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진화하면서 확산하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김주언 칼럼> 진화하면서 확산하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 기자명 김주언
  • 입력 2019.08.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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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진화하면서 확산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일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불매운동은 조용한 가운데 날로 확산되고 있다. 뚜렷한 주도단체 없이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현실을 모르는 감정적 대응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무색케 할 만큼 차분하게 진행된다. 반짝효과에 그칠 뿐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아베정권의 경제침략에 맞서려면 장기대응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활발하다. 과거의 불매운동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이번 불매운동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알아서 실천에 나섰다. 주도세력이 없다는 점에서 촛불항쟁과도 닮았다. 따라서 생명력도 끈질기다. 일부 언론이나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는 인사들의 우려처럼 감정적 반일감정이 치솟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동참하고 고등학생들도 손을 들고 나섰다. 택배노조와 마트노조도 일본제품의 배송과 안내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과거 불매운동과 확연히 다른 점은 일본제품의 대체상품을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의 등장이다. ‘노노재팬’이 그것이다. 노노재팬에 올라온 일본제품은 벌써 100개를 훨씬 넘어섰다. 일상에서 잘 모르는 일본제품도 다수 올라 있다. 이른바 ‘고양이 마약간식’으로 일컬어지는 차오츄르, 구내염 치료제 알보칠 등이 그렇다. 올라온 제품은 의약품 패션 취미 자동차 금융 반려동물 등으로 카테고리를 구분해 검색하기도 쉽다. 스마트폰용 ‘노노재팬 앱’도 나왔다. 벌써 다운로드 1만회를 넘겼고 평점은 5점 만점에 4.7이다. 
노노재팬은 나아가 제품 이미지를 노출하고 사용자가 대체상품을 올리는 기능도 개발중이다.  잘못된 정보로 발생하는 국내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바로알기’ 코너도 개설했다. 국내상품 소비촉진을 위한 페이지도 기획중이다. 단순한 일본제품 불매운동에서 국산 대체품 사용으로 활동 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불매운동은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다. 일본제품 바코드 식별방법은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소비자들은 ‘바코드로 일본제품을 구분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한국제품은 코드가 ‘88’로 시작하지만 일본은 ‘45’나 ‘49’로 시작한다. 그래서 ‘49(사구)싶어도 45(사오)지 말자’는 번뜩이는 캐치프레이즈가 나왔다. 노노재팬이 제공한 애플리케이션에 바코드를 인식하면 일본제품 여부를 알려준다.
 한국제품이라도 원재료가 일본산인지를 가리자는 운동도 벌어진다. ‘쌀로별’ 과자의 쌀 원산지가 일본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롯데는 즉각 “일본산 쌀을 사용한 적 없고 사용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CJ도 ‘햇반’ 제품에 일본 후쿠시마산 미강추출물이 사용된다는 소문에 “햇반에 들어가는 양은 0.1% 미만이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일본산 원재료에 대한 표기를 명확하게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에는 1만명이상이 동의했다. 그만큼 불매운동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택배노조와 마트노조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택배노조는 “유니클로는 전범기 욱일기를 디자인에 사용해온 대표 일본기업”이라며 유니클로 배송거부 인증샷을 시작으로 배송거부에 들어갔다. 중저가 의류업체인 유니클로는 임원의 불매운동 폄하발언으로 분노를 사 두차례나 사과했지만 불매운동의 표적이 됐다. 마트노조도 고객에게 일본제품을 안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노조는 “편의점 등 5만여곳도 일본제품을 판매대에서 철수시켰다”며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에 일본제품 판매중단을 요구하는 공문을 전달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나섰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동참과 공무수행을 위한 일본방문 중단을 선언했다. 협의회는 일본의 수출규제는 “양국 기초지방정부간의 우호적 공조노력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며 “국민이 단합된 힘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듯이 강력한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불매운동은 문화계에도 몰아쳤다.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평점테러가 벌어졌다. 개봉을 앞둔 ‘명탐정 코난’과 ‘도라에몽’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일본영화 보지 않기’ 운동이 호응을 얻고 있다. 출판계는 일본서적 출간을 미루거나 작가방한 행사를 취소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10주년 기념판 출간은 연기됐다. 일본문단의 거물로 꼽히는 마쓰이에 마사시의 방한도 취소됐다. ‘일본 지우기’가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파급효과를 가늠하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일본여행 자제운동은 눈에 띄는 영향을 보인다. 일본 도시에는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끊겼다. 항공사들은 한국과 일본도시를 연결하는 항공편을 대거 축소했다. 한국 여행객의 감소로 지역경제 타격이 우려된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일본을 찾는 관광객의 25%가 한국인이므로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일본 관료나 언론, 그리고 국내 보수언론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감정적 대응’으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린다. 물론 극소수 돌출행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 10명중 6명이상이 동의하지 않는다.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61.8%가 동의하지 않으며, 동의한다는 응답은 33.7%에 그쳤다. 오히려 이들의 비아냥에 대한 반감으로 차분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번 불매운동을 보면서 100여년 전 일제강점기 물산장려운동을 떠올린다. 일제의 경제침탈로 민족경제가 침몰직전이었던 1920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조선물산장려운동이 벌어졌다. 전국적 조직으로 발전한 조선물산장려회는 ‘내 살림 내 것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국산품 애용하기, 소비 줄이기, 금주하기, 금연하기 운동을 벌였다. 일제는 이를 새로운 민족운동으로 보고 감시와 탄압을 일삼았다. 이와 함께 일부 생활용품 가격이 오르는 등 부작용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못했다. 
이번 불매운동의 상황은 다르다. 일본제품을 대체하는 상품이 널려 있는 데다 일본제품보다 성능이 뛰어난 한국상품도 많다. 그런데도 일부 한국인은 ‘일본 중독’에 빠져 있다. 특히 심각한 무역역조와 여행수지는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2004년부터 15년동안 대일적자는 한 해  200억달러에 이른다. 여행수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인은 지난해 754만명이 일본에 가서 6조4,000억원을 썼다. 일본은 295만명이 와서 2조6,000억원을 썼다. 일본 인구가 2.5배 많은 것을 감안하면 한국인의 흥청망청이 심하다.
불매운동은 이러한 심각한 무역역조를 줄여보자는 자기성찰에 가깝다. 어쩌면 불가피한 합리적 경제행위인지도 모른다. 집단지성에 의한 국민의식의 변화를 보는 것 같다. 게다가 일본의 ‘한국 때리기’가 이제 시작됐다는 국민적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이번 불매운동이 ‘일본 중독’에서 깨어나는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100여년 전 물산장려운동을 넘어서는 ‘신 물산장려운동’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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