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주인공과 촛불중, 사라쌍수로 태어난 이란성 쌍생아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주인공과 촛불중, 사라쌍수로 태어난 이란성 쌍생아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20.02.27 10:43
  • 수정 2020.02.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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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은 촛불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형장에서 난데없이 형장 나으리와의 씨름 한 판의 경합을 벌이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촛불중과 자신이 한 가지에서 갈라져 나온 거대한 사라쌍수(히말라야와 남아시아에서 자라는 나무로, 석가모니가 열반할 때 그의 사방에 한 쌍씩 서 있었던 나무)라는 것을 죽은 수도녀와의 관계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촛불중과 주인공은 색욕이 과한 두 중놈들로, 한 개의 무덤에다 치열하게 자신들의 생체에너지를 불어넣었었다. 두 사람 다 주검과 탈육(脫肉)의 경계를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고, 나비에의 꿈을 꾸는 번데기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두 여인(죽은 수도녀와 장로의 손녀딸)을 사랑하고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촛불중은, 자기의 뼈를 어떻게 재조립할지를 이미 알고 있었고, 주인공은 촛불중의 탁월함에 비해 여태도 사미 꼬락서니를 못 면하고 있어 부끄럽고 왜소할 뿐이었다.

촛불중은 주인공을 향한 연모와 동시에 질투와 적대감, 경쟁심과 증오의 양가감정(ambivalence)을 품었다. 하야, 그는, 주인공을 어떻게라도 한 번 이겨보기 위해 얼마 전에 주인공에게 가장 소중했던 수도녀를 강간했다. 패륜을 범한 촛불중은 스스로를 단죄했고, 주인공에게 결국 “소승은 그리고 끝으로 한 번 더 지고 말았습지. 이젠 질투나 적대감의 아무 끈도 소승을 죄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지. 완전한 참패입지”라고 고백했다. 그렇게 두 중들에게 육보시를 행하며 색념 근절의 장소를 제공했던 수도녀는 이미 죽어 바르도에서 재생을 얻었을 것이다. (<죽음의 한 연구(하)> 268쪽)

게다가, 읍에 살고 있는 장로의 손녀딸은 또 어떤가 말이다. 주인공은 이미 그녀의 사랑을 얻었다. 하지만, 촛불중은 그녀를 연모하며 사랑을 애처롭게 갈구했으나 아직도 그녀의 마음조차 얻지 못하고, 두 사람의 사랑을 멀리서 훔쳐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주인공은 혼자서 두 여인의 사랑을 온전히 독차지 했고, 촛불중은 영원한 루저가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촛불중의 말마따나, 촛불중이 주인공을 향해 느끼는 저 질투와, 저 적대감은 어쩌면, 같은 둥치에서 갈라진, 사라수(紗羅樹) 한 가지가, 다른 가지에 대해 갖는, 그런 어떤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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