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지상 강좌] 詩마을 창작학교

[글쓰기 지상 강좌] 詩마을 창작학교

  • 기자명 유종화 기자
  • 입력 2020.02.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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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네 줄로 짚어낸 한 나라의 민중사

[데일리스포츠한국 유종화 기자] 시는 ‘아침마다 쓸어내는 방 먼지에’ 있다

이렇듯 시의 내용을 우리네 역사와 사회와 현실에서 찾는 김준태 시인은 ‘참깨를 털면서’(창비),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한마당), ‘국밥과 희망’(창비), ‘불이냐 꽃이냐’(청사), ‘넋통일’

(전예원), ‘아아 광주여,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실천문학사), ‘칼과 흙’(문학과지성사) 등의 시집을 내고, ‘꽃이, 이제 지상과 하늘을’(창비) 통치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내일 우린 사람 모양으로/아름다움 하나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통일을 꿈꾸는 슬픈 색주가’인 그는 ‘기차는 가고 똥개만이 남아 우는’ ‘호남선’ 곁에서 ‘뜨끈뜨끈하고도 달착지근한 보리밥’으로 남아, ‘남도의 툇마루’에 앉아 ‘ 제목을 붙일 수 없는 슬픔’을 토해 내고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국민학교 출신 아버지는 무덤을 만들어주고

중학교 출신 그의 아들은 10년 후

어느새 아예 그 무덤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밭을 일구어 고구마를 심고

20년 후, 또 그의 손자는 그 밭마저

아파트업자들에게 미련 없이 팔아버리고

아 그리하여 옛사람의 그림자도 사라졌다네

끝내 버리지 않는 사람에 대한 희망

그는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는 데에만 정신이 빠진 시대에도 ‘사람’에 대한 희망을 끝내 버리지 않는다.

나는 30여 년간 시를 쓰고 산다. 그러나 나는 시를 모른다. 다만 나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얘기하다가 홀로 나자빠져 버리기도 한다.

-‘통일을 꿈꾸는 슬픈 색주가’ 서문에서

이제 그의 시 ‘참깨를 털면서’를 통해서 순리에 따르는 삶의 지혜를 배우면서 마치자.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계속>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2월 26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2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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