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동화작가 서성자의 추억열차] 1970~1990년대 교단일기

  • 기자명 서성자 기자
  • 입력 2019.07.19 09:42
  • 수정 2019.07.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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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서성자 기자]  <종욱이의 땡땡> - 2

서성자 동화작가
서성자 동화작가

나는 영특하고 글씨도 잘 쓰는 반장 종욱이에게 일을 맡기기로 했다.

“위에 쓰인 글자는 밑에 다시 쓸 필요 없이 그냥 같다는 표시인 ‘땡땡’을 찍으면 되는 거야.

‘세계명작 동화’와 ‘계몽사’라는 말은 같은 말이니까 그냥 ‘땡땡’을 찍도록 해”

그 때 우리들은 ‘ ″ ’ 표시를 땡땡이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종욱이에게 일을 맡겨두고 직원실로 갔다. 직원회의가 끝나자마자 돌아와 책 목록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맙소사!

세계 명작 동화 소공녀 계몽사

땡땡 소공자 땡땡

땡땡 비밀의 화원 땡땡

땡땡 피노키오 땡땡

땡땡 보물섬 땡땡

땡땡 왕자와 거지 땡땡

땡땡 인어공주 땡땡

땡땡 백설공주 땡땡

종욱이는 내가 없는 동안 몇 백 권이나 되는 목록 모두를 ‘ ″ ’대신 ‘땡땡’이라는 글씨로 채워 놓았던 것이다.

그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일 년 쯤 웃을 웃음을 그날 다 웃었던 것 같다.

그 날 오후 내내, 땡땡이란 수많은 글자를 칼로 긁어 하나하나 지워 가며 나는 웃고 또 웃었다. 그 땐 수정 액이 없었던 때였기에 칼로 긁다 흠집이 생기면 종이로 붙여야했다.

당황해 하는 종욱이에게 미안하면서도 땡땡 대신 ‘ ″’을 찍으며 킥킥대는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 ″’표시를 볼 때마다 종욱이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곤 한다. 종욱이는 지금쯤 그때 자기만큼 자란 자식을 둔 아버지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 후부터 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노력을 많이 하게 되었다. 종욱이에게 귀한 것을 배우고 부터서다.

그 때 나는 종욱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 날 종욱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했었을까? 아마 안 했던 것 같다.

종욱아 그 때 제대로 설명 못해줘서 정말 미안했다. 그때처럼 신나게, 정말 배가 아프도록 웃을 일이 어디 또 없을까?

<모가지를 떼러 왔소> - 1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어린이 날 노래가 울려 퍼지는 5월이다. 이

푸른 5월에 제자 사랑 이야기가 아닌 폭력 교사의 고백을 하고자 한다. 젊은시절 저지른 잘못이다.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이야기다.

수요일 오후 읍내에서 서커스 공연이 있었다. 3학년 이상 어린이들이 서커스 관람을 하게 되었다. 만삭으로 걷기 힘든 나를 대신해 1학년 이 선생님이

우리 반을 인솔하기로 했다.

아이들을 배웅하고 교무실로 들어가다 현관에서 서커스를 관람하지 않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던 상준이를 다시 만났다. 얼굴이 벌겋게 된 남자와 함께였다.

“상준아, 너희 아버지시니?”

상준이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상준이 담임입니다”

“선생님과는 말할 필요도 없소”

상준이 아버지는 상준이 손을 잡아끌고 술 냄새를 확확 풍기며 교장실로 들어갔다.

얼마 후 교장선생님이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나오셨다.

“서 선생님이 저 아이를 때렸소?”

“네”

“어디를 때렸소?”

“엉덩이요”

“그래도 다른 신체 부위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나는 그때까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큰 일 났소. 서 선생 같은 폭력 교사는 모가지를 떼겠다며 교육청으로 가겠다고 저 난리요.”

늙은 교장 선생님의 손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작은 시골인지라 상준이 아버지가 요즘의 조직폭력배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데일리스포츠한국 0719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 07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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