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9.06 11:04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리지 말아줘>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시험 점수에 목매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을 반 수 대로 몇 명씩 나누고 교실과 담임도 바꾸어 평가를 하던 7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90점 이상은 금상, 80점 이상은 은상, 70점 이상은 동상을 주었다.

금상, 은상, 동상이 몇 명이냐에 따라 학부모들은 담임의 능력을 은근히 평가하기도 했다.

평가는 요즘 수능이 무색할 정도로 철저한 보안 아래 이루어졌다.

따라서 담임과 아이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3학년을 담임했던 그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험이 끝나고 전 직원이 교무실에 모여서 채점을 하게 되었다. 작은 잘못도 용납이 안 되었기에 선생님들은 채점에만 온 신경을 썼다. 교무실에는 시험지 넘기는 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서명종이 누구예요? 다 틀린 문제를 이 얘 혼자 맞았네”

우리 반 시험지를 채점하던 윤 선생님이 신기해하며 말했다. 국어, 산수, 사회, 자연, 도덕 등 모두 100점을 맞았다. 음악, 미술, 체육, 예체능 시험지 한 장만을 남겨놓게 되었을 때는 모든 선생님들의 관심이 온통 우리 반 채점으로 쏠렸다.

드디어 마지막 문제까지 동그라미가 쳐지고 만점임이 밝혀졌을 땐 다른 선생님들이 더 좋아했다.

그 학교 개교 이래 처음 나온 만점이라고 모두들 흥분했었다. 요즘은 그 어려운 수능까지도 만점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만점은 정말 보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5년이 넘은 내 교직 생활 중에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만점을 받은 명종이는 내 먼 친척이기에 나 또한 기분이 더욱 좋았다. 성적표의 모든 과목에 100 점을 써 내려 갈 때는 손이 떨리기까지 했다.

성적표를 받아본 명종이 아버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담임인 내게 전화를 했다. 면직원인 그 분은 평생 번 돈을 책 사고, 술 사는데 다 썼다는 문학가이었다. 집안 살림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분이었기에 명종이 어머니가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명종이 아버지는 한 턱을 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극구 말렸다. 그 댁의 형편을 아는 터라 오히려 내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서 선생, 내 기분이 그게 아니야. 나 말리지 말아줘.”

한껏 기분이 좋은 그 분은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한 턱을 내셨다.

전 직원 친목회 날 맥주 상자와 불고기, 전, 김치를 챙겨 들고 오셨던 그 분들.

선생님들은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모두들 맛있게 드셨다. 명종이 어머니의 맛깔스런 솜씨가 그 빛을 더했던 것이다.

10년 쯤 지나서 그 애가 S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40 대가 되어있을 명종이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도 가끔 환호하던 그 애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내 기분이 그게 아니야, 나 말리지 말아 줘”

<다방에서 받은 촌지> - 1

새 학년을 담임한 3월 초 어느 날 오후.

“1학년 2반 서성자 선생님 교무실에 전화 왔습니다”

교실 스피커에서 교감 선생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시절엔 교실에 인터폰이 없던 때였다. 나는 긴 복도를 소리 나지 않게 종종거리며 달렸다.

“전화 바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호헌이 아빠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교문 옆 홍실 다방으로 잠깐 나오실 수 있는지요?”

교감 선생님께 나갔다 와도 되냐고 말씀 드렸더니 경찰관 학부모가 보자고 하는 걸 보니 큰일 난 거라며 놀리셨다. 다방을 향해 걸으면서도 무슨 일인지 못내 궁금했다.

호헌이는 2학년 때 내가 담임을 맡았던 아이였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어 서로 다른 반으로 갈라졌다. 그런데 담임도 아닌 나를 왜 만나자고 할까?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호헌이는 공부도 잘하고 인물도 좋아 담임인 나도 욕심날 만큼 똘똘한 녀석이었다.

80년대엔 초등학교에서 마저 반장 선거가 없어지고 담임이 임명하던 때였다. 반장도 1학기, 2학기 두 명 뿐이기에 반장 임명은 정말 부담스러운 행사였다. 그러나 서슴없이 호헌이를 반장으로 임명했을 만큼 리더십이 뛰어난 아이이기도 했다. 그렇게 담임을 하던 작년에도 찾아보지 않던 아빠가 학년이 바뀌어 보자고 하는 것이 더욱 궁금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0905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0905일자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