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정탁 "유(遊)하게 살며 자아실현 하렵니다"

[인터뷰] 김정탁 "유(遊)하게 살며 자아실현 하렵니다"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08.19 12:32
  • 수정 2019.08.2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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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자 김정탁 교수 29일 퇴임..동돟양철학 의사소통 첫 접목....장자처럼 즐기는 삶 강조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김정탁 교수(65)가 29일 퇴임한다. 34년 언론학자로 살아온 그를 만났다.

2013년 5월 10일 남도미항 여수시에서 열린 봄철 정기학술대회는 사상 초유의 대성황을 이뤘다.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날 언론학회 학술대회는 여느 학회 세미나와 크게 달랐다. 보통 많아야 250~300여명 회원이 모이면 대성공한 학회 행사로 통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500명 넘었다.

성균관대 봄학기 캠퍼스에서 포즈를 취한 김정탁 교수
성균관대 봄학기 캠퍼스에서 포즈를 취한 김정탁 교수

인문사회계열 다 합쳐도 전례가 없던 그날 행사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김정탁 교수는 “회원 들의 적극적인 협조 때문이었죠.”라며 겸손해 했다. 그는 “5백 명이 넘는 참가자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어느 학술대회보다 좋은 논문들이 많이 발표됐고 세미나장마다 열띤 토론이 전개 돼 매우 고무적인 풍경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친자연주의자이다. 그것도 동양철학에 천착한 커뮤니케이션 학자이다. 그날 행사 역시 바닷가 여수에서 열려 회원들에게 큰 매력이었다. 그가 언론학회장 시절에 회원들에게 거의 매일 메일을 보내다시피 했다. 소통의 일상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를 체감한 회원들은 그에게 “도대체 그 열정은 어디서 나옵니까?”라고 되묻곤 했다.

그는 신문기자를 거쳐 1985년부터 성균관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29일 저녁 모교에서 정년퇴임식을 갖고 다사다난한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복잡다단한 교수사회에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28일부터 3일까지는 명륜동 캠퍼스 경영관 1층 갤러리에서 출판기념회 및 붓글씨 전시회도 열린다. 34년간 정든 교정에서 갖는 그의 마지막 공식 출연 무대이다.

그렇게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 까지 그는 일생을 사회과학 분야 언론학자로 살아왔다. 유달리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언론학회장 시절 학술세미나 대주제 역시 ‘소통(疏通):매체를 넘어 인간으로’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기존 학회에서는 ‘소통’을 인터넷, SNS 등 뉴미디어, 4차 산업 혁명시대 기술적 문제와 연결해온 것과 대조적이었다. 그렇게 인문학으로 언론학 범위를 넓혀온 당사자이다.

학술세미나에서 인사말 하는 김정탁 교수
학술세미나에서 인사말 하는 김정탁 교수

그러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오늘날 ‘소통’이 시대의 지배담론이 돼있는 데 사회과학적 패러다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이유다. “사회과학이 할 수 있는 것은 객관적 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이죠. 그러나 인간의 만족은 객관적인 문제가 아니라 주관적인 거죠. 과거보다 객관적 조건은 훨씬 나아졌는데 사람들의 현실 만족도는 갈수록 떨어져요. 우리나라는 절대 빈곤에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의식주를 갖추고 있지만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아요. 여기서 더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것은 우리보다 약한 사람들을 윽박지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죠. 기존의 정치, 경제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문화 패러다임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주제를 선택했던 거죠.”

그는 유(儒)불(佛)선(仙)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사유를 커뮤니케이션 사상철학으로 분석학고 접목하는 연구 활동으로 화제가 됐다. 2004년 한국언론학회로부터 ‘禮&藝:한국인의 사소통을 찾아서’라는 저서로 저술상을 수상했다. 동시에 대한민국 학술원으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서양철학을 2천년 동안 지배해온 형이상학을 뒤엎은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동양사상과 연결 지어 설명하면서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이러한 이론과 사상적 배경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서양의 전통적 언어는 낮과 밤, 삶과 죽음,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과 같은 이항(二項) 대립구조에서 출발하죠. 이런 식의 이항대립적 표현은 대상이 단절되고 불연속적인 것처럼 보여 마치 실재도 구분된 것처럼 착각하게 해요.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이것들은 변화과정, 생성과정의 한순간일 따름이죠. 동녘의 새벽은 과연 밤일까요 낮일까요. 서양의 의사소통 사상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시 낮을 오전과 오후로 구분하는 이항대립적 분화를 거듭해 왔어요. 물론 그 분화의 끝은 0과 1로 구분되는 디지털이죠.”

