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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오가는 연락선에 그리운 이의 소식을 묻다[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67> 부산시 남구 오륙도등대
  • 박상건 기자 pass386@daum.net
  • 승인 2019.12.1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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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님 떠난 부산항은 갈매기만 슬피우네//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목 메여 불러봐도 말없는 그 사람//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님아”

1972년 등장해 전 국민의 노래가 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부산을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부산시민 여론조사에서 제일 먼저 손꼽는 노래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처럼 오륙도는 부산항으로 오고가는 선박의 관문이고 이정표 역할을 한다.

오륙도등대 전경

오륙도는 부산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데 그 유래에 대해 1740년 편찬한 ‘동래부지’에서는 “오륙도는 절영도 동쪽에 있다. 봉우리와 뫼의 모양이 기이하고 바다 가운데 나란히 서 있으니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어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기대 끝자락 승두말에서 남동쪽 600m 지점에 있는 오륙도는 승두말에서 부터 우삭도,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 등 5개의 해식 이암(離岩)으로 이뤄져 있다. 우삭도가 간조 때 1개의 섬이었다가 만조 때 바닷물에 의해 2개의 섬으로 분리되어 보인다.

육지 쪽부터 보면, 세찬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방패섬, 섬 꼭대기에 소나무가 자생하는 솔섬, 갈매기를 노려 독수리들이 모여들었다는 수리섬, 뾰족하게 생긴 섬으로 크기는 작으나 제일 높은 송곳섬, 가장 큰 섬으로 커다란 굴이 있어 천정에서 흐르는 물이 많다는 굴섬,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섬으로 구성돼 있다.

오륙도는 본디 12만 년 전까지는 육지에 이어진 하나의 작은 반도였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거센 파도에 깎인 것이다. 이른바 침식작용으로 육지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섬이다.

수리섬과 송곳섬

오륙도에는 밀사초, 해국, 산부추, 갯고들빼기, 갯장구채, 사철나무, 느릅나무, 곰솔, 후박나무, 돌가시나무, 보리밥나무, 돈나무, 보리수나무 등 45여종이 식물이 서식한다. 솔매, 민물가마우지, 바다 직박구리, 괭이갈매기 등이 서식하고, 등대 아래 해안가에는 수많은 총알고동, 갈고동, 바위게, 따개비 등 60여종의 바다생물을 직접 볼 수 있다.

오륙도등대는 마지막 등대섬으로 부산항의 관문을 밝혀주고 있다. 등대는 1972년 6월 부산시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됐다가 2007년 10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24호가 됐다. 주말과 휴일에는 낚시꾼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등대섬은 평탄하여 밭섬이라고도 불렀으나 등대가 세워지면서 등대섬이라고 불렸다.

등대섬 선착장에서 등대로 오르는 길은 육중한 시멘트 계단길이다. 몇 굽이를 돌아 등대에 이르면 서북쪽 끝에 나무로 만든 육모정자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사색하기에 좋다. 오륙도 등대는 해양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연간 10만 명 이상이 찾는 이 곳 등대는 우리나라 주요 등대를 살펴볼 수 있는 사진 전시실과 부산항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돼있다. 여기 오르면 생동하고 항구도시, 아기자기한 부산항과 아름다운 야경을 조망할 수 있다.

용호선착장과 갈맷길

오륙도 등대는 1937년 11월 첫 불을 밝혔다. 부산항 입구에 무신호를 설치하여 불을 밝힌 항로표지로써 부산 유인등대 중에서는 가장 늦게 설치됐다. 그러나 부산항에 입항하는 선박들에게 제일 먼저 길을 안내하는 상징적인 통항표지이다. 거센 조류와 조수 간만의 차가 3m에 이르는 해역에서 등대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륙도등대는 백원형 콘크리트로 6.2m 높이로 건립됐다가 등대가 너무 낡고 입출항 선박의 규모도 커지면서 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1998년 12월 27.5m 높이로 다시 세웠다. 등대 불빛은 10초에 한 번씩 깜박인다. 등명기도 회전식으로 교체하고 태양전지 45개를 설치하여 8.1킬로와트 전기를 얻을 수 있는 태양광 발전시스템을 갖췄다. 광달거리는 22마일이고 안개가 자욱하거나 눈비 등으로 흐른 날에는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해 전기폰 무신호를 40초마다 5초 간 한 번씩 소리를 울린다. 음달거리는 2마일이다.

