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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이별의 눈물 머금고, 탐라 뱃길 길잡이[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64>제주도 산지등대
  • 박상건 기자 pass386@daum.net
  • 승인 2019.11.2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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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제주공항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인 제주시 사라봉동길 108-1에 산지등대가 있다. 등대가 있는 제주시 건입동은 본래 어업과 농업을 주산업이던 마을이었다. 그러다가 제주 관문인 제주항이 개발되면서 상업 중심 관광마을로 바뀌었고 9개 행정관서, 3개 경찰관서, 4개 교육기관 등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이 들어섰다.

이 일대는 제주외항 중심지로서 해양공원이 들어서고 국제자유도시화와 맞물려 제주도를 이끌어갈 중추도신으로 부상했고 산지등대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졌다.

해녀촌과 도두항 가는 길

건입동 지형은 동쪽 사라봉(紗羅峯)과 북쪽의 바다, 그리고 제주시를 관통하는 산지천이 흐른다. 사라봉은 148.2m 높이로 나지막한 오름으로 시민공원으로 각광받고 제주의 영주(瀛州) 10경 중 하나인 사봉낙조(紗峯落照)로 유명하다.

사라봉은 건입동 387-1번지 일대다. 봉우리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웅장한 한라산이 이어 달린다. 아랫녘으로는 제주시가 한눈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특히 저녁 무렵 붉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는 낙조풍경은 감동적인 장관이다. 이게 예로부터 전해오는 사봉낙조 장면이다.

예로부터 바닷가에 거주하던 이곳 사람들의 생업 방식을 보여주는 민요가 있는데 섬사람의 일상이 그대로 묻어나는 ‘해녀노래’로 마라도 일대서 불리던 ‘이어도’ 노래와 흡사한 가락이다.

“이여도싸나 허어 이여도싸나 허어/이여도싸나 히 져라백여/요네를젓엉 으 어디로가리 히/진도바당 흐 골로나가자 히/이여도싸나 하아 이여도싸나 하아 /이여도싸나 흐으 이여도싸나 히”

또, 산지천 유래를 더듬어보게 하는 산짓물을 소재의 ‘방아노래’라는 제목으로 민요도 있다. “물이랑 지커겅 산짓물 지라/낭이랑 지커겅 돔박낭 지라/밧이랑 사커겅 의염을 보라/논이랑 사커겅 두둑을 보라/집이랑 사커겅 우잣을 보라”

제주항 노을

물이 풍부했던 산지천을 노래했는데 ‘지커겅’은 ‘없거든’ 뜻이다. 물 없으면 산짓물 먹고 나무 없거든 동백나무를 지라는 것이다. 즉 산짓물과 동백나무는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다.

사라봉 숲길을 지나면 망양정 동북쪽에 제주도 기념물 봉수대가 잘 보존돼 여행자를 맞는다. 해안가 길로 접어들면 산지등대가 있다. 우리나라 아름다운 등대 16경 중 한 곳이다. ‘산지’라는 명칭은 1702년 조선 숙종 때 제주목사 이형상이 순력 중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제작토록 한 ‘탐라순력도’에 의하면 산지촌(山地村)으로 등장한다.

또 ‘제주도 통권 42호 1969년’이라는 문헌에는 처음에는 산저(山低)였던 것이 나중에 산지(山地) 로 되었다고 전한다. 즉 한라산에서 발원한 산지천 상류의 가락쿳물(오현단 동쪽)이 건입포를 지나 바다로 흘러들었기 때문에 산저(山底)라고 했다가 산지로 바뀌었다는 설이다. 한라산 줄기인 사라봉이 북으로 뻗어 내려오다 해안가에 이르러 다시 높이 솟아서 산지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도두봉

산지 일대에는 괭이갈매기, 재갈매기, 쇠백로, 왜가리, 흑로, 해오라기, 물총새, 백할미새, 바다직바구리, 황조롱이, 직박구리, 멧비둘기, 제주휘파람새, 박새, 동박새, 방울새 등 다양한 새와 후박나무 먼나무 까마귀쪽나무, 팽나무, 멀구슬나무, 구실잣밤나무, 왕벚나무, 동백나무, 돈나무, 텅머위, 수선화, 도깨미고비 등이 서식한다.

