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지상 강좌] 詩마을 창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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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유종화 기자
  • 입력 2020.02.0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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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노래는 본래 하나였다

[데일리스포츠한국 유종화 기자] 시와 노래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 2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위에 인용한 글은 시로 쓴 것이 아니라 하덕규라는 대중가요 가수가 노랫말로 쓴 것이다.이 글은 하덕규가 쓴 게 아니고 정덕수의 ‘한계령에서’라는 시의 일부이다.

‘한계령’이라는 산을 통해서 사람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는 그 자리를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풀어야만 마음이 평화로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노랫말은 ‘고상한 시인들’이 써놓은 시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러한 가사를 보면서 시인들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즉, 오늘날의 노랫말을 저질이라고 팔짱만 끼고 앉아 있는 것은 자기의 직분을 잃고 있다는 말이다.

저질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바로잡을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는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그 일을 할 사람이 바로 시인 자신들이다. 시인들은 노랫말을 비웃지만 말고 본인이 직접 가슴 뭉클한 시적인 노랫말을 써야 한다.

그것이 시인들이 해야 할 일이며 오늘날 시와 노래가 독자들과 사이가 멀어지고 격조가 떨어지는 노랫말의 성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제 시인들은 낮은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시라는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말일 뿐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시를 쓰고 고상한 척 해보았자 사람들과 함께 호흡할 수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하나 시인들은 시를 쓰고 나서 여력으로써의 노랫말 쓰기를 경계해야 한다. 노랫말도 시를 쓸 때의 자세와 같아야지 무슨 보시를 하는 듯한 마음으로 가사를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좋은 가사가 나오겠는가? 진지함이 동반되었을 때 감동도 묻어 나오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직분과 시인이 가져야 할 바른 자세에 대해서 말해 보았다.

이제 시인들은 시와 노랫말을 구분하지 않는 글쓰기를 시도해야 할 것이고 작곡가는 그런 좋은 글에 정감이 있는 가락을 붙여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 옛날, 시가 바로 노래고 노래가 곧 생활의 일부였던 그 감동의 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력으로써의 노랫말 쓰기가 아닌 온 힘을 기울인 노랫말 쓰기가 10여 년 전에 시인 김정환에 의해서 시도된 적이 있다.

대중문화 특히 대중가요가 지닌 그 퇴폐적이고 감상적이고 마취적이고 도색적인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중노래’가 있어야 할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지만, 단순한 민요복원 작업이나 민중적 의식 수준의 현현만으로 자족한다면 그 결과만으로 거대한 대중문화 매체를 극복하기란 도대체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 김정환 ‘새로운 노랫말 운동을 위하여’ 중에서

이런 이론을 내세우고 그는 ‘일노래’ ‘일상노래’ ‘의식노래’ 등으로 구분하여 다양한 노랫말 쓰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어찌된 까닭인지는 몰라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이제라도 여러 시인들이 다시 해보면 좋겠다. <계속>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2월 3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2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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