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 박예분의 ‘집 없는 달팽이’ (2)

[단편동화] 박예분의 ‘집 없는 달팽이’ (2)

  • 기자명 박예분 기자
  • 입력 2019.11.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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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예분 기자] 엄마 달팽이는 어린 달팽이들의 미끈한 등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평생 집 없이 살아가야 하는 민달팽이의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엄마 달팽이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어린 달팽이들의 몸이 점점 차가워졌다. 엄마 달팽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린 달팽이들을 다시 한 번 힘껏 끌어안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엄마 달팽이는 이 집 욕실 천장으로 이사를 왔던 때의 일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엄마 달팽이는 어린 달팽이들이 늘 안쓰러웠다.

‘번듯한 집을 한 채씩 짊어지고 나왔더라면…….’

엄마 달팽이는 어린 달팽이들에게 세상에서 최고로 아늑한 집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안전한 집에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길 바랐기 때문이다.

마땅한 집을 찾느라 산동네를 돌아다니다 일주일 만에 썩 괜찮은 집을 발견했다. 그곳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아랫집이었다. 엄마 달팽이는 작은 화단 가장자리에 있는 바위 밑에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남부럽지 않을 만큼 좋은 집이었다.

“아, 이젠 걱정 없다!”

엄마 달팽이는 생각할수록 흐뭇했다. 그 집에는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화단 한쪽에 채소를 정성껏 가꾸었다. 상추, 쑥갓, 호박 이파리까지 초록색 이파리가 너울거렸다. 달팽이들은 먹을거리가 풍성해서 더없이 좋았다. 어린 달팽이들은 연한 상추 잎을 맛있게 갉아먹으며 꼼지락 꼼지락 자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며칠 뒤 괴물 같은 포크레인이 쳐들어왔다. 포크레인은 순식간에 낡은 집을 허물어 버렸다. 달팽이들이 사는 화단까지 인정사정없이 파헤쳐졌다.

“엄마, 무서워요!”

“흑흑, 우린 어떡해요?”

간신히 몸을 피한 어린 달팽이들이 겁에 질려 울어댔다. 엄마 달팽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산동네에 남아 있는 집이라곤 보미네 집 딱 한 채 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곧 겨울이다. 다른 달팽이들처럼 돌멩이 밑이나 마른 나뭇잎에 기대어 살 수도 없다. 더구나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하수구 근처에 몸을 부릴 수도 없었다.

“얘들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어린 달팽이들은 엄마의 따뜻한 말에 울음을 뚝 그쳤다. 엄마 달팽이는 그렇게 어린 달팽이들을 데리고 보미네 집으로 이사를 왔다. 추운 겨울을 대비해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낡은 보미네 집은 흙벽에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달팽이들이 머리만 들이밀면 어디든지 통과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특히 엄마 달팽이의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욕실이었다.

“바로 이곳이야. 사람들 눈에 띠지도 않고 좋겠어.”

달팽이들은 보미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에 살금살금 벽을 타고 욕실 천장 안으로 기어올랐다. 엄마 달팽이가 긴 더듬이를 세우며 어린 달팽이들을 둘러보았다.

‘무사히 다 올라왔구나.’

엄마 달팽이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어린 달팽이들은 따뜻한 욕실 천장에서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보미네 식구들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따뜻한 습기가 천정까지 스며들었다. 달팽이들은 기분이 참 좋았다. 몸이 촉촉해지고 탄력까지 생겼다. 특히 보미가 쓰는 비누는 꽃향기가 났다. 어느 땐 과일향처럼 달콤하기도 했다. 달팽이들은 그렇게 매일매일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긴 겨울잠을 자지 않아도 되었다. 기와지붕에 쌓인 흙먼지를 먹고 사는 것도 좋았다. 다만 똥이 검은색이라 약간 못마땅하긴 했다. 특히 천장 가장자리에 난 허술한 구멍은 어린 달팽이들의 호기심을 한층 부추겼다. 그래서 보미네 식구들이 잠들고 나면 달팽이들은 욕실로 기어 나와서 즐겁게 놀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미 엄마한테 들키고 말았다.

“이건 달팽이 똥이잖아?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욕실 청소를 하던 보미 엄마가 하얀 타일 벽에 붙어 있는 달팽이의 검은 똥을 발견한 것이다. 보미 엄마는 한참 동안 욕실 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엄마 달팽이는 순간 긴장을 했다. 어린 달팽이들은 그것도 모르고 키득거리며 장난을 했다.

“쉿! 조용히 해.”

엄마 달팽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린 달팽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때 막내 달팽이가 보미 엄마의 얼굴을 보려고 자꾸만 꿈틀거렸다.

“안 돼, 가만히 있어!”

엄마 달팽이가 막내 달팽이의 등을 살짝 눌렀다. 다행히 보미 엄마가 천장 안에 숨어 있던 어린 달팽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보미 엄마가 욕실 밖으로 나갔다.

“후유, 들키는 줄 알고 혼났네.”

데일리스포츠한국 11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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