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아라

[시와 풍경]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아라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06.27 10:25
  • 수정 2019.06.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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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40 박목월,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전문

 

박목월 시인은 1916년 경북 고성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자랐다. 동시인으로 활동하다가 1939년 <문장>지를 통해 시인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1946년에 출간된 ‘청록집’에 실려 있다.

이 시는 박목월 시인 작품의 특징인 단순한 문장과 묘사, 한국적 소재와 민요가락 등 그 경향성을 잘 드러내준 초기 대표 작품 중 하나이다.

‘산’은 탈속의 세계, 현실의 부정, 현실 반대편에 위치한 이상적 세계의 표상이다. ‘산’은 시인에게 명령한다. “씨나 뿌리며”, “밭이나 갈며”,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시인은 ‘산’을 절대적 존재로 여기고 순응하며 자연에서 살고 싶은 소망을 노래했다. 그렇게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고 현실을 넘어선 초월적 삶을 꿈꿨다.

요즘 자연으로 돌아가 사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인기이다. 40대 이상이 주 시청자 층이다. 출연자 대부분의 스토리는 이 사회와 직장으로부터 치이고 배신당하면서 아픔과 절망으로 망가진 삶이거나 시한부 암 선고를 받아 마지막으로 산에 의탁한 경우이다.

경쟁과 탐욕으로 정상을 좇는 수직적인 삶, 농촌을 6차 산업시대 공간으로, 디지털 환경을 맞아 4차 산업혁명시대를 전가의 보도처럼 외치는 삶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자연주의와 휴머니즘 저 편에 대한 의미 부여이고 논리적 주장들이다. 그래서 비인간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이런 세상에 대한 질타야말로 진정한 예술정신이요 시대정신의 표출이다.

73년 전에 발표한 작품이 요즘에도 와 닿는 이유이다. 현실에 대한 부정, 현실을 벗어나 피안의 세계를 향하고 싶은 그 치열함은 곧 ‘자연’에 대한 강렬한 동경이다. 디지털 산업혁명시대가 600년 동안 천착한 인본주의 본질마저 ‘삭제키’로 지울 수는 없다. 디지털의 원리는 0과 1의 이진수이고 인간은 두 다리로 길을 걷는 직립인간이다. 디지털커뮤니티 경향성은 재부족화이다. 저마다 본질은 아날로그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세상은 한 방향으로만 갈 수가 없다. 삼라만상에 영원한 승리자는 없다. 그러니 “씨나 뿌리며, 밭이나 갈며 살아라”, “들찔레처럼, 쑥대밭처럼 살아라”,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아라”.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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