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지상 강좌] 詩마을 창작학교

[글쓰기 지상 강좌] 詩마을 창작학교

  • 기자명 유종화 기자
  • 입력 2020.02.07 09:07
  • 수정 2020.02.1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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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나뒹굴어야 할 음유시인의 사랑 노래

[데일리스포츠한국 유종화 기자] 

모래시계를 뒤집는 것처럼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내가 걸어왔던 수많은 길을 되돌아가서

너를 아프게 했던 나의 가벼움과

가슴 멍들게 했던 이별의 말을

고스란히 거두어 지우련만

아! 나는 너에게 얼마나 거칠었으며 얼마나 잔인했던가

아! 나는 너에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짐이었을까

모래시계를 뒤집는 것처럼

내 아쉬운 옛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저 들에 핀 강아지풀처럼

머리 부비며 살아갈 텐데

―‘모래시계’부분

이 시에서도 한보리는 사소한 것에서 하나의 가슴 아픈 사랑노래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그의 창작노트를 엿보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아 잠깐 인용한다.

요근래 연가 작업을 몇 개 했더니 아내가, 혹시 애인이 생긴 거 아니냐고 은근히 묻기에 곡을 쓰게 된 동기를 얘기해 주었다. ‘모래시계’라는 곡인데, 사실 나는 멋진 연애를 할 만큼 낭만적인 사람은 되지 못한다.

하루는 목욕탕에 가서 전날 먹은 술독 좀 빨리 풀어볼까 하고 사우나실에 들어갔더니 그곳에 초록색 모래시계가 있었다.(참, 나는 비쩍 마른 편이라 사우나실에는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다)어렸을 때부터 유독 시간과 공간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아서 노래도 시간에 관한 것이 꽤 많다.

생각해 보니, 시간이라는 시간적 개념이 시계라는 평면에 의해 가시화되고, 모래시계란 시간의 양을 부피로써 확인시키는 더 구체적인 시간 표현이 아닌가. 그 사우나에서 나는 시간과 모래시계의 관계를 생각했다.

모래시계를 뒤집으면 조금 전의 모래들이 과거의 칸으로 다시 떨어져 내리듯 이 시간이 거꾸로 가서 다시 살아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해보고 싶어질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모래시계’를 쓰게 되었다.

일상적인 사소한 일들을 그냥 놓치지 않는 그가 바로 시인의 눈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그러한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에 그토록 많은 시와 노래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위의 ‘모래시계’(그는 이 시의 끝에 ‘1984.10.7’ 이라는 날짜를 기록해 놓고 있는데, 그것은 TV 드라마‘모래시계’보다 먼저 만들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이다)같은 절창을 부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내친 김에 그의 창작노트를 조금 더 보고 가기로 하자.

‘푸른 바람이 부는 마을’이라는 시를 쓰게 된 동기를 밝히는 부분인데, 창작에 대한 한보리의 견해도 들을 수 있어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벌써 십 년도 더 된 얘기다. 6·25를 특집으로 다룬 무슨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북한군들에게 희생된 사건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마을 이름이 ‘청풍리’였다. 그 무렵, 나는 일본 사람들이 개명해 놓은 마을 이름을 순 우리말로 고쳐보곤 했었다.

‘청풍리’를 우리말로 바꾸면, ‘푸른 바람이 부는 마을’이 된다. 푸른 바람이 부는 마을! 울림이 좋다고 느껴졌다. 나는 벌써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드는 주인공이 되어 그 마을을 향하고 있다.

아마 나는 먼 친척의장례식 때문에 고향에 갈 것이고, 옛날 생각, 옛 여인의 이름도 떠올렸으리라! 기차역에 닿았을 무렵은 이미 새벽, 마을은 푸른 안개에 싸여있고, 나는 안개가 천천히 흐르고 있는 솔밭을 지나간다. <계속>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2월 7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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