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12. 새로운 출발 <2>-마지막

[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12. 새로운 출발 <2>-마지막

  • 기자명 박월선 기자
  • 입력 2019.06.1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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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장판지로 떠 야혀. 장판지는 혼자 만들 수 없지야. 그러니 애비와 갈담이, 도움이 필요한 거여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월선 기자] “아버님! 한국고전문화연구원에서 메일이 왔구만요. 우리 한지가 조선왕조실록 복본용 전통 한지로 결정됐당게요”

“뭐여? 정말인 겨?”

“조선왕조실록 복본용 한지로 선정된 것을 축하 드립니다. <한지마을> 한지가 최고임을 인정합니다”

모두들 사무실로 들어가 컴퓨터 주위에 모여 섰다.

할아버지는 모니터를 보며 한참을 가만히 서 있더니 벅찬 표정으로 아빠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맙다! 장허다.”

아빠는 할아버지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평소에는 좋은 일이 있어도 좀처럼 기쁜 내색을 하지 않던 아버지였다.

‘그리 좋을까?’

아빠는 할아버지를 뭉클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거칠고 굵은 할아버지의 손마디를 잡은 아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닥나무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역시 아버지는 선견지명이 있으십니다.”

말없이 앉아 있는 할아버지에게 아빠가 말했다.

실록을 수록할 한지는 충분할 것이다. 나중에 거둘 닥나무 20만 주가 있어서 걱정할 것이 없었다.

갈담이 삼촌이 작업장 앞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갈담이 삼촌과 아빠의 손을 꼬옥 쥐었다. 갈담이 삼촌이 흐뭇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느그들이 해냈다. 장허다! 우리가 만든 한지에 조선왕조실록이 기록된다니, 얼마나 영광이냐. 이보다 더한 가문의 영광은 없어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여. 저 세상에 가서 조상님을 떳떳하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당게. 참말로 좋구만.”

할아버지는 들떠서 하늘을 향해 외치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갈담이 삼촌도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좋아 부러!”

“얼씨구나! 지화자, 좋고!”

“앗싸! 우리 할아버지 짱이야!”

지우도 소리쳤다.

아빠는 갈담이 삼촌과 경쟁하듯 빠르게 일을 배워 갔다.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눈빛이 흐뭇해 보였다.

“조선왕조실록은 장판지로 떠야 혀. 장판지는 혼자 만들 수 없지야. 3인이 한 조가 되어 물질을 혀야지. 그러니 애비와 갈담이, 도움이 필요한 거여. 이번에 장판지 작업을 잘 마치고 나면 지장을 임명할 거구만. 너도 열심히 혀 봐. 너희가 한지마을의 희망임께. 알지야?”

할아버지가 아빠와 삼촌에게 말했다. 지우도 덩달아 가슴이 뿌듯했다.

“형님!”

“갈담아!”

아빠는 너무도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만들 허고, 얼릉 장판지 뜨는 것이나 연습혀”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아빠, 갈담이 삼촌은 “네!” 하고 기분좋게 대답하고는 장판지 발틀을 열심히 흔들었다. 앞과 끝을 잡고 초지를 하며 앞물을 뜨고 옆물을 서너 번 떴다. 다시 할아버지가 두께에 맞게 합지를 했다. 세 사람이 삼박자로 만든 한지가 비로소 조선왕조실록 기록지로 탄생되는 것이다.

곽 씨 아저씨와 지우도 부지런히 잔심부름을 했다. 엄마는 정령제 준비를 한다며 부엌으로 갔다. 지우는 누가 지장이 되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아빠가 제자리에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찼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뜨는 한지 속에서 물빛을 머금은 댕기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우는 저 멀리 닥나무 숲 언덕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댕기소녀가 빨간 댕기를 흔드는 것만 같았다.

박월선(‘닥나무 숲의 비밀’ 저자)
박월선(‘닥나무 숲의 비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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