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정책 실종’ 총선에서 정책 따져보기

<김주언 칼럼> ‘정책 실종’ 총선에서 정책 따져보기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4.0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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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다. 정당들은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가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국민을 지킵니다’를 슬로건으로 결정했다. 통합당은 ‘힘내라 대한민국 바꿔야 산다’로 정권심판론을 강조했다. 정의당은 ‘기득권 저지’를 주장했다. 이번 총선에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 등장하고 극심한 공천파열음이 나오면서 정치공학만 난무했다. 정작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할 정책공약은 실종됐다. 유례없는 깜깜이 선거가 등장한 것이다. 코로나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총선은 뒷전에 물러난 느낌마저 든다.
정책실종이나 묻지마공약 남발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이슈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처럼 정책과 의제가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득표율에 따른 의석수를 배분해야 한다는 의지로 극한대치를 무릅쓰고 도입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의미를 잃었다. 양대 정당이 자매정당으로 불리는 듣도 보도 못한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를 독식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당들은 극심한 공천파열음으로 내홍을 겪었다. 낙천한 후보들은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고 당 대표의 사천 논란도 일어났다. 코로나19 사태에 묻히고 위성정당 논란에 파묻혀 4·15총선은 최악의 의제실종 선거로 치러질 듯하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인 올해초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달랐다. 지난해 가을 조국 전법무부장관 임명과정에서 불거진 ‘조국사태’로 불공정과 불평등이 주요이슈로 떠올랐다. 정치권도 불평등과 정의를 주요이슈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총선도 교육과 일자리 등 청년세대를 아우르는 정책대결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청년들을 인재로 영입하고 그들에게 영합하기 위한 정책들을 공약으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투표일을 10여일 앞둔 시점에서 청년층을 겨냥한 공약은 실종됐고 청년인재의 영입도 말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총선에는 전국 253개 지역구에 1118명의 후보가 나서 평균 4.4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47개 의석을 놓고 경쟁하는 비례대표에는 35개 정당이 312명의 후보를 내세워 경쟁률은 6.64%에 이른다. 남성이 905명, 여성이 213명이었다. 연령별로는 50~60세가 절반에 육박하는 446명으로 가장 많았고 60~70세는 239명으로 뒤를 이었다. 30세 미만은 12명으로 가장 적었다. 30~40세도 40명에 불과했다. 직업별로는 정치인이 515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이를 보더라도 청년정치를 내세우던 정당들이 그들을 얼마나 홀대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국은 정치인들만의 리그인 ‘그들의 잔치’인 셈이다.
이번 총선은 촛불민심의 완성과 후퇴를 가를 중대 갈림길이 될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된 뒤 처음 치러지는 총선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 이후 한국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개혁과제는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반촛불 세력의 발목잡기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렵사리 검찰개혁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갈 길은 아직 멀다. 사법개혁은 물론,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화해 등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통합당은 건건이 발목을 잡아왔다. 공수처 폐지를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이번 총선이
‘촛불 대 반촛불’의 대결로 일컬어지는 이유이다.
시민사회는 총선을 앞두고 총선넷을 구성하고 본격 활동중이다. 총선넷은 ‘분노하자, 참여하자, 희망하자’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총선넷은 “현실정치라는 이름으로 헌법과 민주주의가 농락당하고 유권자들은 모욕당하고 있다”며 “유권자들은 정치인과 정당들의 얄팍한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졸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총선넷은 고착화한 불공정과 불평등 타파, 한국사회에 만연한 젠더차별과 폭력근절, 기후위기를 비롯한 사회적 재난에서 안전한 사회, 선거법 개정을 통한 정치·권력기관 개혁, 남북관계 개선 및 한미동맹 조정, 비핵화를 포함하는 ‘우리가 만드는 평화’를 5대 의제로 제시했다.
총선넷은 5대의제를 중심으로 각 정당의 정책을 평가하고 후보들이 문제해결에 적합한 인물인지 관련 정보를 유권자에게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나쁜 법안을 발의하거나 찬성한 이력, 주요이슈에 대한 발언이나 태도, 보유재산과 부동산투기 여부 등을 홈페이지(Change 2020-총선시민네트워크-열려라 국회)를 통해 공개했다. 경실련은 헌법재판소에 위성정당등록 위헌과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참여연대는 20대 국회 본회의 출석부를 공개하고 무단결석을 가장 많이 한 국회의원을 발표했다.
