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거대한 팔루스와 보편적인 요니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거대한 팔루스와 보편적인 요니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7.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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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그는 자신의 엄니를 빼앗는 모든 애비들을 증오하면서 자랐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빼앗아가는 모든 아버지들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질투와 증오”를 되새김질하며 바다로 내달리곤 했다. 바다는 상처로 점철된 그를 어루만져 가슴으로 품어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자 영원한 모성이 회귀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라면 그는 어머니를 저주하며 ‘물 속에 잠겨 앉은 아이’가 아니다. 거기서 그는 더러운 아버지로 상징되는 하나의 돌출한 남근이 된다.

그는 목전에서 또 다시 죽음을 목격한 후 질기고 질긴 윤회의 업을, 타도해버려야 할 적을, 자기 소멸을 완전히 성취해버리기 위해 입었던 옷을 하나씩 벗어 뒤에 던지고, 이를 드러내 웃으며, 유리를 향해 내달았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어라!”

그는 이제 ‘탈육의 황홀’을 경험하는 하나의 거대한 팔루스(Phallus, 남근)가 된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 그의 전체가 ‘혼을 벗은 저 껍질’이 되어 근(根)만 남은 자신의 허허로움을 통해 대단히 해탈스러이 홀가분함을 느낀다.

내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읽으며 전반적으로 느낀 감정은 그야말로 선홍색의 피가 철철 흐르는 원초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담은 “날것”의 당혹스러움이었다.

예를 들어 “나라우 나도 중은 중인디, 똥갈보구만이라우”, 혹은 “무엇엔가 싸이거나 묶임을 받지 못해 덜렁이는 하초가, 이때처럼 천덕스러이 느껴져 본 적도 없었다는 것을 알아냈다”라든지, “너의 절시의 쾌감을 위해서 허긴”, “내 한 번 수음이라도 해보여주마, 허긴 그래주마” 등등…

그는 하초의 외로움을 느끼며 한 요강쯤의 하혈 씻은 물을 엎지르고, 붉은 치마꼬리를 문틈에 물린 듯이하며 종내 사라져 버린 불빛을 향해 걸어가다가 청청히 걸어오는 ‘노란 색깔로 여겨지는 장옷을 입은 중 하나’와 정면으로 만나게 된다.

그의 엄니는 창부였고, 모든 남근을 받아들이는 보편적인 요니(Yoni: 인도에서 숭배되는 여성의 생식기 상)였다. 그가 유리의 초입에서 만난 노란 색깔의 장옷을 입은 여인은 중이었지만, 육보시(肉布施)를 행하는 수도부(修道婦)였다.

두 여성은 바다와 죽음, 매장과 탄생을 가능케 하고, 그녀들의 그것은 끊임없는 생명력의 원천이며, 재생을 상징한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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