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죽이는 무기’보다 ‘살리는 의료’에 투자해야

<김주언 칼럼> ‘죽이는 무기’보다 ‘살리는 의료’에 투자해야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4.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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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현황을 보면 선진국의 민낯이 드러난다. 초기에 중국과 한국에서 전파된 감염증은 유럽과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퍼지면서 환자만도 수백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수만명을 돌파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허술한 공공의료체계를 낱낱이 보여주었다. 진단키트는 물론, 인공호흡기나 마스크 방호복 등 의료장비의 태부족으로 의료붕괴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미국에서는 환자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쫓겨나 사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 최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은 코로나19 사태로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 최다 확진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확진자가 60만명을 넘어서고 사망자도 만명을 돌파했다. 앞으로 사망자가 최대 24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섬뜩한 예측마저 나왔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를 받기는 어렵다. 진단비만도 수백만원에 달하고 치료비는 수천만원에 이른다. 13년전 마이클 무어가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를 통해 고발한 참상이 아직도 진행중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이 마련한 ‘오바마 케어’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이 코로나19의 온상이 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 등 미국 보수세력의 잘못된 초기대응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사기’로 규정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뭔가를 시도하면 경제는 파괴될 것이다. 그건 중국의 잘못이다.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이다.” 이들은 확산을 예측한 감염병 역학자들에게 “자유시장에 대항한 딥스테이트 음모”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이들을 좀비로 규정했다. 바이러스 위기를 ‘부정하기’로 일관하는 ‘좀비 아이디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보건의료 위기는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원은 과부하로 병상부족에 시달리고 간호사들은 녹초가 되었다. 의료장비와 물자는 부족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부족한 산소호흡기 이용여부에 달려 있게 됐다. 이러한 무책임한 정책으로 의사와 간호사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세계 어디에서나 의료시스템은 한계에 다다랐다. 일선에서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의료인들은 엄청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미국에서는 간호사들이 마스크와 방호복 등 최소한의 의료장비를 달라며 시위를 벌이는 지경에 처했다.

민영화와 긴축정책은 세계각국의 의료체계를 붕괴직전까지 몰고 갔다. 지난 20년 동안 서유럽 국가에서 의료계에 종사하는 의사의 숫자는 3분의1로 줄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몇년 동안 보건의료 예산이 370억유로(약 49조원)가량 삭감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이 되면 1,800만명의 의료인력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잘못된 정책의 대가는 세계 각국에서 의료대란으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병원들이 문을 닫거나 부유층을 위한 영리병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사회가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얼마나 취약한 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영화와 긴축정책을 주도해온 신자유주의 체제는 공공의 이익을 악화시켰다. 노동자는 해고와 임금삭감으로 삶을 이어가기 어려워졌다. 바이러스는 노동자와 노인 등 취약계층에 강한 타격을 준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500만개의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으로 내다본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높다. 빈곤층은 급증해 3,500만명이 추가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자의 소득손실은 3조4,000억달러(약 4,150조원)에 이를 수 있다.

19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국제평화국(IPB)은 보건의료를 비롯한 사회적 필요를 위해 군사비를 대폭 삭감할 것을 촉구했다. IPB는 “우리 공동체는 기본적 의료서비스와 사회복지에 필요한 자원을 군비경쟁에 투자해왔던 시간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실패한 리더십, 잘못된 시장주도 관행은 취약계층에 가장 큰 타격을 주고 있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들을 약화시켜왔다”고 지적했다. IPB는 G20 정상들이 군축과 녹색평화협약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는 매년 군사비로 약 1조8,000억달러(약 2,200조원)를 지출하고 있다. 앞으로 20년동안 1조달러(약 1,200조원)를 새로운 핵무기 개발에 쓸 예정이다. 군사훈련에는 매년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세계 주요국의 무기 생산과 수출은 증가하고 있다. 군사비 지출은 냉전종식 때보다 50%나 더 높다. 세계가 연 1조8,000억달러의 군사비를 감당하는데도 NATO는 군사비 추가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G20의 군사비는 세계 군사비 지출의 82%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세계는 군비증강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긴장을 조성하고 전쟁과 분쟁의 가능성을 높인다. 이미 고조된 핵위협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하지만 핵확산 통제와 군축을 위한 시스템들은 무시되거나 약화하고 있다. 지난 2월 핵과학자 회보는 2020년 지구 종말 시계가 자정에서 100초 전으로 앞당겨졌다고 발표했다. 70년 역사 이래 자정에 가장 근접한 시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 종말의 초침을 재촉했다. IPB는 군사분야 연구에 쓰이는 수십억달러를 보건의료 등에 바람직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공호흡기나 마스크, 방호복 등 의료장비의 부족은 군비확장에 열을 올려온 세계 각국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공호흡기는 F-16 전폭기를 제조하는 데 쓰이는 재료와 기술이 겹친다. 그러나 세계 각국은 ‘사람 살리는’ 인공호흡기 보다는 ‘사람을 죽이는’ 전폭기를 만드는 데 주력해왔다. 영국과 미국은 뒤늦게 나섰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민간기업들에게 인공호흡기를 빨리 만들어달라고 읍소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국방물자생산법(DPA)를 발동해 GM사 등 민간기업에 인공호흡기 제작을 명령했다. 수출도 금지시켰다.

DPA는 미국이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9월8일에 제정한 연방법이다. 냉전당시 실시한 전쟁동원령 중 하나이다. 국가비상사태 때 대통령이 민간기업에 필수품을 생산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그동안 한번도 발동되지 않고 70여년 동안 묵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전시 대통령’으로 칭하며 DPA를 발동했다. 그는 GM사에 인공호흡기를 만들라고 지시한 데 이어 GE 등 6개사에도 같은 지시를 내렸다. 3M에는 마스크 생산 명령을 내렸다. 국방물자생산법을 동원해 의료장비를 생산하도록 지시한 것은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서도 국방비를 축소하여 재난극복에 투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코로나19 팬데믹은 2차세계대전 이후 최대위기”라며 “예산투자의 우선순위 조정과 국방비 삭감, 맹목적 군비증강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평화를 구축하는 방향으로의 전면적 정책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방비를 대폭 삭감하여 코로나19 재난 지원의 보편성을 확대하고 위기상황의 장기화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삭감된 비용을 팬데믹 극복을 위한 국제사회 공조와 인도적 지원에 사용하라는 주장이다.

군축은 이윤보다 생명을 중시하고 생태계의 도전, 특히 기후위기라는 재앙을 마주하여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정의를 이루는 핵심적 요소 중 하나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군비경쟁은 끝이 없다. 군산복합체의 이익이 정책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사람 죽이는 무기’가 ‘사람 살리는 의료’를 압도하는 전도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올바른 교정자’가 될 수 있을까. 이제 세계 각국 정상들은 군축과 평화를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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