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 박예분의 ‘집 없는 달팽이’ (4)

[단편동화] 박예분의 ‘집 없는 달팽이’ (4)

  • 기자명 박예분 기자
  • 입력 2019.12.0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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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예분 기자] “엄마, 우리 이제 밖으로 나가도 돼요?”

보미네 식구들이 꿈나라 여행을 떠났으니 어린 달팽이들도 오랜만에 신나는 욕실 여행을 하고 싶었다. 엄마 달팽이가 먼저 나가서 신호를 보냈다.

“얘들아, 어서 나와라”

첫째 달팽이의 뒤를 따라서 어린 달팽이들이 졸졸졸 기어 나왔다. 어린 달팽이들이 하얀 타일 벽에 다닥다닥 붙어서 미끄럼을 타며 놀았다.

한 가지 위험한 것은 절대로 사람들 눈에 띠어서는 안 된다.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얘들아, 그만 내려가! 멀리 가면 되돌아오지 못해”

엄마가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어린 달팽이들은 욕조 안을 기웃거렸다.

욕실은 어린 달팽이들의 신나는 놀이터였다. 그때 욕실 문이 딸깍 열렸다. 보미가 눈을 비비며 들어왔다.

“꺄아악~! 엄마, 엄마!”

보미가 놀라서 소리치자 보미의 엄마아빠가 달려 나왔다.

보미 아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 달팽이는 깜짝 놀랐다. 어린 달팽이들도 놀라서 몸이 작은 돌멩이처럼 굳었다. 보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린 달팽이들을 찬찬히 살폈다.

“아빠, 한 마리도 빠짐없이 다 잡아 줘요!”

보미가 거실에서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후다닥 가져왔다. 보미 아빠가 막내 달팽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귀엽게 생겼네!”

보미 아빠가 큰 손가락으로 막내 달팽이를 잡으려고 했다. 흠칫 놀란 막내 달팽이가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그 순간 엄마 달팽이가 온몸으로 막았다.

“안 돼요!”

엄마 달팽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엄마 달팽이는 얼른 어린 달팽이들을 감싸 안았다.

“세상에나! 어미가 새끼들을 감싸는 것 좀 봐요!”

보미 엄마의 말에 보미 아빠가 맞장구쳤다.

“그러게.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미가 자식 챙기는 건 똑 같네”

하지만 보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어린 달팽이들을 통 속에 집어넣었다.

엄마 달팽이까지 모두 작은 플라스틱 통에 갇혔다. 달팽이들은 서로 몸을 부둥켜안고 벌벌 떨었다.

엄마 달팽이가 몸을 길게 늘여 어린 달팽이들을 감쌌다. 보미가 플라스틱 통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보미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소파에 앉아 손짓했다.

“이리 가져와!”

보미 엄마 옆에는 더 커다랗고 네모난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거기엔 이미 다른 달팽이들이 갇혀 있었다.

“여보, 어제 시골에서 가져 온 배춧잎을 더 깔아 주어야겠어요”

“그러게, 식구가 많이 늘었네”

보미 아빠가 커다란 플라스틱 통 바닥에 배춧잎을 깔았다. 그리고 보미가 욕실에서 잡아 온 달팽이들을 큰 통에 넣었다. 달팽이들은 어리둥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얘들아, 봄이 올 때까지만 여기서 사이좋게 살아!”

보미가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봄에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데려다 줄게. 거긴 상추밭도 있고 배추밭도 있어.”

엄마 달팽이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린 달팽이들은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상추와 배추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린 달팽이들은 벌써부터 입맛을 다셨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20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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