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지상 강좌] 詩마을 창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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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유종화 기자
  • 입력 2020.01.3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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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노래는 본래 하나였다

[데일리스포츠한국 유종화 기자] 시와 노래는 왜 만나야 하는가 - 2

시에 곡이 붙여지는 것은 작곡가가 임의로 선택한 경우와 시인에게 주문 생산을 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사가는 시를 원작대로 쓰는 경우와 노랫말에 맞게 개작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음악계에서는 시문학이 점점 노래와 멀어져 가는 현상을 달갑지 않게 볼 것이며 마찬가지로 시인들도 자신의 시가 노래로 전혀 불리지 않는 것을 굳이 자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략)

과연 우리 시에서 노래로 불릴 만한 것은 다 곡이 붙여졌을까란 물음에 나는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작곡가들의 나태함이나 역량 부족이란 뜻이 아니라 그만큼 시와 노래가 별개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문화 풍토를 반성하는 의미에서이다.

이제 우리 시는 노래로 불리기를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고 작곡가는 노랫말을 훌륭한 시에서 찾는 작업이 보다 활성화되었으면 싶다. 노래와 시는 결국 만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니까.

-임헌영 ‘시와 노래의 변천사’ 중에서

임헌영의 지적대로 우리는 ‘시와 노래가 별개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문화 풍토를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작곡가는 노랫말을 훌륭한 시에서 찾는 작업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시인들 스스로 노래가 될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방법으로 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보았다. 하나는 교과서에 실린 시를 주제와 시어의 의미를 가르쳐주면서 접근을 했고 또 하나는 시에 대한 배경 설명과 작가에 대해 간단히 소개만 하고 그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음반을 틀어주었다.

첫 번째 방법은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으면서도 머리로만 갈기갈기 찢긴 시의 조각들을 담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두 번째 방법은 노래를 듣고 난 뒤에 많은 사람들이 숙연해졌다. 그 시가 ‘전라도 길’이라는 한하운의 시였는데 그 당시 한하운의 처지만 간략하게 설명하고 노래를 들려주었을 뿐인데도 그 효과는 엄청나게 달랐다.

이것은 시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것을 시도해보면서 시와 노래가 할 일이 결국 독자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데 그 의의가 있다면 결국 시와 노래의 만남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와 노래가 하나가 될 때 시는 시답고 또 노래는 가장 노래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노래와 시는 결국 만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니까’라는 임헌영의 지적대로 그 옛날 시와 노래가 분리되기 이전처럼 그냥 생활 속에서 흥얼거리는 리듬과 가사가 가슴과 가슴으로 전달되는 그런 감동의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시인과 작곡가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시와 노래는 제 값을 다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감동의 주고받음이야말로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가장 중요한 의의라고 말할 수 있다.

시와 노래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 1

시와 노래의 만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시인과 작곡가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인과 작곡가가 시와 노래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통념상 시인들은 노래가사를 저속하게 보아 온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자기가 쓰는 시는 그보다는 격조가 높은 글이라는 자만감에 빠져 있었다. <계속>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1월 31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2020년 1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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