총선넷은 특히 위성정당이 유권자의 선택지가 되지 않도록 온라인 저항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총선넷은  “꼭두각시 정당을 앞세워 헌법과 정당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민주당과 통합당을 규탄하며 위장정당을 해산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협잡도 마다하지 않는 행태라는 비판이다. 총선넷은 “민주화이후 상상하지 못했던 초유의 사태”로 유권자를 우롱하는 최악의 사태라고 비난했다.  특히 통합당은 위성정당의 공천결과를 바꾸기 위해 당대표와 공관위원장을 교체하는 등 위성정당임을 숨기지 않았다고 짚었다. “민주당도 소수정당을 배려하겠다던 명분을 던져버렸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49개 정책과제를 중심으로 정당들의 공약을 평가한다. 자산불평등 해소와 공공의료 확충, 주거권 보호,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 개혁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고 미진한 권력기관 개혁을 추진하는 정책들이다. 세부과제는 자산불평등 개선과 공평과세를 위한 정책과제(5개), 보편적 복지확대와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책과제(7개), 노동권 보호와 고용안전망 확대를 위한 정책과제(7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과제(3개), 가계부담 완화와 민생살리기를 위한 정책과제(8개), 민주주의와 인권 보장, 권력기관 개혁을 위한 정책과제(12개), 한반도평화와 군축을 위한 정책과제(7개) 등이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정책대안도 제시됐다. 무상의료본부는 “2015년 메르스를 경험하고도 공공병원과 공공의료인력이 확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돈벌이를 위해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열악한 환경의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은 신종 감염병에 너무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윤중심의 의료체계가 유지돼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상의료본부는 공공의료 인력과 숙련된 간호인력의 양성, 국가감염병 전문병원 권역별 1개이상 설립, 건강보험재정 안정화, 의료영리화 환원 등을 요구했다.
한국사회를 들끓게 만든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한 청년들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총선청년넷은 ‘그때도 틀렸고, 이제는 바꿔야한다’-텔레그램 성착취 규탄 및 정책요구안을 발표했다. “성매매산업-소라넷-웹하드 카르텔-버닝썬-텔레그램으로 이어진 강간문화는 지난 사건들에 눈감은 사회가 쌓아올린 구조”라며 정치가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유권자 캠페인 ‘전지적 페미시점 무쓸무익 정치인을 찾아라!’를 진행중이다. 성매매 및 성폭력 전과나 여성혐오 발언, 반인권 법안 발의 등에 나선 후보에 대한 제보를 받아 공개할 예정이다.
이밖에 한국YMCA전국연맹, 청년유니온, 총선주권연대, 기후위기비상행동, 재벌개혁넷 등은 5대과제에 대한 시민 설문조사를 토대로 유권자행동에 나선다. 각 정당과 후보들에게 정책 요구안을 발송하고 답변을 받아 이를 공개한다. 필요할 경우 정책협약을 맺어 캠페인에 나선다. 세월호참사 유족 등으로 구성된 4·16연대는 유권자 행동단을 구성해 노란리본을 발송하고 후보 선거사무실 방문 등 유권자운동을 진행중이다. 총선넷은 각 정당들의 정책을 평가하고 후보들이 문제해결에 적절한 인물인지 관련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유권자가 원하는 정책에 따라 올바른 정당을 선택하고 투표를 돕기 위한 홈페이지와 모바일앱도 등장했다. 경실련이 개발한 ‘정당선택 도우미’(http://vote.ccej.or.kr/)가 그것이다. 시민이 선호하는 30개 정책현안과 개혁과제에 자신의 입장을 선택하면, 정당별 정책과 비교해 정책성향이 가장 일치하는 정당을 확인할 수 있다. 총 30개의 질의문항에 대해 ‘찬성/중립/반대’중 하나를 선택하여 답변하면, “당신의 정책은 ○○당과 △△% 일치합니다”는 결과가 나온다. ‘정당별 답변보기’에서는 정당별 입장과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총선넷은 이번 총선의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20대국회는 역설적이게도 왜 국회와 정치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생결단의 국회는 입으로는 민생을 말하면서 걸핏하면 보이콧을 남발했다. 절망의 정치에 주저앉을 수 없다. 분노와 절망을 바꾸는 것은 유권자의 힘이다. 최종심판자는 유권자들이다. 선거 때면 찬란한 정책공약을 던졌다가 은근슬쩍 없었던 일로 만드는 정치,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고 색깔론과 지역색을 동원하는 낡은 정치, 소수의 이익에만 복무하는 특혜정치, 과거로 퇴행하는 정치를 냉정하게 심판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시민의 힘으로 무능하고 구태의연한 정치인들과 정당들을 심판하고 주권자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묻지마공약을 남발하는 후보도 문제이지만, 묻지마투표에 나서는 유권자는 더욱 커다란 문제이다. 아무리 정책이 실종되고 이슈가 없는 총선이지만 정당과 후보가 내세운 정책을 꼼꼼이 따져보아야 한다.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만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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