오륙도등대와 오륙도방파제등대

등대 설립 초기에는 등대원이 일일이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등대의 불을 켰다. 지금은 자동감지센서에 의해 일몰과 동시에 켜지고 일출과 동시에 소등된다. 이곳 등대는 2003년 태풍 매미 강타로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태풍이 진입하면 등대 3층까지 파도가 들이쳐 등대원들은 1층 발전실에 물을 퍼내는 등 사투를 벌이며 등대의 안전과 이로 인해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안내해야 했다. 한반도에 태풍이 상륙하면 제일 먼저 이 해협을 통과했다. 지난해 태풍 ‘차바’도 그랬고 2012년 8월 나흘간 덮친 태풍 ‘볼라벤’과 ‘덴빈’도 그랬다.

오륙도 등대에는 사무실과 숙소 등 시설물을 갖췄고 2010년 오륙도 갈매기 조형물을 설치해 등대와 등대섬, 갈매기의 조화를 통한 친근하고 아름다운 등대공간도 연출했다. 오륙도등대 전경을 멀리서 감상하는 포인트는 오륙도 방파제등대이다. 강태공들이 많이 몰리는 이곳은 유람선 선장과 낚시꾼들 사이에서 일자방파제로 불린다.

그러나 이 역사적이고 유서 깊은 오륙도등대가 2019년 7월 1일자로 무인등대로 전환됐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등대 역사만큼 등대가 우리 정서에 미치는 그 정신적 자산은 깊고 넓은 것이고 무한한 사랑의 가치와 의미는 영원히 되살려 나갈 인문학적 자산이고 전통문화유산이다. 등대는 단지 기술적으로 불빛을 발사하는 시설이만이 아니다. 외국에서 무인등대를 국가문화유산으로 관리하기 위해 되레 새로운 인력을 투입하는 이유다. 현재 오륙도 등대의 전원, 주요 장비 등은 영도구 태종대공원에 있는 영도등대에서 원격으로 제어하고 있다.

유람선

등대에서 처음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오면 이기대 걷기코스가 시작된 지점이다. 225.3m의 장산봉 고개를 넘어 산줄기가 남북으로 뻗은 북쪽 바닷가 동해에 맞닿은 용호3동 일대의 대(臺)를 이기대라고 부른다. 이기대 동쪽 바다는 기이한 바위절벽으로 이뤄져 있는데 유람선을 타고 감상할 수 있다.

이기대 중심지형은 직각의 절벽이 아닌 바다로 암반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평면에 가깝게 된 곳이 산을 따라 2km정도 바닷가로 이어져 있다. 그 바위반석에서 동해를 바라보는 풍경과 밀려드는 파도가 장관을 이룬다. 낚시터로도 유명한 곳이다. 한동안 군사작전지구로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1993년에 개방됐다.

굴섬과 등대섬 사이 낚시꾼

이기대 해안은 그렇게 넓은 암반층으로 이뤄졌고 오랜 세월 파도에 의해 깎여 만들어진 침식지형으로 해식대지와 해식절벽, 해식동굴 등이 발달했다.

이기대는 걷기코스인 갈맷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용호동 유람선 선착장에서 태종대 유원지 입구까지 걷기여행 코스이다. 신선대, UN기념공원, 부산 박물관, 영화 ‘친구’로 유명한 문현동 곱창골목, 용두산 타워,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영도대교, 절영해안산책로, 태종대로 이어진다. 총 37.3km로 13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이다. 물론 일부 구간만 여행지로 선택할 수도 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필자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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