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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쿠데타의 추억’, 그리고 황교안과 윤석열
  • 김주언 newmedia54@hanmail.net
  • 승인 2019.10.3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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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광화문 네거리에 탱크가 늘어서 공포분위기를 자아낸다. 용산역 신촌 대학로 서울대 여의도는 장갑차에 둘러싸여 있다. 서울로 들어오는 톨게이트와 성수대교 등 한강다리 10개, 강변북로 등 주요도로는 총을 든 군인들에 의해 통제된다. 광화문 일대를 뒤덮었던 촛불은 무자비하게 진압된다. 계엄령이 발동되면서 통행금지가 실시되고 언론은 사전검열을 받아야 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페이스북등 SNS는 차단되고 유튜브 계정도 폐쇄된다. 일부 야당의원들이 현행범으로 검거돼 국회는 무력화된다. 2년 전 3월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옛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문건의 계획대로 시행됐을 경우를 상정한 상황이다. 군 인권센터가 공개한 ‘현 시국관련 대비계획’에 나타난 내용이다. 2017년 2월 작성됐다. 지난해 공개된 문건의 원본으로 좀 더 구체적 내용이 담겼다. 군사 2급비밀문서와 참고자료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기밀문서는 아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비밀관리기록부에 등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성자가 외부에 공개되기를 꺼려해서 임의로 비밀문서로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건공개를 군사기밀 누설로 보기는 어렵다.

문건은 계엄준비 착수일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 이틀 전으로 명시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던 일부 시위대가 공공연히 계엄선포를 부르짖고 있던 때였다. 자칫 탄핵기각으로 시위가 격렬해져 계엄령이 발동됐더라면 현대사의 씻을 수 없는 비극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다. 어쩌면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반세기 이전으로 후퇴했을 지도 모른다. 무력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쿠데타의 추억’은 아직도 일부 정치군인들의 머릿 속에 맴도는 것 같다.

문건에 나타난 계획을 보면 경악할만하다. 기무사는 우선 국회 무력화를 노렸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대통령에게 계엄해제를 요구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헌법 77조는 대통령은 국회의 요구대로 계엄을 해제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기무사는 당시 국회상황을 ‘진보성향 의원 160여명, 보수성향 130여명’으로 분석하며 “여소야대 정국으로 의결정족수 충족, 계엄해제 가능”이라고 적시했다. 기무사는 집회시위 등에 참여하는 의원을 검거하여 현행범으로 사법처리해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는 언론통제방안도 담겼다. 보도검열단을 구성해 보도창구를 단일화해 사전검열을 실시한다. 특히 보도지침을 통해 ‘계엄에 유해’하거나 ‘공공질서를 위협’하고 ‘군 사기를 저하’하는 내용은 보도를 금지하도록 한다. 반면 ‘정부와 군 발표, 시위대 사기저하 내용’은 확대 보도하도록 한다. 특히 보수언론을 대상으로 ‘정부입장을 홍보하고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하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특히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SNS 접속을 차단하고 유튜브 계정을 폐쇄한다. 전자우편과 전화, 공연대본도 사전검열을 통해 통제한다.

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장악계획도 나와 있다. 군 장교 48명을 24개 부처에 2명씩 파견하여 ‘정부부처 지휘감독 및 업무협조를 위해 운용’한다. 계엄사 통제에 불응할 때는 정부부처와 공무원을 제재한다. 특히 합동수사본부를 만들어 국정원과 경찰을 효율적으로 통제한다는 문구도 들어 있다. 국정원이 “국정원법 규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 지시에 불응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을 통해 지휘 조정토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계엄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토록 한 것이다.

사법부 장악 계획도 치밀하다. ‘계엄사령관이 특별히 지시한 사건 또는 계엄군사법원 관할 사건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일반법원에 위임하지 아니하고 계엄군사법원에서 재판’한다고 강조한다. 계엄사령관이 원한다면 사법부를 거치지 않고 군사법원에서 재판이 가능하도록 한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지시한 사건’의 기준은 나와 있지 않다. 1심과 2심 군사법원에서 마음대로 구속해 3심을 받지 못하게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외교를 통한 외국의 계엄인정 계획도 들어 있다. 미국은 “한반도 전쟁발발 가능성 고조 등 긴장완화를 위해 계엄에 대한 반대입장 표명가능”이라고 진단한다. 러시아 중국 일본도 계엄반대 의사를 표출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계엄령 선포 전에 각국 대사를 국방부장관 공관으로 초대해 계엄의 당위성과 불가피함을 설명할 계획을 담았다. 특히 외국인과 기업에게 재산권 및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보장한다는 포고문을 적어 두기도 했다. 외신기자들에게는 ‘공정한’ 보도를 위한 보도자료를 배포하겠다는 말도 들어 있다.

문건에는 계엄선포의 필요성에 대한 기술도 있다. ‘NSC를 중심으로 군 개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라는 문구이다. 이전 문건에는 없었다. 당시 NSC의장은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었다. 황 대행은 세 차례 NSC에 참석했다. 군 인권센터 임태훈소장은 황대행이 문건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계엄의 ‘계’자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황대표 지지모임인 황사모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혐의로 임 소장을 고발했다.

지난해 계엄문건이 공개된 이후 서울중앙지검은 군 검찰과 함께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11월7일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민군합동수사단은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소재불명을 이유로 수사를 중단했다. 조 전 사령관을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기소중지했을 뿐이다. 조 전사령관은 미국으로 도주해 잠적했다. 합수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전 대행은 조사하지 않았다. 군 인권센터는 “검찰수사는 선별적이고 피상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합수단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장이었던 서울중앙지검 소속이었다.

합수단은 불기소 결정서에서 ‘국헌문란’ ‘폭동’ 등의 표현을 사용해 문건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조 전 사령관에게는 내란예비음모죄를 적용하려 했다. 당시 조 사령관은 청와대와 국방부를 오가며 박 대통령, 황 대행,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장관 등과 접촉하거나 접촉한 정황을 남겼다. 합수단은 김관진-한민구는 조사했으나 피의자 박근혜-황교안은 부르지 않은 채 수사를 마쳤다. 결정서에는 조 사령관이 황 대행에게 “계엄문건을 보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기록돼 있다.

군 인권센터는 29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수사가 은폐·축소된 정황이 드러났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책임지고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복수의 제보자들에 따르면 여러 참고인들이 계엄령 논의가 진척중이었는데도 검찰이 수사를 기피하고 피의자들에게 불기소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임 소장은 또한 황 대표의 “계엄문건을 몰랐다”는 주장도 일침을 날렸다. “몰랐다면 본인이 무능하다는 게 드러나는 것이고 알았다면 내란예비음모죄에 해당한다.” 그는 “법적 조치를 해준다면 늘 환영하다”고도 밝혔다. 재수사가 필요한 이유들이다.

아직도 한국사회에는 군을 동원해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군사반란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지난 30여년에 걸친 군사독재정권의 상흔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쿠데타 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우도 많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죄로 처벌했지만, 아직도 일부 정치인들과 군인들에게는 ‘쿠데타 DNA’가 남아 있는 것 같아 두렵기조차 하다. 차제에 국방부와 검찰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쿠데타 DNA를 없애는 것만이 국민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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