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9.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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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가득 찬 아이들> - 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2주일 내내 집에서 16km 떨어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젖먹이 둘째는 자연히 젖을 떼고 우유를 먹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병문안을 왔다. 열병이라 행여 옮을까봐 가족들에게 병원을 알리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를 했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어디서 알아냈는지 자기들끼리 동전을 모아 차를 타고 왔단다.

“00병원 아직 멀었어요?”

“00병원 얼마나 더 가야해요?”

쉴 새 없이 질문하는 꼬마 손님들을 태운 버스 기사는 직행버스 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 문 앞에까지 와서 차를 정차 시켰다고 한다.

시골에서 온 아이들이 길을 잃을까봐 배려해준 것이다. 그 날 이후 내가 있는 병실은 몰려드는 수십 명의 꼬마 문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다시 오면 안 돼. 집에 가면 꼭 비누로 손 씻어야 해”

마음이 놓이지 않아 신신 당부했건만 아이들은 내 말에 아랑곳없이 오고 또 왔다.

“선생님이 오지 말랬다고? 너희들만 가고 우리는 가지 말라는 거냐?”

하긴 우리 반 아이들이 50 명 정도 되었으니. 나누어서 온다고 해도 방문객은 끊이지 않았다.

“우리 병원 개원 후 한 병실에 이렇게 많은 손님이 오기는 처음입니다. 하하하!”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몸은 아파도 행복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곤 했다.

지금도 몸이 아플 때면 그 때의 꼬마 방문객들이 생각나곤 한다.

<경희를 생각하며> - 1

참 잘 생긴 녀석이었다. 주위가 환해질 정도로. 머리도 좋고 솜씨 또한 뛰어난 녀석이었다.

그림은 또 얼마나 잘 그렸던가? 그러나 그 애에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

듣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듣지를 못하니 말도 못했던 경희.

경희는 입학 후 한 달을 엄마와 함께 학교생활을 했다. 엄마는 경희 옆에 앉아서 담임인 나의 말을 통역해 주곤 했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힘든 나날들이었다. 학부모가 앉아있으니 수업이 자연스레 진행되지 않았다. 반 아이들은 다른 해 보다 더 산만하기만 했다.

경희는 큰 기적소리를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청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경희 부모는 수화를 가르치면 말을 아예 못 할 까봐 말하는 입술을 읽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입 모양만 보고도 가족과는 의사소통이 잘 된다고 했다. 경희 아빠는 퇴근 후 가장 먼저 경희를 찾아 껴안고 뽀뽀를 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 한다고 했다.

입학 후 한 달이 지나자 경희는 엄마 없이 혼자 공부를 하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소리 없는 답답한 세상에서 그 애는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가까운 내 옆자리에 앉혀놓고 신경을 쓴다고 썼지만 경희만 돌 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경희에게도 힘든 순간순간이었겠지만 가끔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꺅’ 괴성을 질러 수업분위기를 망쳐놓곤 했다. 그러다 보면 수업 분위기가 잡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었다.

또한 아이들과 자주 싸우는 경희를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른 학부모들이 경희를 특수학교로 보내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레 의견을 내놓았다. 나 또한 힘든 짐을 내려놓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특수학교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가도 경희 엄마가 흘리는 눈물 앞에선 나 또한 따라 울기를 거듭했다.

경희는 영리한 녀석인지라 담임이 늘 제 편임을 알고 친구들을 마음대로 하려고 했다. 특히나 싸움을 할 경우엔 난감했다.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경희는 제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해했다. 그럴 때면 나도 경회를 따라 가슴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건을 던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한 번은 친구에게 큰 돌을 던지는 일까지 있었다.

만일 아이들이 맞기라도 했더라면, 생각하기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 장면을 보았던 나는 간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밟는 것 같이 조마조마 하기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경희와의 의사소통은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경희는 말하는 사람의 입술을 보고 상황을 이해했다.

내 설명을 듣고 수학문제를 푸는 경희 모습에 옆 반 선생님들은 감탄을 하곤 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09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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