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40주년 맞는 광주항쟁 풀어야 할 과제들

<김주언 칼럼> 40주년 맞는 광주항쟁 풀어야 할 과제들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20.01.0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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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0주년을 맞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불혹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광주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발포명령자 등 핵심의혹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북한군 침투설 등 거짓선전이나 왜곡도 끊이지 않는다. 반란수괴인 전두환은 진정한 사죄 대신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낭설을 퍼뜨린다. 지난해 12·12쿠데타 40주년 때는 전두환 등 군사반란 주역들이 기념호화오찬을 열어 비난이 빗발치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불법으로 마련한 재산으로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신산한 삶을 이어가는 피해자들과 대조된다. 
광주학살 이후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19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정권교체 이후 백담사 유배 등으로 떠돌았다. 김영삼정부 들어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처벌을 유예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 요구로 특별법 제정을 통해 법정에 세웠다. 대법원은 1997년 군사반란과 내란목적 살인 혐의를 적용하여 전두환은 무기징역, 벌금 2,205억원 추징, 노태우는 징역 15년, 벌금 2,626억원 추징이 선고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에 즈음해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했다.
전두환은 재산이 29만원에 불과하다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아들 재국씨의 페이퍼 컴퍼니와 비밀계좌를 통해 국외로 재산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추징금을 일부 납부하고 나머지도 모두 갚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미납 추징금은 1,021억원에 달한다. 최근 측근 이름으로 프랜차이즈 고기집을 차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웃음을 샀다. 반면 노태우는 2013년 사돈과의 소송까지 불사하며 사재를 털어 추징금을 완납했다. 전두환이 미납상태에서 사망할 경우를 대비해 ‘전두환 끝장 몰수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는 이유이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광주학살 책임에 대한 태도도 달랐다. 병석의 노태우는 뒤늦게나마 아들을 광주로 보내 사죄의 뜻을 밝혔다. 장남 재헌씨는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한 데 이어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찾아왔다며 “광주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전두환은 고 조비오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하면서도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기거나 쿠데타 주역들과 호화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포착돼 국민의 공분을 샀다.   
광주학살에 관여한 전두환 등 신군부는 서훈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와 국립묘지안장 문제가 남아 있다. 전두환은 아직도 경호를 받고 있다. 1997년부터 20여년 동안 경호에 투입된 비용만 100억원을 넘는다. 올해 미수(米壽·88세)를 맞는 전두환 노태우의 국립묘지안장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현행법은 내란 등의 죄로 금고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국립묘지에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사면된 자에 대한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국립묘지안장을 막기 위해 국회는 5·18헌정질서파괴자 국립묘지안장 금지법의 제정을 추진중이다. 
광주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은 1988년 국회 청문회를 시작으로 특별수사와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 수차례 이뤄졌다. 그러나 국가의 진상보고서 발간은 좌절됐다. 헬기사격 등 숨겨졌던 진실이 파편적으로 확인됐지만, 끝내 발포명령자와 암매장설의 사실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3일 미궁에 빠진 진상을 찾아내기 위해 진상규명위가 꾸려졌다. 규명위는 앞으로 계엄군 발포 경위와 책임자, 5·18은폐·조작 경위, 암매장지 확인 및 유해 발굴, 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등을 조사한다.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불특정 군중을 향한 계엄군의 집단발포는 최악의 학살이자 진상규명의 최대난제이다. 전두환 신군부는 ‘자위권 발동’이라며 발포명령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현재까지 이를 정면으로 뒤집을 진술이나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박지원 천정배 의원 등이 당시 계엄군이 채증한 사진첩과 문서 일부를 공개해 진상규명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행방불명자 숫자와 암매장 장소를 찾는 일도 지난한 과제이다.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당시 사라진 사람은 240여명에 이른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전두환 프로젝트’를 통해 전두환일가들과 신군부 일당의 불법 재산형성과 재단활동을 파헤쳤다. 전두환일가의 차명재산과 수상한 돈흐름도 일부 확인했다. 5·18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은 육군 참모총장 시절 사들인 경기도 양주와 과천 일대 부동산을 증식시켜 전국에 1,000억원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허화평 전 보안사령관 비서실장과 장세동 전 특전사령관 작전참모 등도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허화평은 전두환이 대기업 돈으로 설립한 재단을 개인재산처럼 둔갑시킨 사실도 드러났다.
전두환일가 및 신군부 일파의 재산중 상당부분은 전두환으로부터 하사받은 불법재원으로 취득하고 증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불법 은닉재산을 추적해 환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천정배의원은 ‘5·18민주화운동 전후 헌정질서파괴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천 의원은 “군사반란과 내란,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헌정질서파괴 행위자들이 부당한 권력을 이용하여 축적한 재산이 그들의 후손들에게 상속되지 못하도록 남김없이 국가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항쟁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가짜뉴스와 망언도 기승을 부린다. 유튜브나 종편 등에는 모욕발언이 차고 넘친다. 5·18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억지주장을 일삼아온 지만원씨는 손해배상소송에서 패소해 억원대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법원이 지씨의 주장은 역사왜곡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이 공청회에 지씨를 불러 망언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의 망언은 국민적 분노로 이어졌다. “광주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됐다” ‘5·18유공자라는 괴물집단“ 등의 망언은 전두환식 변명을 떠오르게 한다. 
한국당은 이들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5·18단체와 정치권은 이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해 말 범죄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5·18단체들은 “5·18민주유공자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폄훼한 사실에 상응한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검찰이 수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검찰은 엄중한 수사를 약속했지만 처벌여부는 미지수이다. 국회에 5·18망언을 처벌하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돼 있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이를 예방하기 위해 한국판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법’ 마련에 나섰다.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해 처벌하자는 것이다. 민주당은 “5·18민주화운동을 왜곡 날조 비방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법인 만큼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과 공동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이 백주대낮에 국회에서 망언을 일삼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다짐은 다짐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정쟁과 공전으로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새해 아침에 ‘5월정신’을 다시 떠올린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가꿔온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5월 영령들의 넋을 기린다.  5월 광주를 지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제가 쌓여 있다. 무엇보다도 전두환이 광주학살의 진실을 밝히고 진정한 사죄를 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잘못된 역사를 끌고 갈 것인가.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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