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이해충돌 방지법’ 물건너 가는가

국회의원 ‘이해충돌 방지법’ 물건너 가는가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06.27 10:19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초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국회의원의 이해충돌 논란은 어느새 관심권 밖으로 멀어졌다. 손혜원, 송언석, 장제원, 이정우 등 여러 의원들의 상임위 활동과 관련한 이해충돌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야 가리지 않고 앞다퉈 이해충돌방지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논의 테이블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국회에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무리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도 있지만, 그대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공익을 추구해야 할 선출직 공직자가 공적 사안에 사적 이익을 결부시키는 불합리를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은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언론인, 연구자 등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에게서도 발생한다. 언론인들이 취재를 통해 얻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주식투자를 한다면 내부자거래에 해당한다. 특정제품의 홍보를 위해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언론윤리에 위배된다. 연구자가 담배회사의 용역을 받아 담배가 해롭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으면 연구윤리를 어김은 물론,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윤리강령에 따라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공직자들에는 더욱 엄격한 이해충돌방지법이 필요하다. 국민의 위임을 받아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들은 공익을 추구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하지만 사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충돌이 발생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는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과 직무관련 주식의 매각 및 백지신탁 등이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다양한 이해충돌을 해소하기 어렵다. 따라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 제정당시 제외됐던 이해충돌방지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올해초 손혜원의원에 이어 장제원의원과 송언석의원이 이해충돌방지를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손의원은 조카 등이 부동산을 매입하는 와중에 국회 상임위에서 해당지역의 문화재 지정을 촉구했다. 송의원은 김천역을 제2의 대전역으로 만들겠다며 개발을 주장해왔다. 김천역 앞 4층짜리 건물을 본인과 가족이 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의원은 예산결산특위 간사로 활동하면서 역량강화대학 예산증액을 요구했다. 형이 총장으로 있는 대학이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목포 구도심 활성화’, ‘철도역사 활성화’, ‘각급 교육기관에 대한 지원 확대’ 차원의 정당한 의정활동이라고 주장했다. 이해충돌이 아니라는 해명이었다. 손의원은 문화재 지정과 관련해 보안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매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손의원은 물론, 장의원과 송의원에게 제기된 이해충돌문제는 검찰수사로만 해결될 사안은 아니다. 이들이 공정한 직무수행이 저해되거나 저해될 우려가 있는 상황을 방지하는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해충돌방지를 위한 입법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해충돌 문제가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진대제씨가 2003년 정보통신부장관에 임명되자 참여연대가 주식매각을 통한 이해충돌 회피를 주장하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진장관은 삼성전자 주식 9,194주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2005년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돼 주식백지신탁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이해충돌이 있는 직무수행에 있어 제척과 회피 등 추가적 이해충돌 방지의무는 입법화하지 못하고 선언적 규정을 신설하는 데 그쳤다.

이해충돌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는 직무수행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공직자의 직무수행이 이해관계와 연결돼 있으면, 아무리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했다고 해도 국민은 믿기 어렵다. 따라서 이해충돌 상황을 미리 방지하거나 회피나 제척을 통해 ‘공정성의 외관’을 확보해야 한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는 ‘공직자는 자신이 수행하는 직무가 자신의 재산상 이해와 관련해 공정한 직무수행이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처벌규정이 없는 선언적 조항에 불과하다.

주식백지신탁제도를 제외한 이해충돌 규제는 범위와 대상을 놓고 이견이 많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2015년 김영란법 제정당시 이해충돌방지는 법안의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국회 논의과정에서 빠지고 청탁금지만을 내용으로 하는 ‘반쪽짜리 법안’으로 제정됐다. 이해충돌 범위가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이유였다. 한마디로 이해충돌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논의가 무르익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올해초 손의원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해충돌방지 의무를 작동하고 처벌이 가능한 법률로 만들어 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여야 의원들은 앞다퉈 법률안을 내놓았다. 민주평화당은 ‘손혜원방지 2법’을 당론으로 내놓았다. 국회 상임위원이 직무관련 영리행위나 사적이익 추구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국회법 개정안과 본인이나 직계존비속 내지 특수관계자 등이 이해충돌방지 의무를 위반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국정감사 또는 국정조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정감사법 개정안 등이다. 정동영대표를 비롯해 민주평화당 의원 15명이 공동 발의했다.

민주당의원들도 발빠르게 개정안을 발의했다. 신창현의원은 공직자와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수행 및 외부활동 금지, 위반시 최장 3년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이하 벌금에 처하는 처벌규정 신설을 담은 부정청탁금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영선 당시 의원은 공무원이 바로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경우 3년동안 기존업무 관련 상임위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과 상임위원이 본인이나 배우자 친족 등과 관련된 예산안 법안 심사시 스스로 회피신청을 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2주택이상 보유한 고위공직자는 부동산정책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또한 국회법개정을 통해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은 일정규모 이상의 본인소유 재산을 활용한 임대업 등에 종사할 수 없도록 했다.

참여연대는 직무제척 방식을 중심으로 이해충돌방지 규정을 마련하되 포괄적 업무를 수행하는 고위공직자 등은 이해관계를 등록 공개하는 방식으로 입법을 추진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밖에 퇴직공직자와의 접촉 제한, 직무관련자와의 사적거래 제한, 직무관련 외부활동 금지, 소속기관 및 산하기관에 공직자 가족채용 제한, 미공개 직무정보 사적 사용 금지와 부당이득 환수 등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떠들썩했던 이해충돌방지법에 대한 논의가 변죽만 울리다가 또다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20대 국회 초반 ‘특권 내려놓기’에 나섰다가 용두사미처럼 사그라졌던 사례를 닮아가는 걸까.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은 의원이 배우자 또는 4촌이내의 혈족과 인척을 보좌직원으로 임용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 최근에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유인태 사무총장이 정보공개 확대, 국외출장 심사강화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본격적 특권 내려놓기는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불신은 국회의 특권적 관행과 의원들의 잘못된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권 내려놓기 나 이해충돌방지법이 없이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20대 국회도 이제 내년 4월이면 마무리된다. 의원들은 국회업무에는 나 몰라라 한다. 오로지 공천과 지역구 관리에 신경이 쏠려 있을 뿐이다. 말로만 정치개혁을 부르짖고 위기모면용 법안 발의만으로 끝내려는가. 국회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으로 남아 있으려는가.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저작권자 © 데일리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