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탐욕을 뛰어넘어선 탐욕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탐욕을 뛰어넘어선 탐욕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10.2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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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장로는 “이 말씀을 아첨으로 드리기엔 내가 너무 늙어버렸소만, 허나 대사께서 정히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내 회포하고 있는 말씀 한 마디 드렸으면 싶으구료”라고 말하며 주인공의 손을 온기있게 잡았다. 이어 장로는 그에게 “이 늙은 한 속인의 눈으로도, 대사는 가히 탁월하여서, 대사를 만나본 것만으로도 내 여생에 여한은 없을 것만 같소이다”라고 했다.

이 계제에 이르자 주인공은 그와 장로 사이의 우정이 조금의 그늘도 드리워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양가죽 속에 감춰놓은, 피 묻은 손을 더 이상 감춰놓을 도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장로가 잡은 자신의 손을 빼어내 합장해 보이며, 그의 붉은 손을 고백하려 했다.

그는 이어 “소승이 무엇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모쪼록 소승을 용서하십소서”라고 말하고, 타고 드는 가슴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냥 이마를 조아리고 엎드려 버렸다.

주인공이 보기에 장로는 자신이 존자 스님과 염주 스님을 살해한 것도, 그리고 유리의 오조 촌장이었던 자신의 스승을 압살한 사실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게다가 장로는 그가 그 형벌로 “유리의 마른 늪에서 고기를 낚아 올렸어야 되는 것”도, 또한 “유리의 한 수도녀로 더불어 정분이 두터운 것”까지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어의를 상실해 “그 얼굴에 맑은 빛이 도는 이상스런 늙은이”를 물끄러미 건너다보기만 했다. 한참 후에 장로는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령 대사의 눈이 담고 있는 탐욕 한 가지만을 두고 얘기를 해도, 대사의 스승께서는 그것을 ‘색욕’이라는 말로 늘 표현했습니다만, 그것이 탐욕을 뛰어넘어선 탐욕이어서, 그것을 글쎄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말이외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도대체 탐욕을 뛰어넘은 탐욕의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골똘히 생각해 본다.

장로가 말한 바대로 세상살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뚜렷이 보이는데도 집착을 떠나 있고, 글쎄 번뇌하고 고통하고 있으며 혼신으로 통곡하고 있어 명징한 정신 상태를 일컫는 것일까? 아님, 자신만의 ‘이기적인 슬픔’을 머금은 정신적 각성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나는 “탐욕을 뛰어넘은 탐욕”의 의미가 한 인간이 육신과 정신의 욕망의 한계를 동시에 초극한 상태를 일컫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하간 그것은 자신의 동물적인 욕구를 죽이고 타자 속에 온전히 스밀 때 도달할 수 있는 ‘진실한 아름다움(truthful beauty)’일 것만 같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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