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9.2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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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를 생각하며> - 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나는 틈나는 대로 반 아이들에게 경희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도와주자고 간절하게 말했다.

착한 소정 이는 짝꿍을 자청해서 경희를 도와주기도 했다. 동 학년 선생님들도 경희를 만날 때마다 안아주며 격려해 주셨다.

그러나 한 편 선생님도 자기편이고 친구들도 모두 자기에게 우호적이라고 생각한 경희 행동에 문제가 생겼다. 제 맘대로 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애를 가슴에 안아주는 것 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내 능력의 한계에 부딪친 힘든 나날들이었다.

경희가 글을 알았더라면 글자를 써서 아쉬운 대로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겠지만 어눌하게 글자는 읽었어도 경희가 쓰는 글자는 연결이 안 되는 단순한 문자에 한정되어 있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경희에게 비를 맞게 하고 카드에 ‘비’라고 써주고, 나비가 날아가면‘나비’라고 써 주며 헬렌 켈러를 가르쳤던 설리번 선생님 방법을 흉내 내 보기도 했다.

입술을 보고 쉽게 발음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쳐 보려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능력도 사랑도 부족한 것만 같은 내 스스로가 안타깝기만 했다.

2학기부터 경희는 하루의 절반을 특수 학급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경희 부모가 학생 수가 많은 일반 학급에서는 공부가 무리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특수교육을 받은 선생님과 몇 명되지 않은 아이들과 공부하게 된 경희는 예전보다 모든 면에서 갈등의 폭이 줄어든 것 같았다. 한시름 놓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경희가 2학년이 되던 해 나는 그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지금은 중학생이 되어있을 경희. 잘 생겼던 녀석이 얼마나 더 멋있게 자랐을지 보고 싶다. 영특한 녀석인지라 반듯하게 잘 자랐을 것을 믿는다. 그림을 잘 그려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와 우리 함께 기뻐했었는데.

가끔 좀 더 잘해줄걸 후회를 하다가도 스스로 위안을 받곤 한다. 내 교직 생활 중 가장 많이 껴안아 주었던 아이가 바로 경희이었기에. 그리고 가장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던 아이도 경희였기에.

나는 믿는다. 비록 잘 듣지는 못해도 그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잘 자라고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도 미안함이 느껴지는 경희다.

<네가, 너였구나!> - 1

새 학기를 시작하고 얼마 후 부모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다. 학생 수가 많다 보니 여러 가지 직업들을 가진 부모님들이 소개되었다. 그 중 아버지가 목사인 한솔이가 있었다. 나도 교회에 다니는 지라 어느 교회인지 물어보았다.

“** 교회요.”

“**교회?”

**교회 목사님은 나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다시 한 번 물었다. 묻다가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솔이 얼굴에 나있는 선명한 흉터. 내 머리가 바쁘게 회전했다.

“동생이름은 뭐지?”

“한결이요.”

그 이름을 듣는 동안 벌써 어느 교회 부 목사님이라던 한솔이의 큰 아버지 생각이 났다.

“네가, 너였구나.”

반가움에 나는 한솔이를 왈칵 껴안았다. 갑자기 껴안긴 한솔은 몸을 빼려다 나중엔 가만히 몸을 맡겼다.

2년 전 이곳 전주로 전근 오기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의 일이었다. 유난히 고왔던 후배 C선생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전 가족이 타고 있던 차를 중앙선을 침범한 차가 들이 받았던 것이다.

C선생 부부는 현장에서 숨졌고 2살, 5살인 두 아들은 중상을 입었던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경찰이 차 문을 열었을 때 어린 한솔이는 엄마가 근무하는 학교와 교회이름을 정확하게 말했다고 한다.

한솔이 부모를 태운 장례차가 교정을 돌아 나갈 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얼마나 통곡을 했던가.

얼마 후 몇 몇 여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입원해 있는 대학병원에 찾아갔을 때 큰 아이는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 기저귀를 찬 어린 동생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시간이 흘러 퇴원하게 되었고 두 아이들은 목사이신 큰 아버지가 잘 기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이런 식으로 주시다니요”

하며 통곡했다는 큰 엄마의 이야기도 들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09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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