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송진채취 피해목, 역사로 기록한다

일제 때 송진채취 피해목, 역사로 기록한다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09.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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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산림과학원, 피해 소나무 분포지도 완성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소나무에 V자가 깊게 새겨진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런 상흔의 소나무는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무에 상처를 낸 피해목에 해당한다. 이런 소나무가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여태 정확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어 그 규모와 피해 상태를 알 수가 없는 실정이다.

상처를 푸른 잎으로 극족하며 성장한 소나무
상처를 푸른 잎으로 극족하며 성장한 소나무

이에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원장 전범권)은 지난 2017년부터 2년간 문헌조사, 시민 제보,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전국 송진채취 피해 소나무 분포 지도”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전통지식연구팀은 문헌조사로 21곳, 시민들의 제보로 32곳, 전체 43곳의 피해지를 파악하였으며, 이 중 21지역의 나무를 대상으로 피해 상태를 확인했다.

조사 결과, 송진 채취 피해 소나무들은 V자 상흔이 최대 1.2미터 높이까지 남아 있었으며, 지역별로 피해 정도는 남원, 제천, 평창 지역의 소나무들이 가장 넓고 긴 송진 채취 흔적이 나타나 피해 상태가 가장 컸다.

다행인 것은 송진채취 피해목 건강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건강성 조사 매뉴얼에 따른 수목 활력도 측정 결과, 4점 만점에 3.89로 큰 상처를 품고도 긴 세월을 잘 견뎌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애국가에 등장한 소나무, 우리 민족의 상징인 지조와 절개의 소나무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김질하게 한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충북대 목재연륜소재은행 서정욱 교수와 공동으로 정밀연륜분석 기법을 활용해 송진채취 피해 발생연도를 구명하였는데, 피해목의 생육지 3개 지역(남원시 길곡리, 울주군 석남사, 평창군 평창읍)에서 일제강점기 시대에 발생한 피해목을 발굴했다.

확인된 피해목은 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1940년대 초반에 생성된 나이테에 송진 채취 상처를 입었고, 그 흔적을 품은 채 현재까지도 생존해 있는 노송(老松)들이다.

일제 때 상처 입은 소나무
일제 때 상처 입은 소나무

강영심 논문(1998)에 따르면, 일본은 식민지배하에서 1933년부터 1943년까지 총 9,539톤의 송진을 수탈했으며, 특히 1943년에 채취한 송진 4,074톤은 1년 동안 50년생 소나무 92만 본에서 채취해야 하는 양이다.

특히, 전시체제에 돌입하면서 1937년 ‘제1차 인조석유 7개년 계획’에 따라 송진 수탈량은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1937년(2.12톤)에서 1938년 1년 사이 32배로 증가(37.99톤)하고 1943년에는 1,900배 증가(4074.31톤)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경남 합천, 강화 석모도 일대에서 추가 정밀연륜조사를 수행하고 있으며, 향후 일제강점기 송진 채취 피해목의 생육지를 ‘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하여, 송진 채취 피해목의 역사적 가치를 기록문화로 남길 예정이다.

국림산림과학원 도시숲연구센터 조재형 센터장은 “소나무에 남겨진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상처인 송진 채취와 그에 따른 소나무의 피해를 알리기 위해 설명판과 안내판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송진 채취 피해목의 연유와 흔적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면서 “앞으로 송진 채취 피해목과 같이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산림자원들을 산림문화자산으로 등록하여 미래 세대에 전하기 위한 노력 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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