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5·18진상규명을 위한 ‘파레시아 운동’

<김주언 칼럼> 5·18진상규명을 위한 ‘파레시아 운동’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5.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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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봉기는 서울과 워싱턴을 전율시켰다. 시위는 자생적이었지만 정부는 이를 ‘자극적 선동가’ 또는 ‘북한에서 파견된 선동가’ 탓으로 돌렸다. 북한이 38선을 넘으려는 유혹에 빠질 위험은 당장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지미 카터는 한국을 향해 두대의 공군기를 보내는 상징적 제스처를 취했다. 전두환은 2주전 서울과 다른 도시에서 일어난 학생폭동 이후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써 반격했다.” 40년동안 볼 수 없었던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1980년 6월2일자 기사중 일부이다. 전두환 신군부는 이 기사를 잘라내고 뉴스위크를 국내에 배포했다.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된 뉴스위크 역시 6~9쪽이 잘려나가 있다. 목차부분은 가위로 도려낸 흔적이 남아 있다. 신군부가 계엄령을 발동한 뒤 보도검열단을 구성해 국내언론은 물론, 외국매체까지 검열했기 때문이다. 이제 꼬박 40년만에 기사원본이 공개된다. 서울기록원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기획한 ‘넘어 넘어 : 진실을 말하는 용기’ 전시회에서다. 서울기록원은 해외 구매자와 수차례 접촉해 원본을 입수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판본 10종과 5·18관련 해외기사 등이 전시된다.
커버스토리로 다뤄진 기사는 광주의 참상과 전두환 신군부가 자행한 폭력, 당시 한국의 정치 및 경제 상황 등이 담겨 있다. 기사는 첫머리에 광주봉기는 “6·25전쟁 이후 한국에서 발생한 폭력사태 중 최악의 사건이었다”며 전두환 신군부를 비판했다. 특히 광주항쟁을 ‘북한에서 파견된 선동가’ 탓으로 돌리려는 신군부의 왜곡의도를 겨냥했다. “북한이 38선을 넘으려는 유혹에 빠질 위험은 당장 없어보였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신군부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민주적 통치흔적을 없애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고 꼬집기도 했다.
“목격자들은 적어도 한명의 젊은 여성이 속옷까지 벗겨져 군인에 의해 끌려 다녔다고 말했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공원에 매달린 시신들에 대한 소문은 광주 전역에 퍼졌고 도시는 분노에 휩싸였다. 분노에 찬 수만명의 시민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전두환의 퇴진을 요구하고 정부군과 싸웠다. 소총 기관총 심지어 장갑차까지 갖춘 반군들은 정부군을 도시 외곽의 감옥이라는 하나의 요새로 다시 몰아갔다. 광주는 시위대의 것이었다.” 전두환의 비위를 엄청 상하게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부분이다. 
뉴스위크 기사에는 신문사 기자들이 언론검열에 항의하기 위해 취재를 거부하거나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실제로 3월 동아일보 기자들은 언론검열 철폐와 자유언론 실천을 주장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를 시작으로 다른 언론사에서도 잇따라 검열철폐를 요구하는 기자들의 결의가 이어졌다. 기자협회는 5월16일 회의를 열고 20일 자정부터 계엄사의 검열을 거부키로 결의했다. 기자협회는 5월20일을 ‘기자의 날’로 정했다. 계엄사는 기자협회 간부들을 검거했으나 대부분 언론사의 기자들은 ‘광주사태 사실보도 허용’ 등을 내걸고 제작거부에 나섰다.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는 자신들에 순응하는 언론구조를 만들기 위해 64개 언론사를 18개로 통폐합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인 1000여명이 강제로 해고됐다. 당시 검열과 제작거부 투쟁으로 해직된 사람은 230여명에 이른다.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고승우대표는 “80년 언론학살은 내란과정에서 벌어진 언론에 대한 탄압이며 천여명의 언론인을 불법 해고한 것으로, 그런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80년 언론투쟁 역사바로잡기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광주학살과 검열에 저항하다가 강제 해직된 기자들의 명예회복과 배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두환은 정권을 잡은 뒤 엄격한 언론통제를 통해 광주학살의 진상을 은폐해왔다.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 보도지침 하달 등을 통해 정권에 비판적 보도를 금지시켰다. 따라서 전두환 집권시기에는 광주의 진실이 은폐될 수 있었다. 학생운동권 등에서 해외언론에서 방송된 영상물을 은밀하게 들여와 비디오를 통해 진상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활약이 없었다면 풍문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국회에서 광주문제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마저 언론에 보도될 수 없었다. 
