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 박예분의 ‘집 없는 달팽이’ (3)

[단편동화] 박예분의 ‘집 없는 달팽이’ (3)

  • 기자명 박예분 기자
  • 입력 2019.12.02 09:42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예분 기자] 엄마 달팽이가 숨을 몰아쉬자 어린 달팽이들도 소리 없이 숨을 내쉬었다.

“얘들아, 앞으론 밤에 욕실 여행하는 걸 조심해야겠다. 그리고 아무리 급해도 하얀 타일 벽에 함부로 똥을 싸면 안 되겠다. 알았지?”

어린 달팽이들이 스스로 조심해야겠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들키는 날엔 정말 위험할지도 몰라.”

엄마 달팽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린 달팽이들은 그날부터 타일 벽에 똥을 싸지 않았다. 배가 슬슬 아플 땐 아예 욕실 여행을 하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보미네 식구들이 모두 잠들었다. 그 사이에 어린 달팽이들이 천장에서 욕실 안으로 하나 둘씩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욕실 여행은 최고야!”

어린 달팽이들은 신이 났다. 보미가 쓰던 비누에서 꽃향기가 났다. 보미의 향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욕실이 방에 붙어 있어서 더욱 따뜻했다. 겨우내 보일러를 틀어서 추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은 집은 세상에 없을 거야.”

어린 달팽이들은 욕조에도 들어가 보고, 변기 커버에도 앉아 보고, 보미가 쓰는 칫솔 손잡이도 살짝 만져 보고, 거울에 자기들의 모습을 비춰 보기도 하고, 샤워 꼭지에 붙어서 보미처럼 샤워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얘들아, 이제 그만 올라가자!”

엄마 달팽이의 신호에 어린 달팽이들이 천장 안으로 슬슬 기어 들어갔다. 밤엔 이렇게 신나는 욕실 여행을 하고 낮에는 천장 안에서 실컷 잠을 자고 놀았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보미네 가족은 커다란 여행 가방을 꾸렸다.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놀러가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설맞이를 하고 올 거라고 했다.

“보미야, 네 한복은 챙겼니?”

“여기 챙겨 놨어요.”

보미가 세뱃돈 받을 복주머니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알았다, 알았어! 하하.”

보미 엄마와 아빠가 서로 눈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곧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와 보미네 가족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났다. 집안에 점점 따뜻한 기운이 사라졌다. 보일러를 틀지 않아서 욕실까지 찬 기운이 올라왔다.

보미네 가족이 시골에 간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엄마 달팽이의 마음이 더욱 초조해졌다.

‘이대로 있다 가는 어린 달팽이들이 모두 얼어 죽을지도 몰라. 어떡하지’

엄마 달팽이는 잠든 어린 달팽이들을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린 달팽이들은 긴 겨울잠에 빠진 듯 꿈적도 안 했다. 엄마 달팽이는 어린 달팽이들을 감싸 안으려고 몸을 더 길게 늘였다. 하지만 엄마 달팽이의 몸도 점점 굳어갔다.

‘흑흑, 제발 도와주세요!’

엄마 달팽이가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러나 개미 기어가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엄마 달팽이는 자꾸만 눈이 감기는 걸 참고 또 참았다.

자고 있는 어린 달팽이들의 모습이 점점 흐릿하게 보였다. 그때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보미네 가족이 돌아왔다. 엄마 달팽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딸깍, 욕실 문이 열렸다.

“솨아~ 솨아아~.”

아저씨가 먼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갔다. 이어서 아주머니가 보미를 데리고 들어왔다.

“와, 꽃향기다. 보미가 돌아왔어!”

어린 달팽이들이 눈을 번쩍 떴다. 따뜻한 물을 받아 놓은 욕조에서 김이 모락모락 천장까지 피어올랐다. 천장 안까지 따스한 공기가 전해졌다. 어린 달팽이들이 웅크렸던 몸을 서서히 풀었다. 달콤한 과일향이 감돌았다.

“흠흠, 냄새 좋다!”

엄마 달팽이는 그제야 큰 숨을 내쉬었다. 기운을 차린 어린 달팽이들이 더듬이를 세우기 시작했다. 달팽이들의 몸이 다시 촉촉해졌다. 어린 달팽이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보미네 식구들은 피곤했는지 일찍 잠들었다. 몸이 촉촉해진 어린 달팽이들이 오랜만에 느릿느릿 몸을 움직였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202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1202일자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