산지등대 아래가 바로 제주국제항이다. 산지등대는 제주도 북부해안을 드나다는 국내외 대형 여객선과 화물선의 좌표 역할을 한다. 제주도 황금어장을 찾는 수많은 어선들의 등불이기도 하다. 지형적 특성 탓에 오래 전부터 산지등대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만큼 산지등대는 유서가 깊은 등대다.

일본은 한반도 진출과 청일전쟁, 러일전쟁 교두보로 우리나라 해안 전략요충지마다 등대를 만들었다. 2차 대전 때 미국에 패하면서 우리나라 등대 80%가 파괴됐다. 1948년 5월에 조선해안경비대가 해안에 남은 등대를 파악한 결과 당시 18개 유인등대만이 운영 중이었는데 제주도에서는 산지등대가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산지등대와 제주항 항해하는 선박

등대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탐라의 관문인 제주항 뱃길을 비추고 있다. 어느 등대가 그렇듯 해안 절벽에서 우뚝 서서 드넓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조망 포인트이기도 하다. 18m에 이르는 백색 원형의 콘크리트 구조의 등대사무실 옥상에 오르면 아스라한 수평선이 한 폭의 수채화로 펼쳐진다.

아기자기한 해안선도 일품이다. 등대 옥상에 망원경이 설치돼 있어 먼 바다 섬까지 볼 수 있다. 산지등대로부터 45km 해상에 어장의 보고로 제주와 전남 완도군 해역에 있는 장수도(사수도)가 있다. 그리고 50km 해상에 추자군도가 펼쳐지고 61km 해상에 완도 여서도, 78km 해상에 완도 청산도, 89km 해상에 여수시 거문도가 있다.

산지등대 불빛은 15초에 한 번씩 반짝이면서 이렇게 48km까지 훤하게 비춰준다. 거문도 등대가 42km 떨어진 부산 오륙도, 영도, 일본 대마도 앞바다까지 비추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산지등대 불빛은 전남 완도 앞 다도해 섬과 어민들의 뱃길까지 비춰주는 아름다운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방파제 등대가는 길

산지등대는 1916년 10월 무인등대로 처음 불을 밝혔다. 유인등대가 된 것은 1917년 3월. 그리고 1999년 12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등탑을 만들었다. 2002년 12월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고광력 회전식 대형등명기는 매우 높은 빛 에너지를 발산해 선명한 불빛을 내보낸다. 산지등대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사실 제주사람들에게는 ‘봉’이라는 이름은 ‘오름’이라는 말보다 낯설다. 그런 제주 사람들에게 등대가 세워진 사라봉은 각별하다. 한라산을 제외하고 대개 오름인데 등대를 받치고 선 사라봉은 사라봉공원으로 부르며 일상에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산지등대는 제주도민이든 제주항을 드나드는 마도로스나 국내외 여행자이든 또 다른 상징으로 추억되고 쉼터가 되면서 이곳을 찾는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산지등대는 항해하는 선박과 여행객들의 만남과 이별을 이루어지는 제주항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길에 제일 먼저 청사초롱처럼 비추는 하얀 등대다. 등대는 그런 기쁨과 슬픔의 파도와 포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헌신하며 늘 그 자리에 등불이 되어 준다.

도두 해녀집

산지등대는 마치 고향집 흑백 사진첩처럼 이끼 푸른 돌담과 야상화가 어우러져 역사와 전통의 아름다운 현장을 재현해준다. 등대에는 3명이 근무하면서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불철주야 수고하고, 한편으로는 청소년 체험학습 프로그램과 일반인 개방숙소를 운영하면서 1시간 단위로 해상날씨를 체크해 기상청에 통보하고 있기도 하다.

유람선 해녀공연

등대 아래 해안 길은 산책코스로 제격이고 도두동에 해녀마을이 있으며 물질 장면을 볼 수 있다. 해녀들이 직접 운영하는 맛집 거리도 형성돼 있고 유람선을 타고 제주 앞바다를 돌아볼 수 있다. 노을 바다에서 유람선 바비큐 파티와 시낭송 그리고 해녀공연을 즐기고 제주바다 야경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던 섬사랑시인학교 제주 선상캠프를 잊을 수가 없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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