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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는 살아있는 해양체험 공간…섬발전진흥의 무대[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96>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등대
  • 박상건 기자 pass386@daum.net
  • 승인 2020.08.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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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가사도는 전남 진도군 서쪽 해안에 잇는 섬이다. 바로 건너편이 신안군이다. 진도군 조도면 소속 섬들을 일컫는 ‘조도군도’ 중 첫 번째로 꼽는 섬의 무리가 가사군도다.

섬은 북에서 남으로 펼쳐지는데 동에서 서로 잔소나무로 위장한 듯 방카를 연상케 하는 대소동도, 석벽을 구축한 주지도(손가락섬), 양덕도(발가락섬), 구멍 뚫린 공도(혈도), 연병장 같은 가사백사, 좌우로 호송이라도 하는 듯 무장된 제도, 다공도, 접우도, 북송도, 불도 등이 일시에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가사도 어선(사진=섬문화연구소)

맑은 날에는 새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에 천태만상의 섬이 출렁이고 기암괴석이 빛난다. 마치 파란 융단 위에 진주를 뿌려 놓은 듯이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을 연출하는 가사도는 지형적으로 말을 닮았고 그 이마에 하얀 가사도등대가 있다.

등대는 후순에게 물려줘야 항 위대한 문화유산

등대해양문화공간은 살아있는 해양체험 공간

등대와 섬과 바다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넓혀주는 공간 

강인한 정신력과 정서순화의 광장…섬발전 진흥의 무대

아쉽게도 가사도 하늘은 거의 잿빛이다. 해역은 검푸른 파도가 절벽에 부딪히며 물보라 친다. 사자도라고 불리는 광대도는 가사도2리로 바다에 펼쳐진 괴이함 암석으로 이루어진 섬인데 낭떠러지 같은 바위굴 속으로 오르면 굴속 돌부처를 지나 광대도 주봉인 신선바위 또는 바둑바위의 해발 77m 상봉에 오르게 된다.

섬문화연구소 박상건 소장이 연재하는 96회째 섬과 등대여행기

가사도 앞바다는 이처럼 해류영향으로 1년에 반 이상 안개가 낀다. 국내외 크고 작은 선박들이 드나드는 길목은 급속한 해류가 흘러간다. 오죽하면 왜군들이 임진왜란 때 이 수로에서 울돌목 우수영으로 가다가 참패를 당했을까.

그래서 그 바다에 등대가 설치돼 있다. 인근의 하조도등대가 장죽수도를 관장하는 이정표라면, 가사도등대는 목포의 내외항의 교차로에서 제주, 부산, 인천 등지로 오고가는 지정학적으로 해상교통경찰의 역을 담당한다. 등대가 없으면 안 될 서남해 연안항로와 동남아 항로가 분기되는 지점에서 365일 항해자와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다.

가사도 노을바다

가사도 섬 면적은 5.83㎢이고 해안선 길이는 약28㎞, 최고점은 180m이다. 섬은 대부분 암석해안이고 북서쪽 해안선은 급경사 암벽으로 이뤄졌으며 남서쪽 해안은 사질해안이다. 동북쪽의 만은 간석지가 넓게 발달하여 농경지와 염전으로 이용된다.

가사도 어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가사도는 해상교통체계상 목포 생활 권역의 벽지 어촌이다. 진도군 조도면 해역 중 유일하게 다도해국립공원 지구에서 제외돼 농어업이 발달됐다. 일제강점기 때는 이 섬에서 도자기 원료 납석 광산이 번성해 당시 부촌 섬으로 통했다. 등대 뒤편이 광산이었다. 현재 주민들은 주로 벼, 대파, 고추 농사를 짓고 바다에서는 톳과 미역을 양식한다. 특히 톳은 가사도 특산물로 일본으로 수출한다.

