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원 칼럼] 출간 100주년 <데미안>과 함께 다시 찾아오는 헤르만 헤세

[지재원 칼럼] 출간 100주년 <데미안>과 함께 다시 찾아오는 헤르만 헤세

  • 기자명 지재원 기자
  • 입력 2019.07.10 22:37
  • 수정 2019.07.11 10:04
  • 1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음사 대표를 지낸 출판평론가 장은수씨는 신입사원이 면접 때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데미안>이라고 하면 무조건 탈락시켰다고 한다. 고등학교 이후 독서를 거의 안했거나, 아니면 몇몇 책만 반복해서 읽는 스타일 둘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은데 어느 쪽이든 출판편집자로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데미안>은 오래전부터 ‘청소년 필독서’여서 학창 시절에 건성으로라도 이 책을 안보고 지나친 경우가 없을 정도다.

헤르만 헤세가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데미안>을 발표한 지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7월2일 경기도 군포예술회관에서는 ‘데미안 출간 100주년 기념 헤르만 헤세의 음악세계’ 연주회가 열렸으며 5월에는 데미안 출간 100주년 기념 기획으로 <내 삶에 스며든 헤세>가 출간되었다.

<내 삶에...>에는 시인 강은교 박노해, 소설가 이외수, 문학평론가 김주연, 정현규 한국헤세학회장 등을 포함한 문학 음악 영화 미술 사진 춤 등 예술분야와 오거돈 부산시장, 김선동 국회의원, 최재천 변호사, 곽효근 목사와 김윤관 목수 등 그야말로 각계각층 인사 58명이 참여해 <데미안>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데미안>은 한 언론사의 조사에서(조선일보, <데미안>은 왜 압도적 1위가 됐나, 2017.8.11.) ‘18세가 되는 당신에게’ 권하고 싶은 책 1위에 선정됐다. 삼국지, 어린왕자, 토지, 미움받을 용기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렇다 해도 ‘출간 100주년 기념’은 매우 희귀하고 이색적인 일이다.

기획자 전찬일씨(영화•문화콘텐츠 비평가)에게 기획의도를 들어보았다.

“작년에 한 일간지로부터 ‘내 인생의 책’ 청탁을 받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43년만에 다시 읽으면서 새벽에 울었다. 나만 이럴까?... 그래서 기획하게 됐다. 그러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헤세의 책이 무얼까 생각해봤는데, <데미안>이 유일한 책이라 생각됐다.”

그럼 독일에서도 유사한 행사가 있느냐고 묻자 “독일에서도 하는지는 모르겠다”면서 주한 독일대사관 문화협력관과 이 문제로 연락했더니 의아해하면서 놀라더라고.

헤세가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인기가 많은 작가지만 독일에서는 불편한 인물이라고 한다. 서울대 독문학 석사인 전찬일씨도 학부와 대학원에서 커리큘럼상으로 헤세를 배운 기억이 없을 정도.

문학평론가 김주연 교수(숙명여대)에 의하면 헤르만 헤세가 1946년에 노벨상을 받았지만 60년대 이전까지 대중적으로 부각된 작가는 아니었다고 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군 입대 대신 평화를 호소하다가 ‘조국을 배신한 자’로 매도되기도 했고, 실제로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나치스에 의해 그의 작품들이 몰수되고 출판도 금지되었다.

독일내에서 ‘잊혀진 작가’였던 그는 1968년 5월, 이른바 68세대의 ‘스튜던트 파워’가 유럽과 미국을 휩쓸기 시작하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끄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들의 반전•반체제 저항운동, 자기 성찰을 통한 개인의 해방운동은 미국의 히피들과도 맥을 같이 했는데 히피들이 거리에 늘어놓은 책들 중에는 <황야의 이리>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들이 있었다.

독일의 대학에서도 현대문학 강의에 헤르만 헤세가 뒤늦게 등장했고, 우리나라에서도 헤세 문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히피를 중심으로 한 청년문화 덕분에 헤세가 다시 태어나게 된 셈이다.

서울 상계동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곽효근 목사는 헤르만 헤세가 ‘자아 실현’을 강조함으로써 <데미안>은 불교의 카르마(업)와 상통한 것이고, 동양철학의 줄기와도 같으며, 운명을 각자의 다양한 형태의 꿈으로 인식하는 것은 범신론적 개념으로서 힌두교의 교리에도 적합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사실, 필자도 고1 때 <데미안>을 처음 읽었지만 그동안 내용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번에 제대로 정독을 해보았다. 필자가 고교시절 읽었던 내용을 왜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는지 이유를 알 것같다.

인문학자 김경집은 <데미안>이 청소년 필독서인가, 하고 묻는다.

우리의 교육이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근현대의 핵심 가치를 외면하고, 평균적이며 제도에 순응하는 존재를 양성하는 노선을 취해온 것을 감안하면 ‘너만의 길을 가라’는 <데미안>의 메시지는 매우 불온하기 때문에 이 책을 청소년 도서목록에 넣은 것은 어쩌면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올렸거나, 교육 현실에 대한 저항을 은근히 부추기려는 ‘음모’가 아니고서야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 그러면서 <데미안>은 청소년기에 한번 읽고 말 게 아니라 평생을 두고 자신의 삶이 타성에 젖을 때마다 꺼내 영혼을 말리는 건조대로 삼아야 할 책이라고 강조한다.

<데미안>을 읽고 종교를 바꾸고, 출가 경험까지 했던 은유와마음연구소 명법 대표는 좋은 책이란 영혼의 심연을 뒤흔드는 것, 자신을 직시하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한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는 파문을 일으키는 것 아니겠냐면서 그것이야말로 헤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기획자에게 한번 더 물었다. ‘데미안 100주년 기념 기획’을 통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헤세의 가치를 부활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덜 물질 중심적이고, 인간존중, 새로운 세상 등으로 나아가는 가치지향적 문화와 사회를 향한 내 간절한 바람이 단지 나만의 바람으로 그치지 않고 가능한한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싶은 거다.”

작년에 수원시 행궁동에 북카페 & 서점 ‘헤세처럼’이 등장했고, 파주 출판단지에도 북카페 ‘헤세 블랑제리’가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 화가이자 음악애호가였던 헤르만 헤세는 이미, 서가를 넘어 우리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본사 전무>

데미안 출간 100주년 기념 기획물 <내 삶에 스며든 헤세> 표지
데미안 출간 100주년 기념 기획물 <내 삶에 스며든 헤세> 표지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