전두환이 재임당시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데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문건도 나왔다. 안기부와 보안사 등이 참여해 비밀리에 조직한 80위원회는 5·18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왜곡했다. 1985년 6월15일자 ‘광주사태 진상 해외홍보책자 발간계획 보고’ 문건이 그것이다. 문공부 해외공보관실이 “왜곡된 5·18의 진상을 해외에 올바로 알리기 위해 홍보책자를 발간하겠다”는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서다. 문공부는 ‘광주 리포트’라는 제목의 책을 만들어 재외공관과 해외 주요언론사, 외신, 방한 인사 등에 제공할 계획이었다.
홍보책자에는 국방장관이 국회 국방위에 보고한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고 쓰여 있다. 국방장관은 “5·18직전 북한군이 남침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정치세력의 배후조종을 받았다”거나 “시민이 계엄군에게 기관총 등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고 보고했다.  해외홍보책자 발간계획은 5·18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왜곡하기 위해 만든 80위원회와 연관이 있다. 당시 안기부 주관으로 설립된 대책기구는 80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위장했다. 5·18왜곡의 정점에 당시 청와대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1987년 6·10시민항쟁으로 전두환정권이 무너진 이후 ‘광주사태’는 5·18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40년이 되어가는 데도 전두환이 왜곡시킨 억지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군 침투설 등 거짓선전까지 가미돼 광주정신을 훼손시킨다. 헬기사격이나 발포명령자 규명 등 핵심진상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반란수괴’ 전두환은 진정한 사죄 대신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온갖 낭설을 퍼뜨린다. 여기에 일부 정치인들까지 가세해 망언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동안 오월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진상조사는 4차례나 있었다. 하지만 핵심사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해말 출범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달중 본격조사를 시작한다.  발포명령자 규명과 행방불명자 소재파악 등이 주요 조사대상이다. 광주 외곽 등지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도 진상규명 범위에 속한다. 헬기사격 경위와 관련한 진실 은폐·조작 의혹, 계엄군 보안사 수사관의 성범죄 등도 밝혀내야 할 과제이다. 조사위는 앞으로 3년 동안 진상규명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완의 숙제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질지 기대된다.
조사위는 ‘파레시아(parrhesia·진실을 말하는 용기)운동’도 병행할 방침이다. 당시 출동군인들, 암매장에 참여했던 군인들, 살상에 참여했던 장병들이 이제는 고백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사회적 지지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조사위는 ‘5·18진실 고백운동’에 고위급 가해자들이 참여할 것을 기대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5·18의 진실을 찾는 사람들과 왜곡하려는 사람들 간의 대립과 갈등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송선태위원장은 “이번 진상조사가 국민화합의 단초를 열어가는 데 일조하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고 밝혔다.
‘파레시아 운동’에는 무엇보다도 ‘반란수괴’ 전두환이 먼저 나서야 한다. 광주학살의 진실을 밝히고 진정한 사죄를 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그래야만 다른 가해자들도 진실을 밝히고 참회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5·18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다. 민주와 인권. 평화가 한국사회에 뿌리내리게 한 민주화의 표상이다. 민주사회는 화해와 용서가 우선이다. 가해자들도 양심선언을 통해 진정한 사과와 용서를 통해 자랑스러운 민주시민으로 떳떳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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