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영화 ‘조커’가 소환한 지구촌의 양극화 분노

<김주언 칼럼> 영화 ‘조커’가 소환한 지구촌의 양극화 분노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11.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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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도시 고담은 범죄의 소굴이다.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아가는 광대 아서 플렉은 웃음을 참지 못하는 망상장애에 시달린다. 투약은 의료복지예산 삭감으로 중단되고 만다. 한밤중 지하철에서 여피족 청년들에게 폭행을 당한 아서는 실수로 그들을 살해한다. 그를 희화화하기 위한 TV쇼에 출연해 생방송 도중 진행자에게 권총을 쏜다. 광대가면을 쓴 채 폭동을 일으킨 군중의 환호 속에서 조커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 ‘조커’가 그린 ‘반 영웅’ 조커의 탄생과정이다. 국내에서만 500만명이상이 관람했다.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후광만은 아니다.
영화는 조커가 소득불평등이라는 구조적 폭력에 의해 탄생한 것으로 그린다. 훗날 배트맨으로 등장하는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는 가문의 부에 힘입어 정계에 진출한다. 아서가 살해한 청년들도 웨인가문이 경영하는 회사 소속이다. 코미디언을 꿈꾸며 살아가는 광대에게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폭력일 뿐이었다. 가진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희롱과 통치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이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뒹굴고 복지예산은 삭감된다. 가진 자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치에 나선다. 그래서 구조적 폭력이 불법적 폭력을 가져올 뿐이라고 역설한다. 
영화 ‘조커’의 배경은 미국 뉴욕으로 보인다. 월가점령 시위 이후 무장봉기가 거론되고 총기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미국사회를 정면으로 거론한다. ‘1% : 99%’라는 사회적 불평등이 99%의 분노와 폭동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영화가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범죄를 미화하는,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극장들은 광대가면을 쓴 관객의 입장을 불허했다. 영화 속 주인공에 자신을 투영하는 모방범죄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제작사는 괴물의 탄생에 관한 영화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만연한 불평등과 기득권 정치에 분노한 시민의 봉기는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니다. 지구촌 전역에서 시위가 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시아 중동 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  시위대가 도심을 메우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는 영화 ‘조커’의 광대가면(조커 페이스)을 쓴 시민이 다수 등장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로 유명해진 시위대 단골가면 ‘가이 포크스’의 다른 버전이다. 아무튼 영화의 도발적 힘은 많은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직된 정치시스템에 대한 저항의 형태로 자리잡은 것이다. 
홍콩에서는 광대가면을 쓰고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당국이 복면시위를 금지한 이후 이에 분노한 시위대가 반격에 나선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는 고담시와 홍콩을, 고담시장 후보로 나선 토마스 웨인과 홍콩의 캐리 람 장관을 등치시키기도 한다. 영화속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을 홍콩경찰의 진압과 비교하는 글도 잇따른다. 고담시 시위대를 ‘순교자’로 치켜세우거나 심지어 조커를 ‘저항의 상징’으로 치켜세우는 글도 등장했다. 반면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고담시와 홍콩의 시위대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의 양상과 내용은 다르다. 하지만 밑바닥엔 양극화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체제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깔렸다. 시위를 촉발한 계기는 다양하지만 중산층 붕괴와 민주주의 억압, 변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연료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인터넷과 SNS에 힘입어 정보의 위계질서가 재편된 데다 지도부 없이 불특정 다수의 대규모 시위가 가능해진 것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하향식 정치시스템이 무너지고 참여민주주의 요구가 확산되는 사회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칠레에서는 지하철요금 인상이 촉발한 시위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와 치솟는 물가에 분노한 시민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칠레는 APEC정상회의마저 취소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수도권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가 철회했다. 이어 대규모 개각을 단행했지만 폭발한 민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피녜라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그는 이전 정부의 복지정책을 비난하며 긴축과 민영화를 추진했다.
칠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소득불평등 1~2위를 오가는 나라이다. 상위 1%가 자산의 25%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케이크가 잘못 잘렸다”며 “돈 있는 사람만 잘산다”고 분노한다. 갑부출신 대통령의 부인이 “우리 특권을 줄이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밖에 없겠다”는 통화내용도 들통이 났다. 칠레는 ‘신자유주의 실험실’로 구리광산 민영화를 비롯하여 전기 가스 수도 등 공공서비스를 경쟁과 효율의 이름으로 시장에 내맡겼다. 이제 시위대는 “칠레는 깨어났다!”며 정권퇴진을 부르짖는다.
이라크 주요도시에서는 부패청산과 민생고 해결을 요구하는 반정부 격렬 시위와 강경 진압이 두 달째 계속되고 있다. 벌써 사망자만 300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야간통금을 단행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의사 변호사 등이 시위와 파업에 동참했다. 이들은 도시와 항구로 통하는 주요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시위대는 총리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심교통을 마비시켰다. 시위대는 높은 실업률과 열악한 공공서비스를 비판하고 정치개혁을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의 거짓개혁 약속으로 사태가 악화했다”며 시민불복종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조커는 우리다.” 레바논에서는 정부의 메신저앱 ‘왓츠’ 과금조치로 촉발된 반정부시위가 한달이상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민생고 해결과 부패청산, 정치개혁을 요구한다. 학교와 은행은 1주일이상 문을 닫았다. 수만명의 시민이 국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170km의 인간띠를 만들어 연대의지를 다졌다. 반정부 구호가 담긴 포스터와 SNS에는 조커의 모습이 등장한다. 거리예술가가 화염병을 들고 있는 조커의 이미지를 차용해 만든 그래피티가 시발점이었다. 이들은 극심한 불평등과 가난, 부패로 고통받는 자신들의 모습을 조커에게 투영한다.
지난 3월 범죄인 송환반대 시위로 시작된 홍콩시위는 이제 ‘반중국 민주화 시위’로 번지면서 7개월째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스페인은 카탈루냐 분리독립 시위, 영국은 브렉시트 찬반시위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생태계 위기에 대한 각국 정부와 기업의 적극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진다. 연료세 인상, 송환법 추진, 지하철요금 인상 등 온건한 정책들이 사회적 분노를 촉발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국내에서도 매주 토요일 서울 여의도 서초동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이어진다. 이른바 ‘조국사태’가 불러온 갈등의 표출이다. 검찰과 언론 등 권력기관의 개혁을 요구한다. 일부 학생들은 사회의 불공정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근저에는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의 이중성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불평등과 불공정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한계에 달했음을 말해준다. ‘수저론’이나 ‘N포세대’ 등 청년들이 겪는 좌절의 언어들은 이를 잘 말해준다.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폐해일 것이다.    
조커는 권력을 향한 경고 메시지이다. 영화에는 불평등과 부조리에 폭발한 젊은이들이 광대가면을 쓰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폭동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온다. 특권층을 향해 총구를 겨누기도 한다. 세계 각국이 안고 있는 심각한 빈부격차는 시위자들을 조커로 만들어가고 있다. ‘연약하고 버려진’ 사이코패스 조커는 급기야 ‘증오의 화신’이 된다. 세계 각국의 시위대들이 자신을 조커와 동일시하는 이유를 정치 엘리트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조커들의 분노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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