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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가짜뉴스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명과 암
  • 김주언 논설주간 newmedia54@dailysportshankook.com
  • 승인 2020.10.0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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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부수 3만8000부였던 미국 일리노이주 일간신문 앨턴 텔레그래프(Alton Telegraph)는 1980년 파산했다. 한 건설업자가 마피아와 연관돼 있다는 오보로 피소된 뒤 패소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손해배상액 920만달러(약 111억원)중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250만달러(약 30억원)에 이르렀다. 취재진이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부실한 취재가 원인이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Philadelphia Inquirer)는 1996년 2150만달러(약 259억원)의 징벌적 손해배상판결을 받았다. 상대는 검사출신 변호사였다. 그가 검사시절 살인사건을 수사하며 특정용의자 아버지와 긴밀한 사이였기 때문에 용의자가 석방됐다고 보도했다. 취재기자는 동의 없이 통화를 녹음해 유죄판결을 받고 직장을 옮겨야 했다. 수사검사가 기사에 등장한 인물이었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는 1962년 조지아대와 앨라배마대 간 미식축구경기 승부가 조작됐다고 1967년 보도했다. 조작 당사자로 지목된 사람이 소송을 제기했다. 배심원들은 일반손해배상 6만달러(약 7000만원)와 징벌적 손해배상 300만달러(약 36억원) 판결을 냈다. 법원은 46만달러(약 5억5000만원)로 판결했다.(이상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이 2019년 발간한 ‘징벌적손해배상의 적정한 운영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
미국은 일반 손해배상액의 15~40배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액도 과도하지 않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액 산정때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인지와 불법행위가 반복됐는지를 판단한다. 일부 주는 피고의 재산상태를 고려한다. 형사제재를 받은 경우 동일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중처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뉴햄프셔주와 매사추세츠주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금지한다. 자체검열을 조장하여 수정헌법 1조를 위축시킨다는 이유 때문이다. 
영국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널리 운용된다. 옥스퍼드대가 2000~2015년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진 1심사건을 조사한 결과 39.7%가 인용됐다. 평균 금액은 1만8181파운드(약 2758만원), 중간값은 7630파운드(약 1157만원), 최고액은 14만896파운드(약 2억1376만원)이었다. 이처럼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언론사가 파산할 만큼 가짜뉴스에 대한 제재가 강력하다. 반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부과된 비율은 3%수준이며 배상액은 일반 손해배상액의 3배이하였다. 영국에서는 주관적 판단이 높고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개정안은 19개 법률에 흩어져 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상법으로 규정해 일반분야로 확대한다는 취지이다. 이렇게 되면 언론사도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대상이 된다. 오보에 대한 고의나 중과실이 인정되면 손해배상액의 5배내에서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법무부는 언론사를 겨냥한 법안이 아니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거나 악의적으로 왜곡된 보도를 한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가짜뉴스에 의한 실질적 피해구제는 이뤄지지 않는다. 제도적 뒷받침이 없기 때문이다. 법원이 판결한 손해배상액은 500만원이하가 절반에 이른다. 판결 배상액 500만원이하가 47.4%, 500만~1000만원은 23.4%였다. 미디어오늘이 언론중재위 언론판결분석 보고서(2009~2018년)를 정리한 결과이다. 가장 빈도가 높은 청구액 평균 7800만원 중 가장 많이 선고한 배상액은 평균 565만원으로 10배를 넘는 차이를 보였다. 2019년 배상액도 비슷하다. 500만원이하 53.8%, 500만~1000만원 22.6%, 1000만~2000만원 7.5%, 2000만~5000만원 9.7%, 5000만원이상 6.4%였다. 
김준현 언론인권센터 언론피해구조본부장은 언론인권통신에 게재한 ‘징벌적 손해배상 들여다보기’에서 “오보이든 허위보도이든 잘못된 보도로 인격권 침해가 발생하면 보도이전의 원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며 “손해배상액은 대부분 500만~1000만원에서 결정되므로 한순간에 벌어진 명예훼손에 비하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언론사는 악의적 보도로 특정층 지지를 강화하고 영향력도 키우는 등 무형의 이익을 볼 수 있지만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이를 따르지 못해 공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언론개혁의 핵심과제로 거론됐다. 그만큼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의 폐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기레기’라는 모멸적 별칭이 씌워진 이유이기도 하다. 무분별한 단독경쟁, 진영논리에 따른 확증편향, 검증없는 받아쓰기 등 한국 언론의 고질이 만연해 있다. 정의연 사태의 경우 언론중재위에 제소된 기사 13건중 11건이 정정 또는 반론보도로 조정됐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가짜뉴스에 대해 ‘따박따박’ 고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급기야 민주당 의원들이 나섰다. 정청래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문체부장관이  언론사에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신현영의원은 피해자가 기사의 열람차단청구권을 신설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언론자유를 부당하게 위축시키거나 언론통제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지적을 받았다.
오픈넷은 정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국가기관이 허위와 진실을 결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표현의 허용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국가의 검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자칫 비판여론을 차단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법부 판단 이전에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조정 및 중재를 통해 신속하게 해결한다는 언론중재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신의원 개정안에 대해서도 “공적인물이 의혹제기나 비판보도에 대한 열람차단청구를 남발해 보도활동을 심대하게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이 높다”고 우려했다.
기자협회,편집인협회, 신문협회 등 언론3단체는 법무부의 입법예고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악의적 가짜뉴스라는 모호한 잣대로 언론에 징벌적 처벌을 가하겠다는 것은 민주정부의 발상이라고는 믿기 힘들다”며 “판단주체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 비판적 보도를 악의적 보도로 규정한 뒤 언론탄압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감시기능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축시키려는 과잉규제이자 위헌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침해된 인격권에 대한 실질적 배상과 언론에 대한 불신해소는 도외시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권력이 남용할 경우 언론의 감시기능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권의 성향에 따라 악용할 소지도 크다. 박근혜정권 말기 주호영 한국당의원이 문체부장관의 시정명령을 담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을 보아도 그렇다. 특히 자본권력이 마구잡이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할 경우 언론의 감시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권력자들이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무기로 언론통제에 나설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공론장을 오염시키는 행위이다. 그러나 가혹한 제재는 언론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입법 예고된 상법 개정안은 ‘고의나 중과실’을 요건으로 한다. 그러나 판단기준이 모호하다. 따라서 ‘고의’와 ‘중과실’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가혹한 제재는 형사처벌이다.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을 없애고 민사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실질적 피해구제가 이뤄지도록 손해배상액을 높일 필요는 있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데일리스포츠한국 김주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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