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스포츠한국 유종화 기자] 우연한 현상 속에 담긴 놀랄 만한 진리-2
시인은 우연한 듯한 현상 속에서 소스라치게 놀랄 만한 진리가 담겨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연한 현상을 통해 진리가 드러났던 방식대로 시가 쓰일 때 작게 시작해서 크게 끝나야 한다.
‘감꽃’은 그러한 느낌의 순차성이 잘 나타난 보기 드문 좋은 시다. 느낌의 순차성이란 ‘형상적 사유’라고도 말하는데,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감꽃’을 통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이것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받은 느낌의 순서에 맞게 그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둑에도 수준이 있듯이 이 시에서도 서술 순서가 있습니다. 다음의 시는 그것이 대단히 잘 지켜진 경우입니다.
㉠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의 순서가 조금만 어긋나도 형상이 일그러져 실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됩니다.
이미 ㉣에서 할 말을 얻어 낸 상태에서 시를 쓰더라도 조급하게 ㉣에서 시작하지 않고 ㉠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 순서는 생활 속에서 느낌이 전해 오는 순서입니다. “순이가 등 뒤에서 툭툭 쳐서 돌아다봤다”라고 하는 문장은 이러한 순서가 틀려 있는 문장입니다. 등 뒤에서 툭툭 쳤을 때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 상태입니다. 이 문장은 “누군가 등 뒤에서 툭툭 쳐서 돌아다보니 순이였다”로 고쳐야 옳습니다.
현실이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뒤죽박죽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정연한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는 이 점까지를 옳게 반영해야 합니다.
-김형수, ‘자주적 문예운동’에서
이렇듯 생활의 논리에 맞게 서술해 간 시를 따라 읽을 때 그 감동의 폭도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다.
‘감꽃’에 대한 노래 이야기를 하려다가 어느덧 시 쓰는 법까지 흘러와 버렸는데, 내심 그것을 노린 바도 없지 않다. 시를 쓰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좋은 시를 찾아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는 ‘아침마다 쓸어내는 방 먼지에’ 있다
김준태 시인은 시를 쓴다고 깝죽거리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시 한 편을 써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가 시를 어디에서 찾는지 보자.
어디 멋들어지게 둔갑시킬 싯귀는 없나 하고
초조히 서두르는 앙큼한 놈아
네놈이 노려야 할 혁신적이고 어쩌고 하는 시는
네놈이 걷어차버린 애인에게 있고
밤중에 떨어진 꽃잎 밑에 있고
이장네 집에서 통닭을 삼키는 면서기의 혓바닥에 있고
어금니로 질근질근 보리밥을 씹어대는
시골 할머니의 흠 없는 마음속에 있고
전봉준이가 육자배기를 부르며 돌아오던
진달래꽃 산 굽이에 희부옇게 있고
네놈의 뒤통수에 패인 흉터에 있고
아침마다 쓸어내는 방 먼지에 있을 것이다
-‘詩作을 그렇게 하면 되나’ 중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