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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 수채화 섬에서 해녀와 등대지기를 만나다[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60) 전남 신안군 홍도
  • 박상건 기자 pass386@daum.net
  • 승인 2019.10.2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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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홍도로 가는 목포행 기차를 탔다. 기차는 버거운 여정만큼, 허공에 긴 기적소리를 몰아쉬었다. 한동안 투덜투덜 뒤척이던 기차는 아무 일 없는 듯 내달렸다. 그렇게 달리는 동안, 철길마다 수없이 신열의 땀방울을 흘렸을 터. 길마다 흥건히 적시면서 때로는 직선, 때로는 곡선으로, 오르막과 산모롱이를 타고 돌아서면서 목적지를 향했다.

홍도 카페리

여행은 길 위에서 삶을 반추하는 일이다. 여객선터미널에서 아침 배를 탔다. 여객선은 아직 잠이 덜 깬 여행자들을 싣고 물살을 힘차게 감아 돌렸다. 목포에서 116km 거리에 있는 홍도는 쾌속선으로 2시간 20분 걸린다.

홍도는 기암괴석의 천국이다. 붉은 노을이 아름다워 홍도라 부른다. 물 위에 뜬 매화꽃 같다해 매가도라고도 불렀다. 바다를 기다리는 바위섬이라 하여 대풍금으로도 불렀다. 울릉도에도 대풍감이 있다. 향나무 자생지로 천연기념물 해안인데 울릉도 등대아래서 돛단배가 항해를 위해 바람이 기다렸다고 해서 그리 부른다.

홍도동백길

홍도 면적 6.47㎢, 해안선 길이가 36.8㎞이다. 해안은 경사가 급하고 기암괴석으로 이뤄졌다. 홍도 경관은 원시림에 가깝다. 바다는 바람이 없는 날에는 깊이 10m 이상의 물속을 훤히 볼 수 있을 만큼 맑다. 쪽빛바다는 어족자원이 풍부해 전국의 강태공이 몰린다.

홍도는 물이 귀하다. 그래서 농사짓기가 힘들다. 배추는 금치로 통한다. 배추를 사기위해 목포를 오간다. 마을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15일간 중국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먼 바다에 나가 홍어를 잡고 보름 동안은 바닷가에서 그물을 다듬는다. 홍어를 잡지 않는 사람들은 주낙으로 고기를 잡는다. 그래서 마을 골목에는 주낙 낚시채비들이 늘어서 있다. 주낙으로는 농어, 감성돔, 참돔, 우럭, 줄돔, 방어 등을 잡는다.

홍도등대

홍도에 주민등록상 거주한 인구는 1구는 437명, 2구는 107명이다. 홍도등대와 홍도 2구로 이어지는 깃대봉은 270여 종의 상록수와 170여종의 동물의 서식처이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임으로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뭍으로 가져올 수 섬이 홍도이다.

여객선이 도착한 선착장은 홍도1구인데 늘 사람들로 붐빈다. 선착장을 빠져나와 깃대봉을 한 시간여 동안 타오르면 홍도 2구가 나온다. 일반적으로는 배를 타고 돌아가는 마을이다. 그 마을을 지나면 홍도등대가 있다. 나는 30년 전 ‘등대지기’ 노래가사처럼 살아가는 등대소장과 만나 등대와 인연을 맺었다. 그날 폭풍주의보가 내려 일주일 동안 등대에서 지냈던 일을 잊을 수 없다.

홍도2구는 ‘석기미’라고 불렀다. 홍도에서 제일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곳의 끝 부분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1908년 ‘한국수산지’에 따르면 “섬 북동쪽에는 구미가 하나 있어 어선이 피박할 수 있으나 북풍 내지 동풍은 피하기 어렵다, 구미 부군에는 암초가 많다”고 기록하고 있다.

