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의 관풍> 정권 몰락 가져온 ‘표현의 자유’ 억압, 과연 일본은?

<김성의 관풍> 정권 몰락 가져온 ‘표현의 자유’ 억압, 과연 일본은?

  • 기자명 김성
  • 입력 2019.08.1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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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제적인 예술제인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가 개막 사흘만인 3일 특별기획전 ‘표현의 부자유, 그 후’ 라는 주제의 전시 전체를 중단했다. 평화의 소녀상 때문이다. 한일간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이런 전시회를 가지게 되어 ‘일본 예술계가 정치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보았었는데 단 사흘만 문을 닫아버려 ‘그러면 그렇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표현의 부자유’ 드러낸 일본의 ‘표현의 부자유, 그 후’展

‘표현의 부자유 그 후’ 특별기획전은 외압으로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표현들을 모아 현대 일본의 표현 부자유 상황을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그러나 일본 우익단체들로부터 비판이 일자 결국 폐쇄로 끝을 맺은 것이다. 정부도 거들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2일 정례 회견에서 “(행사에 대한) 정부 보조금 교부 관련 사실관계를 조사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압박했다.
또 아이치현에 있는 나고야시의 시장은 “일본인의 마음을 짓밟는 행위다”“위안부가 사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망언까지 해댔다. 정부 지원과 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추진된 예술제였기에 자치단체도 압력을 막아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양심상 부끄러웠던지 3일 전시중단을 발표했던 아이치현 지사는 5일 다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전시 중단 압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전시물의) 내용이 ‘좋다, 나쁘다’ 얘기하는 것은 검열”이라고 비난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에 위반한다는 의심이 극히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트리엔날레 실행위원 3명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 사건이 될 것”이라며 “이 전시회를 끝까지 계속할 것을 강하게 희망한다”고 했고,일본 펜(PEN)클럽도 “창작과 감상 사이에 의사를 소통하는 공간이 없으면 사회의 추진력인 자유의 기풍도 위축된다”는 내용의 항의 성명서를 발표 했다. 이 트리엔날레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작가들도 비판의 성명을 냈다. 테러위협이 있으면 보안을 강화해서 댑해야지 아예 전시회 자체를 없애버린다는 것은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돈’으로 예술 통제했던 한국의 ‘블랙리스트 사건’
일본당국이 예산을 무기삼아 저지른 ‘표현의 부자유’ 검열사건을 보면서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건이 떠올랐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가들에게 창작지원을 제한한 사실이 밝혀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부터 관련 부처 관리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때는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홍성담의 걸개그림 ‘세월 오월’이 전시되지 않도록 압력을 가했다. 심지어는 평생 시민사회운동을 해왔던 ‘시민시장’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최 기관에 경고조치까지 했다. 국비예산 지원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민주화가 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돈’이 이용된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촛불혁명으로 이같은 편법 통제가 사라졌을 것으로 믿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돈의 힘’이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우리나라 근현대 문화예술사에서도 표현의 자유 제약은 일제 강점기인 1933년 ‘아리랑’ ‘목포의 눈물’ ‘황성옛터‘ ’눈물젖은 두만강‘ 등 대중가요가 치안방해라며 금지시킨 예가 있다. 박정희 군사정권 때도 '물 좀 주소'(한대수)가 물 고문이 연상된다고, '0시의 이별'(배호)은 통행금지 위반으로, '왜 불러'(송창식)는 반말을 했다며, '그건 너'(이장희)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를 했다고, '키다리 미스터 킴'(이금희)은 키가 작은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각각 금지곡이 됐다. 문학분야에서 대표적인 금지작품은 김지하의 ’오적(五賊)‘을 들 수 있다. 개발독재 과정에서 부정부패로 부(富)를 축적했던 인물형으로 국회의원, 재벌,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들어 비판한 풍자시이다. 이 시로 김지하는 1979년 반공법위반으로 구속됐다. 말하자면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것인데 이는 군사정권이 상투적으로써먹던 수법이었다.
‘예술·언론자유’ 억제 정권들 모두 비극적 종말
표현의 자유 가운데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도 수많은 수난을 당했으나 오히려 국민적 저항을 가져왔다. 1929년 11월 광주에서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총독부는 12월 28일까지 보도금지를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과 귀를 통해 전해져 12월부터 1930년 상반기 사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 320개 학교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1961년 군사정부가 계엄령과 함께 언론검열을 실시했으나 몇 년 뒤 이로 인해 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다. 1980년 5·18항쟁 때도 언론검열을 통해 왜곡보도를 유도했으나 1980년대 내내 ‘진상규명’이 시대적 과제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 때도 돈으로 치밀하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 했으나 결국은 인터넷 고발과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속속 드러나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가 빈발하면서 국민들은 저항하게 됐고, 그 저항은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5·18(1980년), 6·10항쟁(1989년), 촛불혁명(2017년)을 가져왔다. 결국 국민의 자유권을 제약하는 행위는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켜 정권까지 물러나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대통령들도 좋지 않은 결과를 맞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심복의 총에 맞아 숨졌고, 전두환은 80살이 넘어서도 5·18과 관련해 법정을 드나드는 신세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30여년의 구형을 받고 철창신세를 지고 있다.
‘국민기만행위’ 항거하는 日本국민 되어야 민주주의 완성
날로 심해져가고 있은 일본 일부 언론들의 우익 편향 중심의 보도, 또 아베정권의 집권유지를 위해 상대국가를 이간질 하는 가짜뉴스에 가까운 보도들의 범람은 한국이 과거 독재정권 시대 때 경험했던 상투적인 국민기만행위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세기의 사건들이고 21세기 글로벌 시대인 요즘도 그런 방식으로 국민을 ‘내 편’으로 묶어두려는 행위들은 선진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국제사회가 웃을 일이다.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표현의 부자유, 그 후’전의 폐쇄조치를 계기로 일본 국민들도 항의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민주적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이성적 행동이다. 일본은 그동안 국민의 권리를 정권에 맡기고 그저 따라가기만 했다. 그러다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위험한 아베 정권을 맞은 것이다. 그래도
국민은 따라가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국가가 부자라고 국민의 의식도 부자인 것은 아니다. 일본도 깨어있는 국민이 국가의 방향을 결정짓는 수준까지 올라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우호관계를 맺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다.

김성(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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