'교육현장 서열화 개선 및 창조적 혁신을 위한 초록교육연대 출범식'에서 성명을 낭독하는 김정탁 교수
'교육현장 서열화 개선 및 창조적 혁신을 위한 초록교육연대 출범식'에서 성명을 낭독하는 김정탁 교수

결국 이런 의사소통관은 우리들의 주관적인 개념, 즉 선과 악, 행복과 불행, 민주와 반민주와 같은 주관적인 개념조차도 이항대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항대립화는 결국 우리들을 상극의 논리에 빠뜨리고 맙니다. 이항대립적 표현은 ‘either or’ 방식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도록 해요. ‘both all’로 상징되는 상생의 논리와 다른 점이죠. 오늘날 우리는 상극의 논리로써 서로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데 열중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을 정치라고, 운동이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그는 ‘현, 노장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이 나오자 매스커뮤니케이션 연구 풍토에서 파천황(破天荒) 같다고 평가했다. 즉 전대미문, 미증유의 사건이라는 뜻. “서양은 모든 것이 텍스트 중심이죠. 그 말을 했느냐? 안했느냐? 그것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요. 대표적인 것이 법조문이죠. 이처럼 모든 게 옳고 그름으로 귀결돼요. 커뮤니케이션은 시비를 밝히는 것만은 아니죠. 동양은 시비를 밝히는 것에 앞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인간을 완성시켜요. 유불선 사상이 거기에 맞춰져 있죠.”

그는 유불선 사상에서 특히 인(仁)은 ‘논어’에만 109차례나 등장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 친화하고, 궁극적으로 친일(親一)하는 것으로서 인을 정의했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최근 다산 정양용 관련 각종 학술세미나에서 다산의 ‘소통’ 방식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는 다산이 인의 개념을 해석하는 데 원시유가의 개념을 받아들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다산은 인(仁)을 ‘인(人)’과 ‘이(二)’의 합성어로 파악했다는 것. 이런 입장은 사변적 중세 성리학의 틀을 넘어 실천적 원시유가의 정신을 되살림으로써 현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반영이라고 해석했다. 다산에게는 인은 사변적인 말장난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행위였다는 것이다.

그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섬이 아닌 물고기 유영처럼 ‘놀 유(遊)’자 삶을 살아왔다. 그는 성대 언론정보대학원장 시절에 1,2교시 공식 수업 후 만남인 ‘3교시 문화’ 유행의 정점에 있었다. 강의실 밖에서 학생들과 계급장 떼고 만나는 격식 없는 토론문화를 즐겼다. 호프 한 잔에 인정과 사제지정이 술술 넘쳐 흐르면서 저마다 언론사에서 한 끗발 하던 사람들도 열린 마음으로 다정다감함으로 전율했다. 그래서 교수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 그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겔까? “땔감은 한 번 타고 없어져요. 불씨는 다르죠. 계속 이어지죠. ‘무언가’가 되려고 애쓰진 않을 거예요. 그게 땔감의 삶이니까요. 불쏘시개 인생 말이죠. 타고나면 허무하니 불씨의 삶을 살아가야죠. 그것은 ‘유(遊)’할 때 이루어지죠. 유하게 사렵니다. 그게 ‘워크’가 아닌 ‘플레이’를 통한 자아실현이죠.”

저마다 4차 산업혁명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세상이 새롭게 동이 트고 있다고 야단법석인데, 그는 그 길목에서 끝까지 장자의 ‘놀 유(遊)’자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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