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코로나19와 맞먹는 ‘인종차별 반대’ 팬데믹

<김주언 칼럼> 코로나19와 맞먹는 ‘인종차별 반대’ 팬데믹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6.1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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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Police Everywhere, Justice Nowhere(경찰은 어디에나 있지만,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 코로나19 대재난의 와중에 인종차별에 항의하여 거리로 뛰쳐나온 시위대의 피켓에 쓰여진 구호이다. 미국에서 백인 경찰관의 가혹행위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세계 곳곳에서 인종 및 소수자 차별과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플로이드가 남긴 말 ‘I Can’t Breathe(숨을 쉴 수 없어요)’를 연호했다. 세계 시민의 연대 메시지가 지구촌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항의시위는 캐나다와 유럽 호주 일본 등 세계로 번지고 있다. 각국에서 일어난 차별과 탄압, 이를 방치하거나 조장한 기득권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시민에 폭력을 가한 공권력에 대한 분노는 뜨겁다. 세계 곳곳 시위대의 연대는 폭넓고 구체적이다. 미국 시위대와 연대하면서 자국에서 벌어진 비슷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SNS를 통한 온라인 시위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진다. “우리가 조지 플로이드다.” 차별에 맞선 세계인의 분노와 연대는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못지않다.
지난 주말 독일 베를린, 영국 런던, 프랑스 마르세유, 덴마크 코펜하겐, 벨기에 브뤼셀, 스페인 마드리드,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브뤼셀에서는 경찰이 물대포를 동원했다. 참가자들은 ‘인종차별을 멈춰라’, ‘인종차별은 팬데믹’ 등의 손팻말을 들고 플로이드를 추모하며 인종차별에 반대했다. 각국 미국 대사관앞에서는 항의가 잇따랐다. 코펜하겐에서는 5000여명이 대사관 앞에 모여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마드리드에서도 수천명의 시민이 대사관 앞에서 ‘숨 쉴 수 없다’ 등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노예무역 등 과거에 저질러진 인종차별에 대한 과오를 따져 묻기도 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는 시민이 17세기 노예무역상 콜스턴의 동상을 끌어내려 끌고 다니다 강으로 던졌다. 브리스톨은 노예무역 중심지였다. 런던에서는 윈스턴 처칠 동상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써 붙이기도 했다. 브뤼셀에서는 아프리카 콩고에서 잔혹한 식민통치를 했던 국왕 레오폴드2세의 동상이 훼손됐다. 시위대는 동상 위에 올라타 ‘배상(reparation)!’을 외쳤고 ‘수치’라는 낙서를 새기기도 했다. 레오폴드 2세의 식민통치시기 100만명 이상의 콩고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위대는 각국의 인종차별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파리에서는 4년전 흑인 아다마 트라오레의 죽음에 대해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24살이던 트라오레는 파리 근교에서 경찰에 체포된 뒤 숨졌다. 유족은 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졌다고 주장해왔다. 지난달 29일 사인이 질식사라는 유족측 보고서를 거부하면서 항의시위가 가열됐다. 영국 런던 그렌펠타워 참사도 다시 떠올렸다. 2017년 공공임대아파트 그렌펠타워의 대형화재로 숨진 72명 중 40여명이 아프리카계 무슬림 주민이었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원주민에 대한 경찰의 가혹행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5년 시드니의 한 교도소에서 교도관 5명의 강압적 제압과정에서 원주민 데이비드 던케이가 숨졌다. 그는 숨지기 전 “숨을 쉴 수 없다”고 12번이나 말했다. 최근 SNS에서는 ‘원주민 생명도 중요하다’(#aboriginallivesmatter)는 해시태그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인종차별에 대한 저항(Stand Up To Racism)’ 등 영국 단체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영국에서 불균형적으로 많은 흑인과 아시아인, 소수민족 출신이 코로나19로 죽었다”며 정책전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스포츠 스타들의 항의 세리머니도 눈길을 끌었다. 독일 분데스리가 선수들은 한쪽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로 인종차별에 항의했다. 영국 축구팀 리버풀과 첼시 등도 훈련에 앞서 단체로 같은 퍼포먼스에 동참했다. 한쪽 무릎을 꿇는 포즈는 4년 전 미국 풋볼 선수 콜린 캐퍼닉이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표시로 국가제창을 거부하고 한쪽 무릎을 끓는 모습으로 시위한 것에서 비롯됐다. 축구 리그엔 정치적 의미를 담은 행위를 하면 징계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피파(FIFA)는 홈페이지를 검은색 상징들로 바꾸고 인종차별반대 입장을 밝혔다.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열흘이 넘도록 격렬 시위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위기로 세계 최고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데다 실업자가 4000만명에 이르러 실업대란으로 경제위기가 엄습해왔다. 여기에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종차별 문제까지 불거져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1918년 스페인독감, 1930년대 경제대공황, 1968년 인종폭동 등 미국 현대사를 강타했던 3대 위기가 한꺼번에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공중보건 와해와 실업대란으로 쌓인 불만이 인종갈등으로 번져 폭발했다.
혼란의 와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책임전가와 분열적 언사로 지도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이드사건이 발생한 미니애폴리스의 민주당 시장을 공격하고, 안티파(안티파시즘) 운동을 테러단체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를 조롱하기도 했다. 인종차별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임에도 ‘사회부조리 부당 탄압 연대’ 대신에 ‘배후 테러리스트 급진좌파 무정부주의자’를 내세워 분열을 조장한다.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대선전략이 아닌지 의아심이 든다.
시위대에게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은 전직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전국에 걸친 시위물결은 경찰관행과 사법제도 개혁에 수십년간 실패를 거듭해온 데 대한 정당한 좌절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시위 참여자들이 “평화적이고 용기 있으며 책임감 있고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투표와 정치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원한다면 시위와 정치중 한 가지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모두를 해야 한다. 결집해서 의식을 높여야 하고 개혁을 위해 행동할 후보를 뽑기 위해 표를 던져야 한다.”
국내에서도 플로이드 추모와 인종차별 반대에 연대하는 시위가 6일 서울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검은색 복장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문구가 적힌 마스크도 보였다. ‘I Can’t Breathe(숨을 쉴 수 없다)’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는 한쪽 무릎 꿇기 퍼포먼스를 펼쳤다. 시위대는 “No Justice, No Peace(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국내 추모행진을 제안한 심지훈씨는 “국내에서도 다민족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만큼 연대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인종차별은 인류사에서 뿌리깊은 갈등요인이다. 그동안 세계 각국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차별을 금지하고 혐오발언을 규제하는 법제를 마련해왔으나 근절되지 않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동양인을 비하하고 혐오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수많은 인권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제도적 인종차별은 사라졌지만, 경찰폭력 등에 희생된 사람은 흑인이 훨씬 많다. 이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세계인의 행동은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다. ‘인종차별 반대 팬데믹’인 셈이다.
한국에도 인종과 민족 젠더 출신지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 다문화사회인 한국에서는 차별과 혐오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코로나19 발생초기에 있었던 중국인 혐오가 대표적이다. 재난지원금 지급 등 코로나19 대응에서도 이주노동자 등은 제외되기도 했다. 시민사회는 10년 전부터 차별과 혐오 발언에 대응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YMCA 김경민 사무총장은 “보편적 시민권 차원에서 한국사회에서 삶과 사회적, 문화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며 “차별금지법이 21대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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