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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인과응보의 불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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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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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주인공이 유리로 들어온 지 27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는 밤새도록, 그의 아낙이었던 것이 누운 구덩이에다, 모래를 조금씩 조금씩 밀어넣어 혼백을 잃고 폐허인 것을 묻어버렸다. (<죽음의 한 연구(하)> 239쪽)

이 대목에서 나는 2000년 초가을의 금요일, 독일 유학 중 진행되었던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장례 미사를 집전했던 신부가 성서의 한 구절을 낭독한 후 마지막에 꽃삽으로 흙을 한 줌 퍼서 관 위로 던지며, “흙이었던 것은 다시 흙으로, 재는 다시 재로, 티끌은 다시 티끌로 돌아가리라(Erde zu Erde, Asche zu Asche, Staub zu Staub)!”라고 했던 기억을. 그 때 내가 경험했던 죽음은 엄숙하면서 동시에 축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수도녀의 육신을 위한 봉분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그 구덩이 넓이와 깊이만큼의 두터운 밤과 하늘과, 그리고 짧게 끊긴 그의 혀를 전부의 재산으로 그리하여 그녀는 묻혀 버린 것이다. (239쪽)

죽은 수도녀의 친구였던 수도부들은 그에게 흰 손을 저으며 떠나갔다. 그의 아낙이 “태문(胎門)이 열려지지도 닫혀지지도 않는 바르도”를 향해 아스라이 사라져간 유리의 황량한 사막은 흐린 연기색 볕에 더욱더 푸석푸석 메말라가고 있었다. (240쪽)

그는 타는 듯한 목마름이 일자 갑자기 자신이 인간인 것이 절망스러워졌다. “인간인 것이 징그러워서, 지렁이라도 되었으면, 굼벵이라도 되었으면” 싶었다. 그는 그저 사람만 아니었으면 싶었다. 그는 그의 전신에 칙칙히 달라붙은 죽음이며, 그 냄새며, 추억 같은 것들을 씻을 요량으로 자신이 존자스님과 염주스님을 살해했던 샘가로 다가갔다.

그가 몸을 씻는 동안에도 그의 귀에는 마치 레코드판이 돌아가듯이 그녀가 했던 말이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고 있었다. 그의 계집은 “그랴요. 나 인제 물괴기나 될라요이. 그래서나 시님이 멋 땜시로 벌받고 있단 것 내가 모도 갚았이먼 싶어라우”라고 했었던 것이다. (241쪽)

그런데 그에게 어쩐지 계집의 죽음이 어떤 부채에 있어서의 이잣돈 물고기로서나 치러진 듯이 여겨졌다. 그런데 그로선 그것으로 본전까지 다 갚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

갑자기 그는 자신이 지금 몸을 닦고 있는 이 샘이 어쩌면 인과응보의 불구덩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불구덩이는 한 번 빠뜨려지면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곳이고, 업화(業火)에 오르륵 타는 검불 같은 것일지니...!

그는 무기력과 무의미로 말미암아 허탈해져 그저 샘 속에 몸을 담그고 해가 정오에 떠올랐을 때까지 앉아 있었다. 이제 그에게는 아무 곳도 갈 곳이 없었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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