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51> 최도선, ‘꼬리연’

[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51> 최도선, ‘꼬리연’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11.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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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지상에서 무슨 완전한 것을 보았느냐

내가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나갈 때

아침나절, 우악스런 남자가 남녀 두 아이의 멱살을

잡아끌고 들어와 내 앞에 확 풀어 놓는다

(중략)

꼬리연, 너 이 지상에서 무슨 완전한 것을 보았느냐

얇은 종이에 긴 꼬리를 달아 너를 떠나보내며 소원을 빌지만

아이들 이빨에 밴 니코틴 사이로 비웃음만 새어나올 뿐

가출한 엄마의 속옷을 입고 있는 여아와

매일 술에 취해 모두를 때려 부수는 아빠를 아빠라 부를 수 있는지 묻는

파르르 떠는 눈썹 짙은 아이를 바라만 본 나는

저 육체의 쾌락과 탕진을 소멸해줄 어떤 영혼이 내게 달라 붙어줄지

창백한 하늘만 바라보았다

내 안에 자리한 울음주머니를 떼어내려다 말고

꼬리를 흔들며 날아가는 꼬리연을 힘주어 보고만 있다

- 최도선, '꼬리연' 중에서

올해 <시와문화> 작품상에 선정된 시다. 시인이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던 어느 날 “우악스런 남자가” 남녀 두 아이의 멱살을 잡아끌고 학교로 왔다. “학교에서 이런 비행 청소년을 단속하지 않고 뭣 하느냐?”는 식이다.

시인은 “꼬리연, 너 이 지상에서 무슨 완전한 것을 보았느냐?”고 반문한다. 아이들을 바라보노라니 “가출한 엄마의 속옷을 입고”, “매일 술에 취해 모두를 때려 부수는 아빠를 아빠라 부를 수 있는지 묻는”, 그 눈빛들이다.

시인의 모성애는 이 풍진세상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아이들 속내를 다 읽어낸다. “내 안에 자리한 울음주머니를 떼어내려다 말고/꼬리를 흔들며 날아가는 꼬리연을 힘주어 보고만 있다”

밝음과 그늘이 공존한 세상에서 상생하지 못한 문화는 양극화를 도지게 한다. 극단적 신념과 갈등은 불신과 분열의 세상을 만든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그래서 ‘문화’를 ‘성취해가는 과정’, ‘정신의 밭을 가는 일’로 비유했고 사회학자 뒤르껭은 사회적 유대와 연대성의 뿌리를 문화의 작동여부로 보았다.

아이들은 사회적 소속감과 연대감 속에서 향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광장을 제공해야 한다. 청소년 비행은 소외영역을 치유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생기는 사회적 생채기이다. 이를 사회병리현상이고 부른다. 치유의 몫은 어른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듬어야 할 책무가 있다. 시인 워즈워드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민족의 생명력은 이런 문화가 온전히 작동할 때 형성된다. 처칠은 힘을 동반하지 않는 민족의 문화는 내일 당장 사멸한다고 했다. 어린이는 민족의 희망이다. 함께 가는 길이 아름다운 길이다.

최도선 시인은 춘천에서 출생,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지내다가 은퇴 후 지금은 손주 녀석들 보는 재미로 산다. 시집으로 ‘겨울기억’, ‘서른아홉 나연 씨’, 비평집 ‘숨김과 관능의 미학’이 있다.

글: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가을동화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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