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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불평등과 부당세습은 누가 불러오나
  • 김주언 논설주간 newmedia54@hanmail.net
  • 승인 2020.01.0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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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침묵을 지키며 집단적으로 불평등을 선택했다. 이것이야말로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과정이다. 결혼은 사치가 되었고 안정된 가정생활은 부유한 엘리트층이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특권이 되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매튜 스튜어트가 저서 ‘부당세습 : 불평등에 공모한 나를 고발한다’에서 지적한 말이다. 스튜어트는 자신이 속한 상위 9.9%그룹을 ‘특권사회의 공모자’라고 비판한다. “우리야말로 경제의 목을 죄고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고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과정의 주요공범”이라는 고백이다.
그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심각해져온 불평등구조는 피도 눈물도 없는 최상위 0.1%가 만들어낸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상위 9.9%는 하위 90%로부터 자원을 뽑아내어 0.1%로 옮기는 깔때기 형태의 기계를 작동시키는 직원노릇으로 둘 사이에서 자신의 몫을 지켰다는 것이다. 사회가 대중적 분노에 휩싸였는데도 그들은 은근슬쩍 99%의 편에 서서 말로만 혁명을 떠들어 왔다고 자탄한다. 그의 지적은 날카롭다. “희생자들을 능력이 모자란 탓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모두 처참하게 패한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명백한 사실이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단지 미국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이후 세계에서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칠레 레바논 이라크 프랑스 등 세계 곳곳의 주요도시는 시위대와 경찰의 공방전으로 날을 지샌다. 격렬한 시위로 도시기능이 한달 이상 마비된 곳도 있다. 시위를 촉발한 계기는 다르지만 밑바탕에는 만연한 불평등과 무능한 정치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국내에서도 ‘조국사태’ 이후 불평등과 불공정 해소를 요구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높다. 무한경쟁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가 지구를 뒤덮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세계 부의 절반을 0.9%가 보유하고 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자산 100만달러(11억7,210만원)이상을 보유한 성인은 세계의 0.9%(4,679만2,000명)이다.(올해 6월말 기준) 이들은 글로벌 부 총액의 43.9%(158조3,000억달러)를 소유하고 있다.(크레디트 스위스 ‘2019년 글로벌 부 보고서’) 반면 자산 1만달러 미만을 보유한 성인은 56.6%(28억8,300만명)로 총액은 6조3,000억달러(세계 부의 1.8%)이다. 1만~10만달러 자산계층은 32.6%(16억6.100만명)로 총액은 55조7,999억달러(15.5%)이다. 양극화 실태를 잘 보여주는 통계이다.   
한국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세계 부(자산)의 상위 10%(약 10만달러 이상)에 드는 한국인은 1,230만8,000명이다. 상위 1%(약 100만달러이상)는 80만6,000명이다. 앞으로 5년 뒤(2024년) 자산 100만달러이상 성인 인구의 경우 한국인은 96만5,000명으로 올해보다 3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성인 1명의 부 연간 증가율은 2000~2019년 평균 6.9%로 세계 평균에 비해 1.5배 높다. 보고서는 “한국은 인구밀집에다 소득이 성장하면서 부동산가격이 매우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내에서 부동산 양도차익과 금융소득 등 불로소득이 크게 늘어나면서 양극화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소득불평등보다 자산불평등이 극심하다는 뜻이다. 국세청의 ‘2017년도 귀속 양도소득과 금융소득’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 부동산 양도차익이 한해 84조8,000억원, 주식 양도차익이 17조4,000억원에 달했다. 배당 및 이자 등 금융소득은 33조4,000억원이었다. 불로소득(135조6,000억원)은 전년보다 20% 증가한 것이다. 2016년 부동산과 주식 양도소득, 이자소득과 배당소득 합계는 112조7,000억원이었다.
