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 바다사랑과 등대부품 울러 멘 피난길 등대지기

강태공 바다사랑과 등대부품 울러 멘 피난길 등대지기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12.31 09:28
  • 수정 2020.01.0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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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69)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등대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답답하면 훌쩍, 동해바다로 떠났다. 동해안 여행을 떠날 때는 1박2일, 2박3일 등 연계여행 일정에 따라 묵호~동해시, 동해 위 강릉시~주문진항, 주문진항 위 양양~속초시 등 3개 지역 지도를 참고하면 좋다. 이동 거리와 지역 특성에 감안해 코스를 잡으면 해안가와 먹거리를 즐기고 여정을 관리하는데 훨씬 수월하다.

집에서 가까운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심야버스를 탔다. 3시간 후 새벽 4시 강릉에 도착했다. 새벽 여행지에 도착하면 어중간한 시간대가 늘 고민거리. 찬바람 비집고 도회지를 걸었다. 낙엽을 쓸던 미화원 아저씨와 담뱃불을 붙여주며 대화를 나눴다. 한동안 가슴 따뜻한 시간이었다.

여행과 사람(데일리스포츠한국 2019.12.31일자)
여행과 사람(데일리스포츠한국 2019.12.31일자)

미화원 아저씨 마음처럼 정갈한 경포대 해변과 호숫가를 걸었다. 동해바다가 참 맑고 아름답다. 파도소리 따라 긴 백사장을 걸었다. 그리고 주문진으로 가는 새벽 6시 첫차를 탔다.

주문진은 강릉시 북부에 위치한 읍 소재지 항구다. 강릉시는 1개 읍, 7개면으로 구성돼 있다. 주문진읍 면적은 60.56㎢, 인구는 2019년 11월 30일 현재 16,470명이다. 원래 강릉군 신리면 지역의 ‘주문’으로 불리다가나루터가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주문진이라 부르게 됐다.

이후 항구가 생기면서 주문진은 번창했고 1937년 신리면이 주문진면으로 편입됐다. 1940년 11월1일 주문진읍으로 승격돼 현재 주문리, 교항리, 장덕리, 삼교리, 향호리가 주문진읍에 해당한다.

강릉을 거쳐 주문진으로 간 이유는 꼭 만나고 싶은 영원한 등대지기가 강릉시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36년 동안 등대지기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한 분이다. 수많은 등대자료를 수집하던 중에 등대지기를 천직으로 삼은 그분을 발견했다. 주인공은 전쟁이 일어나자 등대 불빛을 뿜어내는 핵심 부품인 등명기를 분해해 부산 피난길에 둘러메고 갔던 분이다.

아기바위와 무인등대(사진=섬문화연구소)
아기바위와 무인등대(사진=섬문화연구소)

주인공은 삶과 등대의 애환을 들려주며 주문진 등대기행에 동행했다. 주문진 가는 길에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저마다 등대 불빛주기가 다른 데요, 북한 원산과 주문진등대 불빛 주기가 거의 비슷했죠. 그런데 전쟁 후 전력이 모자라 주문진등대가 돌아가다 멈추다가를 반복해 불빛 주기가 원산과 같았죠. 일본에서 원산으로 향하던 밀수선이 주문진등대를 보고 원산인줄 알고 잘못 들어왔다가 잡힌 적이 있어요. 하하하”

전쟁 후 산업화에 매달리며 심각한 전력난을 겪던 시절이었다. “60년대 초 묵호등대로 영국 상선이 기자재를 싣고 들어오는데 묵호등대 불빛이 10초마다 깜박여야 하는데 14초 만에 한 번씩 깜박이다, 다시 10초, 7초에 불규칙적으로 깜박인 거죠. 전력이 모자라던 시절인데 저녁에 집집마다 전기를 켜버리니 등대를 밝혀야 하는 동력이 모자란 거죠. 영국 상선은 헷갈려서 영국대사관에 연락해 ‘위치를 모르겠다. 묵호 같은데....’ 대사관은 한국 치안당국에 연락했고 치안당국은 다시 묵호등대에 전화해 ‘여기 치안국인데요, 등대 잘 돌아갑니까?’라고 물었죠. 당연히 등대지기는 ‘예, 잘 돌아갑니다’라고 말했죠.”

해안가 오징어덕장(사진=섬문화연구소)
해안가 오징어덕장(사진=섬문화연구소)

당시 영국 상선이 묵호까지 오는데 1년이 걸렸다. 세상도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했다. 그리고 등대는 이제 여행자들에게 멋진 해양문화공간을 제공한다.

