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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그리운 얼굴들>
  • 서성자 기자 newstrue@dailysportshankook.com
  • 승인 2019.10.1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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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그 학교는 섬진강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강둑에는 삼나무가 바람을 막고 있었고 삼나무 아래엔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며 줄지어 서 있었다.

운동장 옆 계단을 내려가면 설탕가루처럼 고운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있었다. 백사장 건너 편 강물에 잠긴 푸르른 산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백사장을 끼고 흐르는 금빛 강물과 맨발로 걸었던 모래밭의 감촉이 지금도 선명하다. 햇빛을 받아 펄떡이던 은어의 기억과 함께.

체육시간이면 그 백사장에서 치르는 달리기, 씨름 응원소리에 강물도 출렁거렸다. 수업이 끝나면 강가에서 몸도 씻고 물장난도 하며 아이들은 개똥밭의 참외처럼 그렇게 단단하게 영글어갔다.

5학년 왕수가 강에서 제멋대로 배운 수영실력으로, 수영교육을 철저히 받은 도시 아이들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온 일은 학교의 경사였다. 왕수는 자기가 하는 수영이 자유형인지 평형이지도 몰랐다고 해서 우리는 배꼽을 움켜쥐기도 했다.

우리 학교를 따를 학교가 없을 정도로 날고 기던 핸드볼 경기 때는 정말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그러나 준우승에 머물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물 흘렸던 기억도 지금은 꿈결처럼 아스무래하다.

직원 수가 적다 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특히 친목회는 모두가 기다리는 날이었다. 어느 해 벚꽃이 흐드러진 날이었다. 강가 벚꽃 나무 밑에서 친목회를 했다.

눈처럼 하얗게 쌓인 꽃잎 위에 빙 둘러앉아, 남선생님들은 막걸리 잔을, 여 선생님들은 음료수 잔을 높이 들고 벚꽃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벚꽃 잎이 잔 안에 떨어진 사람만이 마시기로 한 것이다.

잔을 들고 꽃잎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또 잔에 꽃잎을 받으려고 뛰어다니며 우리들은 어린애 마냥 소리 내어 웃곤 했다.

시골 할아버지 같은 교장 선생님은 마냥 따뜻하기만 했다. 전 임지 교장 선생님이 너무 엄하셨기 때문에 처음엔 얼떨떨하기도 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나를 난로가로 자주 부르시는 그 분의 정은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 주었다. 흰 눈이 온 천지를 덮은 겨울 방학 때였다. 일직을 하기 위해 눈길을 헤치고 출근한 나를 되돌려 버스에 태워 보내신 분이셨다.

“일직은 내가 할게. 누가 뭐라 해도 교장이 책임지면 되”

그처럼 소탈하고 인정 많던 교장 선생님이셨다.

몸이 약해 운동회 무용지도를 하다 기진해 쓰러진 적이 있었다.

양호실에 누워있는 나에게 급사아이를 통해 가만히 사과 한 알을 전해 주시던 선비 같았던 교감 선생님. 운동이라면 만능이셨던 박 선생님. 유난히 머리가 샤프하고 판단력이 뛰어났던 이 선생님. 모든 일에 능력을 인정받고 조수미 뺨치게 노래를 잘 하던 유 선생님. 다른 학교로 떠날 때 전교생과 학부모를 울렸던 최 선생님. 모두 그리운 얼굴들이다.

다시 한 번 그 선생님들과 벚나무 아래서 꽃잎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잔을 높이 들고 싶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 1>

가끔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 생각을 해 본다. 기억나는 아이들 중에서도 특별하게 미안한 아이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지성이다.

모교에서 내가 1학년을 맡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 전해에 유급된 아이들이 있었다. 읽기, 쓰기, 셈하기에 너무 부족한 아이들이 유급 대상이었다.

그 중에 우리 옆집에 사는 초등학교 남자동창의 아들 지성이가 끼어 있었다. 평소에 지성이에 대해서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있던 터라 관심이 갔다.

지성이는 정미소 안에 있는 방에서 살고 있었다. 벼, 보리 등을 찧는 시끄러운 소리와 먼지가 가득한 곳이었다.

고춧가루를 빻으며 나는 매운 냄새는 어른들도 견디기 힘들었다. 고함을 쳐야만 알아들을 시끄러운 곳에서 태어나 자란 지성이가 안쓰러웠다.

데일리스포츠한국 10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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