불로소득은 고소득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배당소득 19조6,000억원중 상위 0.1%인 9,313명이 8조9,387억원을 차지(전체의 45.7%)했다. 1인당 9억6,000여만원이다. 상위 10%는 18조3,740억원(93.9%)에 달했다. 이자소득 13조8,000억원 가운데 상위 0.1%(5만2,435명)가 차지한 금액은 2조5,331억원(18.3%)으로 1인당 평균 4,831만원이었다. 상위 10%(12만5,654명)가 거둬들인 이자소득은 12조5,654억원(90.8%)에 달했다. 근로소득은 상위 0.1%(1만8,005명)가 전체(633조6,000억원)의 2.3%를 차지했다. 자산소득의 불평등이 몇배 이상 심하다는 뜻이다.
앞으로 10년동안 세계적으로 ‘부의 대물림’ 쓰나미가 온다는 점이 더욱 커다란 문제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날 세대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계층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자산 컨설팅업체 웰스엑스는 ‘세대간 이동 : 2019 부의 가족이전’ 보고서를 통해 순자산 500만달러(58억원)가 넘는 세계부유층이 2030년까지 자녀에게 상속할 재산이 15조4,000억달러(1경7,810조1,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 GDP(2018년 1조7,200억달러)의 9배에 이르는 규모다. 
2030년까지 재산을 상속할 자산가들은 모두 55만명에 이른다. 1인당 평균 자산상속 규모는 2,820만달러(326억원)로 추정된다. 재산이 3,000만달러가 넘는 슈퍼부자 6만8,900명이 물려주는 자산이 3분의2를 웃도는 10조4,000억달러에 이른다. 1인당 1억5,300만달러(1,770억원)이다. 순자산 1억달러이상인 울트라부자 1만8,500명의 상속재산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8조달러에 달한다. 재산이 많을수록 고령자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500만달러이상 자산가는 세계 260만명으로 순자산규모는 약 57조달러이다.
양극화는 고착화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옛말이 됐다.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가장 커다란 요인은 불공정한 대학입학 사정절차 등 ‘기회 사재기’를 통해 이뤄진 특권 대물림이다. “상위 20%인 중상류층은 도시형태를 바꾸고 교육제도를 장악하고 노동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으며 공공담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리처드 리브스 브루킹스연구소 경제학분야 선임연구원이 저서 ‘20 vs 80의 사회’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이다. 중상류층은 자녀의 교육을 통해 인적 자본을 키우고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물려주려 한다는 것이다.
불평등과 불공정 구조는 미국사회에 국한하지 않는다. 경제침체 속에서 중산층이 점차 해체돼가는 세계적 현상과 맞물려 있다. 한국사회도 다르지 않다. ‘조국사태’로 청년의 분노를 자아낸 불공정이 그것이다. 이들은 “정의와 공정성을 문제삼는 세력 역시 정의와 공정성을 파괴한 적폐의 장본인 아니냐”고 묻는다. 스튜어트는 “교육수준이 높고 뛰어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집단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공공이익에 복무하는 일로, 노동자계급이 똑같은 일을 하면 자유시장의 원칙을 위반하는 폭력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새로운 귀족계층인 능력자계층(Meritocratic Class)은 다른 사람들의 자녀를 희생양으로 삼아 부를 축적하고 특권을 대물림하는 오래된 술책을 터득했다. 우리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부의 편중과 관련해 아무 잘못도 없는 방관자가 아니다.” 스튜어트의 지적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경구이다. 
‘부당세습’의 감수와 해설을 맡은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은 “엘리트계층이 특권을 세습하며 ‘신분’ 또는 ‘계급’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을 핵심으로 꼽았다. 이 국장은 이들이 “부당 이익을 환원하고 내 아이만을 위한 ‘좋은 부모’가 되기 이전에 모든 아이들을 위한 ‘좋은 시민’이 되기를 선택하지 않는 이상 불평등의 폭주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9.9%를 견제하고 압박하고 현명한 사회적 선택을 하게 하는 힘은 결국 90%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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