주문진등대는 주문진항에서 해안도로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언덕 끝자락에 있다. 등대 가는 길목에 분위기 있는 카페도 있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추억 만들기에 안성맞춤이다. 주문진 등대는 어촌과 동해바다를 한눈에 굽어보고 있다.

주문진항 내수 면적은 21만㎡ 연안항으로 오징어, 명태, 꽁치, 무연탄, 경유 등을 반입하던 대표 항구이자 어업전진기지로 호황을 누렸다. 1917년 여객선, 화물선이 처음 입항해 부산~원산 간을 운항하는 중간 기항지였다.

주문진 등대(사진=섬문화연구소)
주문진 등대(사진=섬문화연구소)
주문진 수산시장
주문진 수산시장

주문진등대는 주문진항과 함께 해왔다. 1918년 3월 20일 강원도에서 첫 번째로 세워졌다. 석유등으로 불빛을 밝힌 이래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된 백색 원형 연와조 등대이다. 등탑 직경 3m, 높이 13m로 외벽엔 백색의 석회 몰타르 구조다. 이런 벽돌식 구조의 등대는 우리나라 등대건축 초기에 해당한 것으로 건축적 가치가 매우 높다. 해방 이전 조선 총독부가 세운 탓에 일본식 건축양식을 사용했고 등대 출입구 상부에 일제 상징인 벚꽃이 조각돼 있다. 6.25 때 총탄 흔적도 고스란히 보듬고 서 있다.

등대불빛은 15초에 한 번씩 반짝이고, 37km까지 비춘다. 폭풍우나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공기압축기 즉 에어사이렌을 통해 60초마다 한 번씩 5초 동안 긴 고동소리를 울린다. 이 소리가 선박에게 가 닿는 거리는 3마일(5.5km)해상까지다.

주문진등대는 2000년 선박의 정확도를 10미터 거리 이하까지 향상시킨 인공위성을 이용한 최첨단 항법장치인 DGPS(디퍼렌셜 지피에스) 시스템을 가동했다. 작은 등불에서 시작한 주문진 등대는 이제 인공위성을 통해 정확한 길잡이로서 동해바다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등탑 아래 지점은 수준점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수준점은 지면의 높이 즉 표고와 해발고도를 측량하는 기준점으로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설치하여 관리하는 국가 중요측량 시설이다.

주문진등대는 2002년 숙소를 새로 짓는 등 등대주변을 말끔히 단장했다. 동해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도 만들었다. 등대 아래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이자 걷기여행 코스로 제격이다. 아무 갯바위에서 낚싯줄을 던지면 물 좋은 고기를 만날 수 있다. 평일에도 많은 낚시꾼들이 몰렸고 특히 방파제에서는 가을철이면 돔의 일종인 남종바리(강릉사투리)가 많이 잡힌다.

주문진 해변 낚시터
주문진 해변 낚시터

등대 아래에 수산시장이 있다. 나는 갓 잡아온 횟감에 소주 한 병을 사들고 갯바위 강태공 옆에 앉았다. “많이 잡으셨어요?”, “그냥 세월을 낚는 거죠?” 그렇게 낯 설은 곳에서 잔을 주고받으면서 꼭, 한번 어디서 만났던 것처럼 인정이 파도치기 시작한다. 50대 중반의 그는 주문진 토박이로 지금까지 바다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나도 행복해졌다. 낚싯대에 입질이 오고 통통배들이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입항하는 배들은 잡어를 실은 1톤 남짓 어선에서 수 백 톤에 이르는 각종 어류를 실은 선박들이다. 주문진 앞바다는 여름에는 난류성 어류, 겨울에는 한류 어종이 주로 잡힌다. 어류들은 경매장에서 종소리 딸랑 딸랑거리며 낙찰돼 팔려나간다. 그런 회에 해녀들이 따온 미역과 성게, 해삼, 전복까지 곁들여주는 수산시장 맛 기행이라면 금상첨화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소돌해변(사진=섬문화연구소)
소돌해변(사진=섬문화연구소)

그렇게 주문진 앞바다는 태백산맥 뜨거운 맥박소리를 이어받아 파도소리와 왁자지껄 사람들 소리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었다. 해안도로와 집집마다 오징어 덕장이 또 다른 겨울 풍경화를 제공하고 싱싱한 수산물이 파닥이는 수산시장 약동함 그리고 푸른 파도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와 어선들에 나부끼는 깃발의 아우성이 주문진만의 교향악으로 연주된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 내는 그 아름다운 겨울바다의 향연과 함께 하고 싶다면 지금 주문진으로 떠나볼 일이다. 문의: 주문진 읍사무소(033-660-3414)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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