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원 칼럼] ‘인사하는 사람’(Greeting man) 조각가 유영호의 새해 소망, ‘북측의 화답’

[지재원 칼럼] ‘인사하는 사람’(Greeting man) 조각가 유영호의 새해 소망, ‘북측의 화답’

  • 기자명 지재원 기자
  • 입력 2020.01.01 21:44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을 코앞에 둔 경기도 연천군 옥녀봉에는 북녘을 향해 고느넉이 인사하는 10m 높이의 커다란 조각상이 있다. 일명 그리팅맨(Greeting Man).

맞은 편은 황해북도 장풍군 마량산이다. 직선거리는 약 4km.

2016년 4월23일, 이 자리에 그리팅맨을 세울 때부터 조각가 유영호(55)의 꿈은 남과 북에서 그리팅맨이 마주보며 인사하는 것이었다.

기해년 세밑, 유영호 작가에게 새해 소망을 묻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남북 평화에 도움이 될 연천 – 장풍 프로젝트의 성사“라고 힘주어 말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⓵ 북한 조각가가 ‘인사하는 사람’을 제작해 북쪽에 세우는 것 ② 북한 조각가가 한국에 와서 작업하는 것 ③ 내 작품을 북한에 기증해 전시하는 것 중 어느 것도 좋다고 한다.

아직 북측의 반응이 없지만 새해에는 반드시 화답이 와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그리팅맨’들이 서로 인사하는 광경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유작가는 개념미술과 사회참여형 예술로 유명한 독일의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6년간 공부했다. 유학생이던 1999년 그룹전에서 큰절하는 장면의 영상을 내놓았는데, 이를 본 네덜란드 출신의 조각가가 “인사는 모든 관계의 시작점”이라고 말한 것을 계기로 ‘그리팅맨’을 구상했다고 한다.

품위를 지키면서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한국식 인사법은 상대방에게 존중과 화해, 소통을 전한다. 이후 존중 겸손 화해 평화 소통은 ‘그리팅맨’ 조각상의 상징 메시지가 되었다.

2007년 경기도 파주에 3.5m 크기의 그리팅맨을 처음 설치한 이래 2019년 8월 브라질 상파울루에 6m 크기의 그리팅맨을 세우는 등 국내외에 크고 작은 그리팅맨들을 한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계속 선보이고 있다.

해외에는 2012년, 위도상 우리나라와 대척점에 있는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중심가에 처음 세워졌다.

그동안 그리팅맨은 설치 장소에 따라 강조하는 메시지가 조금씩 달랐다. 가령 브라질 상파울루의 그리팅맨은 ‘호모 코레아니쿠스’ 즉 한국인으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에콰도르에서는 두 그리팅맨이 적도선을 앞에 놓고 서로 인사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팅맨은 남반구와 북반구를 대표하며 지구촌의 공존을 지향한다. 반면 태평양과 대서양, 북미와 남미가 만나는 접점인 파나마시티에 설치된 그리팅맨은 소통과 연결을 의미하는 커넥팅맨을 뜻한다. 남태평양 키리바시에 세워질 그리팅맨은 기후 온난화로 인해 물에 잠기게 될, 지구촌의 기후 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경고하는 인간(Warning man)’을 상징하게 될 것이다.

새해 3월엔 처음으로 유럽대륙에 그리팅맨이 세워질 예정이라고 한다. 2차대전의 격전지였던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이다. 유럽의 첫 그리팅맨을 노르망디에 세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르망디는 2차 세계대전의 상징적인 장소로서 유명하지만,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측면에서도 의미있는 곳이다. 독일군 소속으로 연합군에 맞서 싸우다 포로가 된 한국인이 있었는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인이 연합군에 대항해서 싸웠다는 것은, 역사적인 슬픔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SBS 다큐멘터리 <노르망디의 코리언>에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흑백사진이 한장 소개된다. 사진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에 포로로 끌려온 왜소한 체구의 한 동양인이 있다. 한반도에서 일본군에 징집돼 소련군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독일군 군복을 입고 노르망디 전투에 투입된 조선의 청년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따라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을 겪은 이 인물은 조정래의 소설 <사람의 탈>, 강제규감독의 영화 <마이웨이> 등을 통해 부각되기도 했다.

유영호 작가는 새해 2월, 우즈베키스탄의 아랄해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호수였던 이곳은 구 소련정부가 중앙아시아 일대를 개간하며 관개용수로 사용하면서 지금은 애초 크기의 10%만 남아있을 정도로 사막화되었다.

유작가는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볼모지인 아랄해에 그리팅맨이 설 수 있다면, 그것은 자연에 대해 고개 숙이는 반성과 참회의 상징물이 될 것”이라며 이번 현장답사의 의미를 밝힌다.

“사실 나는 ‘∼스탄’으로 끝나는 중앙아시아 나라들에 그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제일먼저 관심을 가졌던 곳은 키르키스스탄 이시쿨 호수 근방의 ‘촐본아타’다. ‘촐본’은 새벽별이라는 뜻의 졸본성(고구려의 첫수도)의 졸본과 같은 뜻으로 발음도 비슷하다. ‘아타’는 아버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몇몇 국학자들이 고구려 건국 이전의 도읍지였던 ‘신시’가 이시쿨이었다고 주장할만큼 촐본아타는 우리 고대사와 연관성이 높고, 주변엔 아직도 선사시대 유물들이 널려 있다. 5년전부터 이곳에 그리팅맨을 세우려고 추진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는 고구려 사신벽화가 발견된 사마르칸트처럼 우리 고대사와 관련있는 곳이 많다.”

그리팅맨은 6m 기준으로 제작기간이 4 ~ 8개월 정도 걸리며 제작비용도 1억2천만원 정도로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해외에는 모두 기증하고 있다. 유작가는 자산가도 아니고 결혼도 안한 채 전월세를 전전하다 최근에야 18평 아파트를 하나 마련했을 정도다. 처음에는 기업 협찬을 받아볼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하고, 작은 그리팅맨을 만들어 팔거나 국내에 세운 작품에서 얻은 수익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통독 30주년이 되는 10월3일 즈음에는 베를린 장벽 근처에 그리팅맨 세우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통일 경험’이 있는 독일의 사례는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 그리팅맨을 세우고 있는 그가 여전히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곳은 남한 옥녀봉과 마주보고 있는 북한 마량산이다. 새해에는 그의 소망이 이루어져서, 남과 북의 그리팅맨이 마주보고 인사하는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응원한다. <본사 전무>

연천 옥녀봉에서 북측을 향해 인사하는 그리팅맨(사진 = 연천군청 제공)
연천 옥녀봉에서 북측을 향해 인사하는 그리팅맨(사진 = 연천군청 제공)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