홍도해녀 목선

홍도2구는 고요한 해녀마을이다. 물질 장면을 체험할 수 있다. 물질은 보통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에게 자연스럽게 배운다. 어릴 적 헤엄치는 연습을 하고 5~6학년쯤에 어머니에게 두렁 박을 받아 얕은 데서 깊은 데로 헤엄치는 연습을 한다.

빨리 배운 사람은 중학생 때 물질 작업을 하는데 40세 전후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다. 해녀들이 물속에 들어가 작업하는 시간은 3분가량. 주로 해삼, 멍게, 성게, 전복, 소라, 미역, 청각 등을 채취한다. 채취한 해산물은 관광객들에게 팔기도 하고 예약을 받아 전국 각지로 보낸다.

데일리스포츠한국 2019년 10월 29일자

나는 해녀 물질에 동행했다. 해녀들은 마치 고깃배에서 주낙이 풀려나가듯이 배에서 뛰어 내렸다. 뛰어 내리는 거리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두 사람씩 일정한 구역에서 채취 작업을 한다. 여기저기서 휘이~ 휘이∼숨비소리가 들렸다. 작업하는 동안 선박은 현장을 포물선을 그리며 돈다. 외부 선박의 접근을 막아 안전한 작업을 돕기 위해서다.

해녀들은 이런 식으로 4∼5시간씩 작업한다. 작업 후 해산물을 담은 망사리를 뱃전에 올려주면 청년회 사람들이 끌어올린다. 1인당 잡아 올린 무게는 자그마치 20kg 정도. 이 정도면 20만원 벌이를 넘는단다. 이 마을에 민박하면 물질과 낚시, 텃밭체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홍도1구에서 등대가는 길

마을에서 오른 쪽으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700m 거리에 등대가 있다. 홍도등대는 해수면으로부터 89m 고지대에 있다. 1931년 석유백열등으로 첫 불을 밝혔다. 일제 때 마을 주민들의 노동력으로 지었다. 일제 때 홍도사람들이 만든 등대지만 그 당시 주민들 접근이 금지됐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그들은 야간도주했다. 등대원들은 남은 식량을 주민들에게 배급했고 한동안 주민들이 등대를 운영했다.

홍도등대는 2005년 6월 9일에 사무동과 기계실을 새로 지었다. 2층에 안개가 낄 때 울려주는 무적이 있다. 전통적인 에어폰 나발이다. 툭 트인 앞 바다는 두여, 긴여, 탑여, 높은 여, 독립문 바위, 아랫녀 등 암초들이 눈에 들어선다. 등대는 홍도 10경 중 하나다.

홍도등대 앞 바다

해안으로 등대로 가는 길은 비탈길이다. 당시 보급선이 해안가에 쌀자루와 연료 등 보급품을 내려놓으면 등대원들은 이를 짊어지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등대로 올랐었다. 그 언덕길에는 토끼풀, 쑥부쟁이, 강아지풀이 찰랑이며 동행한다.

홍도해변

마지막 날 유람선을 타고 홍도일주를 했다. 코함바위, 독립문바위, 부부탑, 만물상, 거북바위, 빠돌해수욕장, 주전자바위, 원숭이바위, 삼돛대바위, 제비바위, 무지개바위, 탕건바위, 도승바위, 공작새바위, 슬픈 여바위 등... 섬 일주하는 내내 이름만큼 신비한 자태에 감탄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강태공들은 낚시에 여념이 없다. 놀래미, 우럭, 농어, 감성돔이 많이 잡힌다. 해안에는 돌김, 톳, 미역 등이 많았다.

홍도초등학교 앞 단옷섬 일대가 일몰 포인트이다. 섬 전체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왜 이 섬을 ‘홍도’라고 부르는지를 실감했다. 바다를 향해 거꾸로 자라는 소나무며 기암괴석, 바위 사이사이 야생화까지 그리고 마침내 온 바다가 노을로 채색됐다. 노을바다에 어선과 풍랑마저 용광처럼 붉은 햇무리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것은 정말 감동적인 한 폭의 수채화였다. 문의: 동양고속(061-243-2111~4) 남해고속(061-244-9915)

글・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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