 성행하면서 기자들 사이에서는 ‘언론 길들이기’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반면 정치인들은 언론소비자들의 당연한 ‘보도 비평’이라고 강변한다.
‘좌표찍기’는 SNS에 인터넷기사를 링크시켜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대상을 특정하여 자신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대응하자며 독려하는 행위이다. 정치인이 SNS를 통해 비판기사를 링크하고 기자실명을 거론하며 반박함으로써 지지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 내려 한다. 지지자들은 댓글과 이메일을 통해 비판글을 쏟아낸다. 문제는 욕설 등 악성댓글이 넘쳐난다는 점이다. 이메일에도 무더기 악플 스팸이 가득찬다. 특히 여성기자들에게는 걸레 강간 창녀 등 모욕적 언사들도 거리낌없이 쓰인다.  
여당의원이 페이스북에 한 기자의 실명을 언급하며 기사를 비판한 게시글을 올린 이후 이 기자는 인신공격과 욕설이 담긴 악플에 시달렸다. 게시글에는 신상정보가 담긴 악성댓글 90여개가 달렸다. 기사의 맥락과 무관한 인신공격 비방 외모평가 여성혐오 등이 난무했다. 기자들은 정치인들이 기자실명을 거론해 비판하는 것은 의도가 있다고 본다. 기사비판 보다는 열성 지지자들의 기자에 대한 인신공격과 악플공세를 유도해 언론을 길들이려는 의도가 짙다는 주장이다. 반면 정치인들은 실명기사에 대한 집단지성의 정당한 보도비평이라고 강변한다.
좌표찍기는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많이 활용한다. 정청래 의원은 페이스북에 ‘文 대통령, ‘잘못하고 있다’ 50.3%… 추미애·윤미향 여파’ 기사를 쓴 기자이름을 올리고,  “본문내용이 대통령 지지율도 오르고, 민주당 지지율도 올랐다면 제목으로 야당의 과도한 추미애 공세 안 먹혀, 야당의 막가파식 폭로 역풍 조짐, 야당의 지나친 공세로 오히려 지지율 까먹어. 이게 정상 아닙니까?”라고 지적했다,
홍익표 의원은 페이스북에 ‘한은총재 불러놓고 “아파트값 잡으라”는 與의원들’ 기사를 링크하고 기자실명을 언급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양적 완화해도 돈이 실물경제로 이어지는 것보다 자산버블이 더 커지니 한은이 보다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라고 한 것”이라며 “모르고 썼으면 무능한 기자고, 알면서 이렇게 기사제목 잡고 쓰면 기레기 소릴 듣는다.”
두 의원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해당기자들은 실명이 거론되면서 해당의원들의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인신공격과 악플공세에 시달렸다. 심지어 물리적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일부기자들은 “시민이 아닌 공인인 국회의원들, 특히 권력을 가지고 있는 여당의원들이 기자 개인을 상대로 좌표 찍기에 편승해 테러행위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기자들의 경우 노골적 성희롱을 당하는 등 피해가 심각하다. ‘가만두지 않겠다’, ‘찔러 죽이겠다’는 메일도 들어온다.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성적 모욕이 담긴 메일도 쏟아진 다. ‘네 이름으로 기사를 썼으니 당해도 싸다’는 내용도 있다. 한 기자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런 성적 모욕을 당해도 싼 건가”라며 “여당의원이라는 무게와 기자들이 당할 피해는 생각하지 않은 폭력적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기자를 향한 협박은 세계적 현상이다. 특히 여성기자들은 혐오의 대상이다. 이들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을 향한 생명 위협이나 강간하겠다는 성적 협박에 시달린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펴낸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온라인 성희롱-악플러들의 공격’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유럽의회가 실시한 47개 회원국 언론인 940명 대상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40%가 “사생활에 영향이 미칠 정도”로 괴롭힘 대상이 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중 53%는 사이버학대를 당했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데모스는 수천건의 트윗을 분석한 결과 여성기자가 남성기자보다 더 많은 모욕을 받았다. 여성기자들에게 자주 사용되는 모욕적 단어는 ‘걸레’와 ‘강간’ ‘창녀’ 등이었다. 심지어 조작된 사진이나 포르노 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인도의 탐사보도 프리랜서기자는 모디 인도총리의 민족주의 담론을 비판했다가 악플러의 표적이 됐다. 악플러들은 창녀와 매춘부, IS성노예로 불렀다. 그의 얼굴을 나체사진에 합성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어머니 사진을 가져가 조작하기도 했다. 
반면 정치인들은 실명비판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청래 의원은 “국민이 개혁대상으로 검찰과 언론을 꼽는다. 왜 개혁의 대상이 됐는지 언론이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정 의원은 “언론도 권력이기 때문에 감시받아야 한다”며 “기자가 의원을 실명으로 비판하듯 의원도 기자를 실명으로 비판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재정 의원도 “기자는 언론사와 더불어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책임이 있다”며 “정치권과 언론은 감정적 대립이 아닌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차분하고 냉정한 성찰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왜곡된 언론보도로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은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 SNS를 통해 “좌표찍기는 기자들이 원조이지요. 악플과 진배없는 왜곡조작 기사로 일제히 도배하는 작태를 보였잖아요”라고 운을 뗐다. 황씨는 기자들의 좌표찍기에 몇차례 당해 이메일과 SNS를 통해 온갖 욕설과 협박을 받아 잘 알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신들이 공격해대면 빌빌 기기를 바랐겠지요. 옛날에는 그랬겠지요.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얼마든지 맞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는 언론의 패악질에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기자는 자기이름을 걸고 기사를 쓰고 보도한다. 따라서 오보나 왜곡보도에 대한 책임은 기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중하고 정확하게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자칫 오보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책임이 돌아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무차별 폭로나 조작된 정보가 넘쳐난다. 선정적이고 공격적 제목으로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려는 기사도 많다. 허위보도로 명예가 실추되거나 재산상 손해를 입는 피해자들은 이를 만회하기도 어렵다.  ‘기레기’라는 오명이 회자하고 언론불신이 극에 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언론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행세해왔다. 권력감시를 내세워 근거없는 비판을 남발해도 이를 견제하는 세력은 적었다. 언론이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의 얘기다. 그러나 이제 언론소비자들도 단지 수용자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초연결사회로 접어들면서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도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전우용 교수는 SNS를 통해 “기자들로 하여금 자기 키보드가 ‘흉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건, ‘쓰레기자’가 시민의 일원이 되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렇다면 넘쳐나는 인신공격이나 성적모욕 등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국경없는 기자회는 정부가 악플러에 대한 기소강화와 체계적 수사를 하도록 조언했다. 플랫폼 사업자는 위협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기자들을 위해 비상경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회사차원에서 기자들에게 법률지원을 할 필요도 있다.
언론이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상호비판과 견제를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다만 서로 공격하는 데 그쳐서는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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