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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아베 정권의 ‘반한·개헌’ 개각이 뜻하는 것
  • 김주언 논설주간 newmedia54@hanmail.net
  • 승인 2019.09.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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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단행된 아베 신조 일본총리의 개각은 ‘반한 내각’ 또는 ‘개헌 내각’으로 불린다. 각료 19명중 17명을 대폭 물갈이한 개각 이후 새로 임명된 각료들은 한국에 대해 강경발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아베정권의 경제침략으로 불거진 한일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게다가 아베 총리는 개각 후 기자회견에서 “개헌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이 가능한 ‘정상국가’로 전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동북아 패권국가로 나아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아베 총리는 개각 직후 한국과의 외교에 대해 “새로운 체제 하에서 먼지만큼도 안 바뀐다”고 강조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일한 청구권협정 제2조항은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일체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해도 구제될 수 없으며 국가로서도 구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위반이라는 일본정부의 기존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스가와라 잇슈 경제산업상은 취임후 첫 기자회견에서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문제(강제징용 피해 문제)를 시작으로 한국 문재인정권 쪽에서 부정적 움직임이 잇따라 매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한일관계 악화의 책임을 한국에 돌렸다. 외무상에서 자리를 옮긴 고노 다로 방위상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또는 일본의 수출관리에 대해 다소 감정적이라고 생각되는 반응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에 대한 강경한 자세가 변함이 없거나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집념도 농축돼 있다. ‘개헌 사무라이’로 불리는 측근 강경파들이 당정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개헌논의에 소극적이었던 여당의원들에게 ‘직장 포기’라는 막말을 쏟아냈던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을 선대위원장에 앉힌 게 대표적이다. 아베 총리는 “레이와(令和)시대의 새로운 도전으로 오랜 세월 비원인 헌법개정을 최우선 과제로 강력하게 추진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개헌의 중심은 전쟁과 전력 보유를 금지한 제9조를 고쳐 전쟁가능한 국가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개헌은 아베정권에게는 미국을 대상으로 한 대외전략과 함께 중요한 정책목표다. 일본이 동아시아 패권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중갈등이 야기한 동북아질서 재편기에 일본의 대외목표는 미국방어 라인이 핵심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내장치가 개헌인 셈이다. 개헌에 성공하면 일본은 군사 대국화하여 군사적 팽창주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물론 ‘전쟁 가능한 국가’가 된다고 해서 즉각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를 되찾으려 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일본의 개헌논의는 1950년대에 시작돼 1980년대 본격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일부 지배세력은 미국에 군사력을 의존하는 걸 치욕으로 받아들였다. 제국주의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이들은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는 거세된 존재라고 여겼다. 만주국 설계자인 기시 노부스케는 냉전을 활용한 원대한 포부를 드러냈다. 이른바 ‘미쓰야(三矢, 3개의 화살)계획'이 그것이다. 한반도에 유사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이 한반도에 진입하고, 한국과 타이완을 묶은 '자유주의 3개 화살'이 되어 만주까지 진출한다는 계획이었다.

기시 노부스케의 꿈은 외손자인 아베총리를 통해 면면히 이어졌다. 똑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군사력과 전쟁능력을 갖춘 대일본의 회복이 그것이다. 개헌논의는 그동안 수면으로 가라앉기도 했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민주당 정권이 무너진 암울한 상황에서 출범한 아베 내각은 개헌을 통한 위대한 일본의 부활을 내세웠다. 그러나 일본에서 개헌을 지지하는 세력이 절대 다수는 아니다. 개헌이 전후 보수의 상징이라면, 평화헌법 수호는 진보세력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극우성향은 새 각료 대부분이 일본 극우단체 일본회의와 신도정치연맹 회원이라는 데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베 총리를 포함한 각료 19명 중 18명이 해당된다. 일본회의는 아베 총리의 ‘정신적 지주’로 정책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일본회의는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개헌을 끝내고, 패망 이전의 일본을 복원시킨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다. 강력한 군대를 갖추고 대륙진출을 도모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일본의 핵무장론도 주장한다. 위안부 강제징용 역사교과서 독도 등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일본회의는 1997년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의 통합으로 발족했다.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신도계 단체들이 만들었다. 신도는 ‘일본의 영혼’으로 불리는 종교로 ‘천황 신앙’을 내세워 일제 때 전쟁 선동과 선전에 앞장섰다. 일제말 가미카제 특공대처럼 무모한 모험에 나선 것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맥아더는 군정당시 학교에서의 신도교육 및 신사참배, 공직자의 신사참배 등을 금지하는 등 정교분리를 꾀했다. 그러나 신도를 영원히 말살하지는 못했다. 이제 신도가 되살아나 정치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1981년 연호 법제화를 이끌어낸 조직들이 모여 탄생했다. 쇼와 등 일본의 연호는 전후 황실규범에서 삭제됐으니 이를 복원하자는 운동이었다. 재계 정계 학계 종교계에 흩어져있던 우파인사들이 한데 모였다. 국민회의는 역사교과서 파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1986년 국민회의가 편찬한 고교교과서 ‘신현일본사’는 일제의 침략과 인권유린을 부정한다. 그들의 표현을 빌면 ‘자학사관’을 넘어서는 것이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은 교과서였다.

아베 총리는 일본회의 창립멤버이다. 일본회의의 기본운동방침에는 황실 존경과 동포애 함양, 신헌법 제정 추진,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지닌 청소년 육성 등이 들어 있다. 이를 보더라도 극우적 이념을 내세운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95%이상이 자민당 의원들로 채워진 국회의원 간담회는 일본회의의 이념과 정책을 현실정치에서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본회의 출범목적이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정한론을 내세운 요시다 쇼인을 사상적 동경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조선은 물론, 만주와 중국까지 정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요시다는 일본군국주의의 사상적 배경을 수립한 인물이다. 개헌이 이뤄지면 일본은 독도와 사할린은 물론 동해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려 들 것이다. 군사적 충돌을 불사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중국과 러시아가 개입할 여지도 크다. 제국주의적 팽창전략은 아니더라도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바꿀 수 있다. 우리가 일본의 개헌 문제에 관심을 쏟는 이유이다.

그러나 대다수 일본인의 주된 관심사는 개헌이나 전쟁이 아니다. 연금 개혁과 경제적 안정이 최우선 과제이다. 일본사회는 지배계급의 선동에 마구잡이로 휩쓸리지도 않는다. 혐한방송이 넘쳐나고 혐한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일각의 현상일 뿐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시민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일본 지배계층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평화를 이끌어내는 힘은 역시 시민의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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