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독버섯처럼 번지는 ‘반일종족주의’의 폐해

<김주언 칼럼>독버섯처럼 번지는 ‘반일종족주의’의 폐해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12.0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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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강제징용과 일본군 성노예를 부정한 ‘반일 종족주의’의 폐해가 점입가경이다. 한때 국내에서 베스트셀러 1위 반열에 오른 이 책은 일본에서도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14일 발행된 일본어판은 발행당일부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극우언론은 찬양일색이다. 산케이신문은 칼럼을 통해 “반일 종족주의에서 한줄기 광명을 봤다”고 썼다.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 ‘반일종족주의’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까지 극찬했다. 앞으로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반격자료로 활용될 가능성도 크다.

‘반일 종족주의’는 일본 극우세력의 시각에서 일제강점기를 기술했다. 이 책은 “친일은 악, 반일은 선이며 이웃나라 중 일본만 원수로 감각하는 것”을 ‘반일 종족주의’로 규정한다. 더 나아가 “일본이 식민지배 35년간 한국인을 억압 착취 수탈 학대했고, 일본이 반성 사죄하지 않았다는 통념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특히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일본과의 과거사가 청산됐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일본, 그중에서도 아베 신조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극우세력의 시각에서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징용 이전의 모집과 관 알선을 통한 조선인의 일본행은 자발적 선택이었다“며 일본행은 로망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조선인들에게 ”임금을 정상으로 지불했고 생활은 자유로웠다“며 ”조선여인이 있는 특별위안소에서 월급을 탕진하기도 했다“고 썼다. 특히 조선인들이 차별을 받았다는 건 역사왜곡이라고 강변한다. 이는 역사기록이나 피해자들의 증언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더구나 대법 판결조차 무시한 일방적 주장이다.

대표 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여인들이 공창으로 향할 때 가난과 폭력이 지배하는 가정을 벗어나 도시의 신생활로 향하는 설렘이 없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역시 전쟁특수를 이용해 한몫의 인생을 개척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선택의 자유가 전혀 없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찾아낸 강제동원기록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난과 증언을 깡그리 무시하는 발언이다. 어렵사리 성노예 사실을 증언한 피해 할머니들을 모독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또 다른 저자인 주익종 이승만학당 교사는 “박정희 정부의 7억달러 주장에 일본이 인정한 금액은 7,000만달러에 불과해 한국은 청구할 게 별로 없었다”며 “한일 양국은 1962년 김종필-오히라 회담에서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방식으로 타결했다”고 강변했다.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을 비롯한 일체의 청구권이 완전히 정리됐다”는 주장이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에게 개인배상으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개인배상을 인정하는 세계적 추세와도 배치된다.

일본어판 출간이후 극우잡지 ‘보이스’는 이 전교수의 대담기사를 실었다. 보이스는 문재인정부의 대일정책을 비판하고 이 전교수의 대일인식을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준거로 치켜세웠다. 아베정권의 대한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속셈이다. “문재인정권의 관제 반일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영훈씨의 편저작 ‘반일 종족주의’. 과거에 집착해서 배상청구를 되풀이하는 정신의 부패는 어째서 끝나지 않는 것인가?” 한국인들의 ‘정신의 부패’를 거론하며 일본의 혐한여론에 이론적 뒷받침하려는 의도이다.

문제는 이들이 책을 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우연위원은 유엔 인권이사회에 나가 강제징용을 부정하고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고 소녀상은 역사왜곡”이라는 터무니없는 증언을 했다. 특히 “정대협은 북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억지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 극우인사 후지키 순이치의 자금지원을 받아 인권이사회에 참석했다. 나아가 일본 방송에 출연해 “조선인 노무자들은 자발적으로 일본에 갔고 징병 역시 합법적이었다”고 거리낌없이 주장했다.

이들 3인의 주장은 일본이 미국에서 위안부 흔적을 지우기 위한 로비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받은 홍보업체가 이들의 저서를 요약해서 홍보에 활용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들의 저서 내용을 요약해 홍보자료로 할용한 것은 저술 의도와 관계없이 일본의 목적과 부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정부는 미국 하원 및 상원, 언론과 지방자치단체 등을 대상으로 3,500여회이상 로비를 벌였다. 일본정부가 세계 각지에 설치되는 소녀상 설치 및 전시를 방해하는 활동을 추진하고 있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뉴라이트’로 불리는 이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도 부정한다. ‘건국절 논란’의 진원지도 이영훈이사장이다. 건국절 주장은 1948년 8월15일 임시정부와 무관하게 이승만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주장이다. 3.1운동은 물론, 임시정부를 이끈 백범 김구선생 등의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논리이다. 이명박·박근혜정권에서는 건국절 제정 움직임까지 있었다. 문재인정부가 올해 임시정부 수립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임정의 정통성을 복원시키면서 사그라들었지만 언제 되살아날지 모른다.

건국절 논란은 박근혜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추진과도 맞물려 있다. 이들은 2000년대 들어 역사교과서를 바꾸려고 나섰다. 박근혜정권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건국절 논란과 함께 역사학계는 물론,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커다란 비판을 받았던 것이 교학사 교과서였다. 뉴라이트의 주장을 담은 이 교과서는 군사독재와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대부분 학교에서 채택하지 않고 국민적 비난으로 퇴출됐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촛불혁명으로 명운을 다했다.

이들의 주장과 논리는 박근혜정권의 대일정책과도 명맥이 닿아 있다. 박정권은 위안부피해 할머니들과의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아베정권과 위안부합의를 맺었다. 더구나 양승태 대법원과 사법농단을 벌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연기시켰다. 이러한 대일 굴욕정책은 문재인정부 들어 한일갈등의 씨앗이 됐다. 위안부 합의는 취소됐고 대법은 피해자 배상판결을 내렸다. 아베정권은 한국정부가 합의를 위반했다는 근거로 삼는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이들 뉴라이트의 주장과 논거가 뒷받침된 것이다.

그렇다면 거짓투성이 주장을 두고만 볼 것인가. 국내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를 비하한 책의 저자에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서울 동부지법은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에게 원고에게 1,000만원씩 9명에 9,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피해 할머니들은 ‘제국의 위안부’가 피해자들을 ‘자발적 매춘부’, ‘일본군 협력자’ 등으로 비하했다며 출판 판매 금지 가처분신청과 1인당 3,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인격권 보호가 학문의 자유 보다 상대적으로 중시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차제에 독일처럼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독일은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법’으로 불리는 형법 제130조를 통해 나치가 저지른 제노사이드를 찬양 부인 경시하거나 나치를 찬양할 경우 5년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우리는 그런 법이 없어서 왜곡되고 잘못된 주장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며 “친일찬양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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