섬 남쪽에 청정바다의 해수욕장이 있다. 가사도(加沙島)는 모래 해변이 유명한데 모래가 많다는 의미에서 ‘더할 가’ ‘모래 사’자를 따서 ‘가사도’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섬 모양이 가위 모양, 즉 전라도 사투리 ‘가새’를 따서 불렀다는 설도 있고 살생을 금하는 불교적 전설이 내려오는데 마을 당산이 마치 부처 옷과 같다고 해서 부처의 옷을 말하는 가사(袈裟)를 따서 불렀다는 설도 있다.

해무 낀 가사도 전망대등대

가사도에 최초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600년대 중엽, 인동 장씨인 장봉산 씨가 해남 우수영에서 들어와 제주 고 씨와 결혼해 정착했다고 한다. 1896년 이전에는 진도군 진도면에 속했다가 일제강점기 가사면으로 독립된 후 1914년에 조도면에 통합됐다. 현재 27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옛날 인근 섬사람들은 돛단배를 이용해 밤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가사도 쪽을 바라보면 산 능선에서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여 이를 이상하게 여긴 주민들은 말의 머리 쪽 능선에 조상의 묘를 옮겼고, 그 후 자손이 번창, 고위직에 많이 올랐다는 것이다. 아마 그 불빛이 등대 불빛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사도등대는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 산 395-1에 있다. 가사도등대는 팔각콘크리트구조로 높이 17m, 해수면으로부터 70m 고지대 단애에 위치한다. 그 모퉁이에 서서 등대 불빛은 15초마다 한 번씩 반짝이면서 긴 세월 동안 서남해역 교통로의 이정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평생 등대원으로 살아온 가사도등대 강용정소장의 마지막 근무 모습

가사도등대는 1915년 10월 처음 무인등대로 불을 밝혔다. 등대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1984년 10월 유인등대로 새롭게 태어났다.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 국산 회전식 대형 등명기로 강력한 불빛을 발사한다. 그 불빛은 50km까지 비춘다. 안개가 자욱한 날, 항해자는 늘 긴장돼 물살과 싸운다. 가사도등대는 이런 선박들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음향신호인 전기폰 무신호기를 작동한다.

가사도등대는 최첨단 위성항법보정시스템인 DGPS감시국과 연안해상교통관제(VTS)서비스 제공을 위해 레이더를 설치해 운영하며 우리나라의 특수항로표지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또 국내외 상선들에게는 위성을 통해 쏘아 올린 항법장치에 따라 등대와 교신하면서 현 위치와 항해하는 뱃길을 알려줬다. 이 위성항법보정시스템(GDPS)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GPS보다 오차율이 적어 뱃길을 인도하는 최적의 등대 통신수단이다.

문제는 이 레이더 철탑시설이 등대에 바짝 붙어 있어서 105년 역사의 문화유산인 등대의 미관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오래 전 평생 등대원으로 살다가 가사도등대 소장으로 마지막 근무를 하던 분을 만나러 갔었다. 빗줄기가 하염없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날도 다른 등대 직원들과 등명기를 닦고 기계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숙소 옆에 마련한 텃밭에서 먹거리를 따와 부족한 부식을 채워갔다.

가학포구에서 바라본 가사군도

지금은 모든 등대 시설이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근무환경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2인 1조로 등대를 24시간 관리하고 덤으로 낮이면 방문하는 다양한 관광객들까지 응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는 점점 전국의 등대를 무인화로 전환하고 있다. 등대는 자자손손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등대해양문화공간은 삼면이 바다인 해양민족의 후예들에게 살아있는 해양체험 공간이고 이를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넓혀주고 강인한 정신력과 정서순화의 광장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등대와 섬과 바다는 대한민국의 경쟁력이고 섬 발전과 진흥의 무궁무진한 무대다.

해안에서 바라본 등대

가사도등대로 가는 길은 목포에서 여객선을 타고 방식이 있고 가사도 맞은 편 가학포구에서 도선을 타는 방법이 있다. 목포 노선은 너무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승용차를 타고 작은 마을 가학리로 가서 건너는 것이 좋다. 개인 배를 이용할 경우 10여분이면 마을 선착장에 당도할 수 있다. 문의: 진도군 조도면 가사출장소(061-540-6831)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필자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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