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8.3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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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야!> - 2

[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노랗게 물든 바닥에 양초를 칠하고 마른 걸레로 문질러 윤을 내는 어이없는 청소 방법이었다. 음료수 병으로 바닥을 문지르기도 했다.

교실 바닥이 반짝반짝 윤이 날수록 깨끗한 교실로 인정을 받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윤내기에 온 정성을 다 했다.

먼지 많은 교실 청소를 물걸레로 닦아도 모자랄 판에 마른걸레질이라니.

80년 대 초였다.

교실 바닥을 노랗게 칠한 과정을 거쳐 초칠할 일이 남아있었다.

토요일 물청소에 노란 물감까지 칠하고 난, 이튿날 일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고사리 손으로 초칠을 하기엔 너무 힘든 일이었기에 파라핀을 석유에 끓여 교실 바닥에 바르는 일을 하기로 한 학년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일직이었다.

“불이야!”

교무실에까지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렸다.

숙직실 부엌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숙직실 부엌에서는 연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숙직실 부엌에 있는 연탄화덕에서 난 불이었다. 세숫대야에 석유를 붓고 거기에 파라핀을 넣고 녹였다고 한다.

녹이는 과정에서 석유가 넘쳐 불이 붙은 것이다. 너무 맹렬한 불길에 감히 누구도 불 곁으로 가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연탄아궁이는 숙직실 다락 바로 밑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락 밑에 불길이 닿자 누군가는 방으로 들어가 다락의 이불을 마당으로 던졌다.

부엌 가득한 불길에 누군가 양동이의 물을 끼얹었다.

이성적이고 진정한 교육자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교장선생님, 바로 그 분이었다.

불난데 기름 붓기!

딱 그 상황이었다. 불은 더 높이 더 넓게 퍼져 금방이라도 숙직실 건물을 삼키려고 했다. 불에 쫓겨 우리 모두는 부엌에서 나와야만 했다.

그 때였다. 젊은 남자 선생님이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타났다.

평소에 느물거리며 농담을 즐기는 그 선생님은 상황을 눈으로 훑고 나서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그 선생님이 들고 나타난 것은 커다란 모래 주머니였다. 모래주머니를 기름대야에 던져 넣었다.

상황종료였다.

언제 불이 붙었느냐는 듯 불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모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불이나면 방화사, 방화수! 입으로 교육은 잘도 했으면서도 정작 위급 상황에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 했다.

그냥 웃고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사건이었다. 이웃 학교에서는 석유를 파라핀에 녹이는 과정에서 학생이 큰 화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결국 담임교사는 교직을 떠나야 하는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그 뒤에야 없어진 위험한 파라핀 녹이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 그리 무모한 일을 했을까?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탓이다.

기름은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말만 하면 무엇할 것인가? 애초부터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위험했던 그 일도 지금은 담담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먼지 많은 교실에 마른 걸레 질이라니. 실내화도 신지 않았던 그 시절. 아이들의 양말은 초가 묻어 끈적거렸다. 더구나 아이들은 미끄러운 교실에서 얼마나 위험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구구단을 외우며, 땀 흘리며 교실 윤내기를 했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많이 미안하다.

관행이 되어 모두 하니까 나도 따라했던 그 일이 부끄럽다. 교직 생활 중 부끄러웠던 일이 어찌 그 뿐이었겠는가?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1

“수업 끝나고 우리 교실로 좀 와요”

4월 어느 날, 심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나는 그 반의 음악을, 심 선생님은 우리 반의 체육을 바꾸어 가르치고 있는 터였다.

심 선생님은 솜씨 없는 나를 많이 도와주시는 분이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0830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08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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