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재난지원금은 ‘헬리콥터 드롭’으로

<김주언 칼럼> 재난지원금은 ‘헬리콥터 드롭’으로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4.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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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이 여당인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민주당은 180석을 확보해 1987년 체제이후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전대통령이 탄핵당한 이후 반성조차 없이 발목잡기로 일관해온 통합당이 다시 탄핵당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제2의 촛불혁명이라는 뜻이다. 민주당은 환호하기에 앞서 겸손한 자세로 몸을 낮추고 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 사태로 불거진 국난극복이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눈앞에 닥친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여부가 민주당의 공약실천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총선 이후에도 전국민 확대지급을 강조하고 나섰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재난대책이지 복지대책이 아니다. 코로나19 국난을 맞아 개인지원뿐 아니라 일자리 수요 등이 포함된 것이다.” 이대표는 “통합당 당선자들 가운데 전 국민 지급에 반대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자기당이 선거때 공약한 것 뒤집는 것”이라며 “또 정쟁거리로 삼으면 응분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총선 과정에서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는 1인당 50만원씩 전 국민 지급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부는 하위소득 70%에게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2차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정치권 일각에서 100% 전 가구에 대해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소득하위 70%라는 지원기준은 긴급성 효율성 형평성과 재정여력을 종합 고려해 결정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당정청은 지급기준을 놓고 협의를 벌였지만 정부의 재정여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으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민주당은 국회 예결위에서 협의를 거쳐 늦어도 5월초에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소득하위 70%로 산정한 7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민주당은 추경안을 13조원 정도로 늘려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게 확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산증액분은 추가 지출조정과 국채발행을 통해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통합당은 총선과정의 공약을 파기하고 정부안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원도 지출조정과 기금지원으로 활용하고 국채발행은 문제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주목된다. 
그러나 국회 사정은 녹록치 않다. 여야의 입장 차이는 물론, 당정간의 엇박자로 협의가 길어질 전망이다. 5월초 지급도 그저 목표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긴급’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정치권의 늑장대처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의 삶을 살피지 않은 것이다. 세계 각국이 재정을 투입해 긴급 지원금을 전국민에게 지급키로 한 것과 비교하면 너무 안일하다는 느낌이 든다. 미국과 독일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은 물론,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도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지원키로 했다.
그런데도 한국 기재부는 재정건정성을 이유로 선별지급을 고집한다. 재정건전성 지표로 ‘국가부채 비율 40%’라는 신화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전용복 경성대교수는 “고수할 가치없는 근거없는 수치”라고 잘라 말한다. 게다가 민간은 부채상환 의무가 있지만, 정부는 상환독촉에 시달리지 않는다. 전교수는 “재정건전성은 국가채무 절대액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국내총생산(GDP)을 올려서도 개선이 가능하다”며 “재정건전성을 따져 정부가 빚을 지지 않으려다 경제가 망가지면 건전성은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방안이 중요한 이유도 많다. 우선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무엇보다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 둘째 사각지대를 방지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데도 기준 때문에 지급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계가 커다란 충격을 받아 당장 한푼이 급한 상황이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굳이 차등을 두더라도 ‘선 일괄지급 후 차등징수’를 하면 해결이 가능하다. 재난지원금을 모두에게 지급하고 고소득층에게 과세형식으로 환수하면 된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이유는  두가지이다. 우선 소득산정기준이 2020년이 아니라 과거라는 점이다. 지급기준으로 삼은 건강보험료 산정기준의 하나인 소득의 경우, 자영업자는 2018년, 직장가입자는 2019년이다. 따라서 전국민에게 지급한 뒤 내년에 올해 소득을 확인하여 많이 번 사람은 세금으로 환수하면 된다. 둘째는 소득하위 70%는 받고 70.1%는 받지 못하는 기준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내년에 소득 하위 70.1%는 0.1%만큼 지원금을 반납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재난지원금은 재난기본소득과는 차이가 있다. 한차례로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윤형중 랩2050(민간싱크탱크) 팀장은 기본소득은 5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에게 지급하는 보편성, 심사를 요구하지 않는 무조건성, 개인에게 지급하는 개별성, 현금으로 지급하는 현금성, 일정간격으로 지속 지급하는 정기성 등이다. 따라서 긴급재난지원금처럼 대상을 선별해 지급하는 수당은 기본소득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편지급하고 선별환수하는 방안으로 재원을 확보하면 기본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난기본소득 지지자이다. 교황은 부활절 서한을 통해 “세계가 코로나19 위기에 처한 지금 기본소득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세계화의 이득에서 소외됐던 이들이 두배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노점상 건설노동자 돌봄 노동자 등 많은 이들이 법적 보호장치 없이 하루하루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이야말로 당신들이 수행하는 필수적이고 고귀한 임무를 인정해주고 영예롭게 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고려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보스포럼으로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도 교황에 동의를 표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영국과 캐나다의 기본소득 지지율이 75%, 미국은 40%를 넘었다. 각국이 국민에게 현금 지급을 실시하는 만큼 앞으로 지속적 체계로 바꿀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 교수는 “코로나19는 글로벌 경제시스템을 침체 끝자락으로 몰았다”며 “과거에는 기본소득 없이도 경제는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팬데믹 시대를 맞아 경제는 기본소득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학자들도 재난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한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교수는 ‘헬리콥터 드롭’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헬리콥터 드롭이란 조건없이 돈을 뿌리는 것을 뜻한다. 그는 “모든 미국 거주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경기침체 충격을 완화하는 가장 효과적 정책”이라고 밝혔다. 그레고리 멘큐 하버드대교수는 “돈이 필요한 사람을 추려내는 것이 매우 어렵고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미국인에게 현금을 최대한 빨리 지급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대위기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상황을 현명하게 넘기면 완전히 새로운 장이 열릴 수도 있다. 전용복 교수는 ‘역사적 분기점’으로 규정했다. 과거 무상급식 논란 당시 “이건희 손자에게도 공짜밥을 줘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제 그러한 논란은 없어졌다. 재난소득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국민이 어려울 때 돕는 데 있다. 재난소득이 보편적으로 한번 전국민에게 지급되면 관련논의가 새로운 차원에서 일어날 것이다. 기본소득에 찬성하든 하지 않든 논의의 진전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분명한 역사적 분기점을 지나고 있다.” 전교수의 지적이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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