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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 김주언 논설주간 newmedia54@hanmail.net
  • 승인 2019.09.0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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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최상류층에만 관심을 집중하면 중상류층이 대중과 같은 배를 탔다고 믿기 쉬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상위 20%인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제도를 장악하고 노동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공공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탱크 연구자, TV 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리처드 리브스)

“386세대가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가 공고화한 오늘날, 우리사회는 여전히 더욱 심화한 ‘불평등 구조’를 가진 사회가 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심화했고, 비정규직은 신분화해 사회적 낙인이 되었다. 부동산가격의 상승으로 상층 자산계급과 중하층 자산계급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청년실업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교육은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아닌, 계층 고착화의 기제로 바뀌고 있다.”(이철승)

현대사회의 불평등은 어디서 기원했고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우리는 흔히 ‘1%의 최고 부자들이 99%를 지배한다’고 여겨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1년 세계를 뒤흔든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에서 나왔던 담론이다. 슈퍼리치들이 정치·경제계에 입김을 불어넣어 엄청난 부를 거머쥐고 호화생활을 유지는 데 대한 저항운동이었다. 불평등의 기원을 ‘1%대 99%’에서 찾은 것이다. 1%라는 소수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99%가 투쟁해야 한다는 뜻이다. 계급론의 관점에서 찾아낸 공격적 구호였다.

이러한 통념을 흔드는 주장을 담은 책 두권이 출간돼 관심을 모은다. 이철승 서강대 교수의 저서 ‘불평등의 세대’와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리처드 기브스 선임연구원의 ‘20 vs 80의 사회’가 그것이다. 이 교수는 386세대가 한국사회의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독점해 불평등구조가 내재화했다고 분석한다. 민주주의 완성과 불평등의 심화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의 모순을 해명하기 위해 세대론을 꺼내든다. 기브스 연구원은 미국사회의 불평등구조는 1% 대 99%의 대결구도가 아닌 상위20% 중상류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386세대는 20대에 민주화운동을 이끌고 30대에 정계에 진출했다. 외환위기 때문에 윗세대가 명예 퇴직한 직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확보했다. 40대에 고임금과 부동산으로 빠르게 중산층에 진입했다. 50대에는 끈끈한 네트워크로 한국사회를 평정했다. 입시와 취업, 주거까지 때맞춰 당첨된 ‘로또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한마디로 이들을 키운 요인은 ‘노력’ 아닌 ‘시대’였다”고 분석했다.

386세대는 국가권력과 대치하며 시민사회 형성을 주도했지만 민주적 선거경쟁을 통해 권력을 점유해나갔다. 2016년 총선에서 후보 점유율은 역대 최대인 48%를 기록했다. 2017년 국내 100대기업 임원 점유율은 70%를 넘어섰다. 시민사회 조직과 대기업 노조간부 점유율, 상층 노동시장 점유율, 최장의 근속연수, 최고수준의 임금과 소득점유율, 최고의 소득상승률, 세대간 최고의 소득격차도 이들이 보유한 타이틀이다.

‘좋은 운을 타고 난’ 386세대는 한국사회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장기 독점해 다음세대의 길을 막았다. 사회 곳곳에 세력화를 위한 위계구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와 국회 정당 기업 등 이들이 구축한 네트워크는 문어발에 가깝다. 과잉점유에 의한 ‘세대 네트워크’의 위계구조는 불평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권력이나 기업, 상층 노동시장의 윗자리를 차지한 이들 때문에 한국사회는 비효율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청년들이 헬조선을 부르짖고 실업과 비정규직, 결혼마저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 교수는 ‘386세대의 약속위반’에서 찾는다. 정치가 더욱 공정하게 굴러갈 것이란 기대, 시장이 보다 평등한 분배를 할 것이란 기대를 저버렸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386세대의 상층 리더들이 다른 세대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더 가져갔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기브스의 책 ‘20 vs 80의 사회’가 설명하는 미국사회의 불평등 구조는 한국사회를 빼닮았다. 미국 중상류층의 행태는 한국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비슷하다.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통해 인적 자본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를 물려주려는 모습은 한국에서 흔히 마주치는 모습이다. 이를 통해 격차는 확대되고 사회적 지위는 대물림된다. 이른바 ‘수저론’으로 표현되는 한국사회와 같은 맥락이다.

​기브스는 “부유한 집안은 대대로 부유할 것”이라며 “세습은 유산상속 보다는 교육을 통해 이뤄진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중상류층은 교육에 광적으로 집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장을 사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은 250만달러를 기부하고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브스는 이러한 불공정한 방식으로 얻는 것을 ‘기회 사재기’(opportunity hoarding)라고 부른다.

‘기회 사재기’는 부모가 지닌 부와 영향력으로 경쟁의 판을 흔드는 것을 뜻한다. 자신들의 주거지를 하위계층과 분리한다. 부유층이 사는 지역의 집값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안된 토지용도규제는 부동산시장을 왜곡시켰다. 조세제도를 통해 저소득 계층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대학은 동문자녀를 우대하는 등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인턴자리는 인맥과 연줄을 통해 분배된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시절 그의 딸이 뉴욕시 인턴으로 채용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불공정하게 대물림된 소득과 부, 사회적 지위는 점차 불평등 격차를 확대한다. 이들은 기회를 사재기하며 ‘유리 바닥’을 만든다. 자녀 세대가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보호 수단이다. 유리 바닥은 세대를 거쳐 계급 간의 분리를 영속시키고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킨다.​

이들은 1%와 99%의 대결구도를 만들고 슈퍼리치에 대한 비판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들의 의식구조는 위선적이다.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 부동산정책을 지지하며 자녀들에게 좋은 학벌과 고소득 일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학비를 지원할 여력이 있으면서 장학금 혜택까지 차지한다. 재벌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자녀에게 특권을 물려주기 위해 부동산 투기나 위장 전입 등을 일삼는 한국현실과 맞아 떨어진다.

이철승 교수와 기브스 연구원은 불평등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교수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호봉제 약화, 청년세대의 고용확대와 주거권 개선, 연금구조 변경 등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화투쟁에 이은 두번째 희생이 될 ‘나눔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브스는 중상류층이 특권적 지위를 누려왔다는 점을 인정하고, 인적자원개발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어 능력이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의 가치는 교육분야에서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의 딸에 대한 논란이 입시제도의 불공정성으로 불붙은 이후이다. 불평등구조는 불공정한 제도에서 비롯된다. 교육뿐 아니라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그렇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게.” 문 대통령 취임사의 한 구절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사회의 불평등구조를 해결하는 데 좀 더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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